■ 보학/고전(古典) 69

인생의 계단

「子曰(자왈)=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나는 십오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三十而立 (삼십이입)=삼십세가 되어서 모든 기초를 세우고, ◈四十而不惑 (사십이불혹)=사십세가 되어서 사물(事物)의 이치(理致)에 대하여 의문(疑問)나는 점이 없었고, ◈五十而知天命 (오십이지천명)=오십세가 되어서 천명(天命)을 알았고, ◈六十而耳順 (육십이이순)=육십세가 되자 남의 말을 수순히 받아 들일 수가 있었고,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칠십이종신소욕 불유구)=칠십세에 가서는 뜻대로 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 느니라.」 ◉十有五(십유오)=유(有)는 또와 같은 뜻으로 쓰였음. 열 하고 다섯을 뜻함. ◉立(입)=수양(修養)에 의하여 의지(意志)가 학립(確立)됨을 뜻함. ◉耳順(이순..

이효자전(李孝子傳)

■ 이효자전(李孝子傳) 무릇 행실 가운데에는 효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효 가운데에는 어버이를 위하여 죽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세상에는 혹 이런 행실이 있는데도 민멸되어 전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내가 몹시 한스럽게 여겼다. 근래에 이생 흡(李生翕)이란 자가 있어 일찍이 나를 따르면서 글을 배웠는데, 스물세 살의 나이로 아버지를 위하여 죽었다. 이는 효 가운데 큰 것이 아니겠는가. 아득히 먼 옛날에 살았던 효자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 사람을 사모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런데 더구나 사제 간이겠는가. 그 애통스러움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세대가 점차 멀어져서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이에 드디어 그의 행실을 열거하여 그의 전을 짓는다. 이 효자(李孝子) 흡(..

복수는 효자의 당연한 책무-전통사회

■ 복수는 효자의 당연한 책무 - 송시열의 「김삭주형제복수전」 전통시대 아비의 원수를 죽여서 복수하는 일은 효자의 당연한 의무였다. 물론 사적인 복수행위는 금지되었고 국가의 공권력에 의하도록 법제화되었지만, 그러나 공권력은 그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것이지 원수를 갚아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복수는 효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고, 법을 어긴 민간의 사적인 복수 행위가 칭송되기도 하였다. 그 한 예가 김성일 형제의 복수사건으로, 이에 대해 송시열은 복수전(復讐傳)을 지었고, 이이명(李頤命)과 이재(李縡)는 각각 복수비(復讎碑)를 찬술하여 기렸다. 아래는 송시열이 지은 복수전의 결말 부분이다. 삼가 『예기』와 『춘추』를 살펴보니 복수의 의리가 자세하며, 주부자는 그 의리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솔잎 먹는 방법

■ 솔잎 먹는 방법을 기록함. 글쓴이 :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새로 딴 푸른 솔잎 한 말과 콩〔太〕 세 되를 볶아서 솔잎과 함께 찧어 마르기 전에 즉시 고운 가루를 만든 다음 고운체로 젖은 가루를 친다. 냉수 반 보시기〔甫兒〕에 솔잎가루 한 홉을 섞어서 마시면 맑은 향기가 입 속에 가득하여 전혀 쓴맛을 느끼지 못한다. 백비탕(白沸湯)에 미음으로 따뜻하게 먹으면 더욱 굶주림을 견딜 수 있는바, 한 말의 솔잎과 세 되의 콩으로 한 말 남짓의 가루를 만들 수 있는데, 한 말의 가루면 백 명이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콩이 없으면 벼와 조, 기장과 피 등의 잡곡을 볶아 가루를 만들어도 모두 좋다. 시속의 방법에는 솔잎을 찧어 가루가 되기 전에 응달에서 말렸다가 다시 찧어 고운 가루를 만든다. 그러므로 ..

약천 남구만 아들의 혼서(婚書)

■ 가아(家兒)의 혼서(婚書) 을묘년(1675, 숙종1) 10월 ㅣ 남구만(南九萬) 자식이 아내를 얻기를 원하여 이미 만복의 근원을 정하였고, 아내를 맞이하여 종사(宗事)를 이어서 장차 두 성씨(姓氏) 간에 우호를 맺으려 합니다. 이에 몇 자 되는 폐백을 바쳐 공경히 함(函)에 글을 넣어 올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존친가(尊親家)의 집사(執事)는 상국의 어진 후손이요, 유명한 고을의 어진 목사였습니다. 빈조(蘋藻)의 가르침이 이루어지니, 덕 있는 가문에 계녀(季女)의 공경스러움 소문났고, 금반(衿鞶)의 경계를 거듭하여 빈한한 가문에 맏며느리로 시집보낼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다행히 후사(後事)의 중함을 의탁하여 감히 선인(先人)의 의식을 밝힙니다. 첨친(忝親)의 아들 학명(鶴鳴)은 순수하고도 깊은 가르침이 ..

이완대장(李浣 大將)의 구비설화(口碑說話)

■ 이완(李浣) 1602년(선조 35)∼1674년(현종 15) 때의 조선 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징지(澄之), 호(號)는 매죽헌(梅竹軒). 인조반정공신 수일(守一)의 아들이다, 조선 제17대왕 효종(孝宗)의 북벌정책(北伐政策)을 보필하며, 국방 체계와 군비, 병력 정비에 기여하였다.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과 공조판서(工曹判書), 형조판서(刑曹判書), 수어사(守禦使-조선 인조때 남한산성에 설치된 수어청(守禦廳)의 으뜸 벼슬로 정이품(正二品)의 품계)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을 지냈다. 이완대장(李浣大將)의 구비설화(口碑說話) -------------------------------------------------------------------------------------------..

운금루기(雲錦樓記) -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운금루기(雲錦樓記) 지은이 : 이제현(李齊賢) 세상에서 구경할 만한 경치가 반드시 궁벽한 먼 지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도읍한 곳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에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그러나 조정에서 명예를 다투고 저자에서 이익을 다투다 보니, 비록 형산(衡山)ㆍ여산(廬山)ㆍ동정호(洞庭湖)ㆍ소상강(蕭湘江)이 한 발 내디디면 굽어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도 의외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왜 그런가 하면 사슴을 쫓아가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 잡으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하며 가느다란 가을 새의 털끝을 볼 줄 알면서도 수레에 가득 실은 섶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쏠리는 곳이 있으면 눈이 다른데 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일을 벌이기 좋아하고 재..

전상호(殿上虎) -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

■ 전상호(殿上虎) -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 1572년(宣祖 5년) 9월 이 때 선조는 스스로 성군(聖君)으로 자처하는 때였는데. 35세 학봉(鶴峯 金誠一)이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正六品)으로 경연석상(經筵席上)에서 임금과 다음과 같이 문답(問答) 했다. 선조 임금이 묻기를 “경(卿)들은 나를 전대(前代)의 제왕(帝王)에 견주어 보면 어느 제왕(帝王)에 비(比)할 수 있는가?” 하였다. 정언 정이주(正言 鄭以周)가 아뢰기를 “요순(堯舜)과 비교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선조의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였다. 이 때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이 아뢰기를 “요순(堯舜)도 될 수 있고걸주(桀紂)와 같이도 될 수 있습니다” 했다. 『요순은 성군(聖君)의 대명사요, 걸주는 폭군(暴君)의 대명사다..

무덤에서 나온 원이엄마의 사부곡(思夫曲)

■ 무덤에서 나온 원이엄마의 412년 전의 편지 (1586년 음력 6월 초하룻날 원이엄마) 역사는 유물, 유적과 기록에 의해서 후세에 전해진다. 이 세 가지가 없고서는 역사를 추론할 수 없게 된다. 지상에 존재하는 역사의 증거물들은 오랜 풍상과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해 장구한 세월을 견뎌내지 못한다. 다행이 매장과 함께 지하에서 발견되는 유물이나 기록물들이 온전하게 남아서 옛일을 전해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주 천마총이나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엄청난 국보급 유물들이 발굴된 바 있고 이집트 왕릉에서도 세계적인 유물들이 많이 나왔으며, 중국에서는 진시황릉의 지하무덤에서 약 8천개의 병마용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1998년 4월 14일 택지 개발이 한창이던 경북 안동시 정상동 기슭에서 2기의 무연고 무덤..

서계 이선생 가장결(西溪李得胤先生家藏訣)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정감록’에 수록된 예언서의 저자들 중에도 비교적 낯선 인물이 있다.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계 역시 조선시대엔 상당히 유명한 예언가였다. 서계가 살던 16세기는 우리 역사상 별들의 시대였다. 퇴계 이황, 화담 서경덕, 하서 김인후,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 우계 성혼, 남명 조식 등 조선 유학사(儒學史)의 거장들이 일시에 배출되어, 성리(性理)를 궁구했다. 노수신·백인걸·유희춘임억령 등 선비의 기개를 떨친 이도 많았고, 최경창·백광훈·이달 등 시문의 대가도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북창 정렴, 토정 이지함, 격암 남사고 등은 신선의 세계를 드나들어 이채를 띠었다. 불가(佛家)에도 서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