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69

이름값을 하려면.....

최근 우리나라 아파트 이름에 ‘캐슬’이니 ‘팰리스’니 ‘파크’니 하는 어휘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외국인들이 한국에 우편물을 보낼 때 한국에 성(城), 궁전, 공원이 많다고 착각한다는 말이 있다. 또 “우리나라 아파트 이름이 길고 복잡해지는 건 모두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모두 웃자고 하는 농담이겠지만 마냥 웃고 넘기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있다. 몇 해 전, 대기업에서 지은 신축 아파트에 1년 정도 전세로 살다 나온 적이 있다.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늘 수위를 다투는 곳 중 하나였다. 새집이라 살기 편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몇 개월 사이 말썽을 부리는 곳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보일러가 고장나서 찬물을 써야 하는 일도 잦았고, 붙박이장 속 경첩이 어긋난 곳도 ..

정백유의 시에 차운하다(次鄭伯兪韻)

次鄭伯兪韻(차정백유운) 露泫畦蔬晩雨餘(노현휴소만우여) 生憎狂潦亂鳴渠(생증광료난명거) 多情最是南山色(다정최시남산색) 依舊靑靑不負余(의구청청불부여) 저녁 비 끝 채소밭에 이슬방울 맺혔는데 불어나 콸콸대는 도랑물 소리 거슬리네 사랑스럽기야 남산의 빛이 제일이니 변함없는 짙푸름이 나를 저버리지 않네. - 이광윤(李光胤, 1564~1637), 『양서집(瀼西集)』 권 2 「시(詩)」 ---------------------------------------------------------------------------------------------------------------------------------------------------------------- 이광윤은 조선 선조‧인조 대의 문신이다. 문과에 ..

고전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 안되면 이름탓 [번역문] 나는 원래 가난하고 미천하다.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아와 내 이름을 묻더니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름은 가난뱅이를 부자로 만들고 천한 사람을 귀하게 만들 수 있소.” 그러더니 나더러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나는 옷깃을 추스르고 똑바로 앉아 말했다. “내 이름은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인데 내가 어찌 감히 고치겠소. 아, 가난하고 미천하다는 것 또한 스스로 반성해야 할 점이오. 내가 만약 선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부지런히 선행을 했다면 하늘이 반드시 복을 내리느라 겨를이 없었을 것이오. 하지만 내가 불초하고 형편없어 우리 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신 본뜻을 유념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는 바람에 지금 나이 마흔이 되도록 한 가지 선행도 말할 만한 것이 없소. 가난하고 미천..

문유십의(文有十宜)

■ 문유십의(文有十宜) 명나라의 설응기(薛應旂·1500 ~ 1575)가 말한 문유십의(文有十宜=문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열 가지)를 소개한다. '독서보(讀書譜)'에 나온다. 첫 번째는 진(眞)이다. 글은 참된 진실을 담아야지 거짓을 희롱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다 드러내서는 안 되니 경계의 분간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실(實)이다. 사실을 적어야지 헛소리를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이때 다 까발리는 것과 사실을 말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세 번째는 아(雅)다. 글은 우아해야지 속기(俗氣=세속의 기풍)를 띠면 안 된다. 겉만 꾸미고 속이 속되고 추하면 가증스럽다. 네 번째는 청(淸)이다. 글은 맑아야지 혼탁해서는 못쓴다. 그래도 무미건조해서는 곤란하다. 다섯 번째는 창(暢)이다. 글은 ..

첫 두려움보다는 끝의 안일을 경계하라.

처음의 두려움보다는 끝의 안일을 경계하라 두려워하면 그 마음이 조심하는 까닭에 정사가 잘 다스려지고, 안일에 빠지면 그 마음이 방탕해지는 까닭에 정사가 해이해지는 것입니다. 恐懼則其心警 故政治修 安佚則其心蕩 故政治弛 공구즉기심경 고정치수 안일즉기심탕 고정치이 - 《일성록(日省錄)》 순조 11년 5월 9일 [해설] 이 글은 1811년(순조11) 5월 9일에 부교리 정원용(鄭元容)이 올린 고사(故事)의 한 구절입니다. 고사란 글자 그대로 옛날의 일을 말하는 것으로, 나라에 근심이 생겼을 때 임금에게 교훈이 되거나 경계가 될 만한 옛일을 글로 지어 올린 것입니다. 고사의 내용은 대체로 옛 시대의 명철한 임금의 성덕(盛德)과 어진 정사, 또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어리석은 군주들의 일화들이 주를 이룹니다. 현종..

[고전산책] 허균 ‘성소부부고’

[고전산책] 고전의 향연 - 옛 선비들의 블로그 보낸 사람 : 한국고전번역원 l 2018년 11월 14일(수) 고전의 향연 ~ 옛 선비들의 블로그 ■ 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역적 허균. 하인수. 현응민. 우경방. 김윤황을 서쪽 저잣거리에서 사형에 처하였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0년(1618년) 8월 24일 기사에는 허균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의 나이 50세 때의 일이다. 허균의 처형 소식이 전해지자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기자헌(奇自獻)은 “예로부터 매를 치며 심문하지도 않고, 사형을 결정하는 최종 문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단지 진술 내용만을 가지고 사형에 처해진 죄인은 없었으니, 훗날 반드시 다른 논의가 있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사관은 기자헌의 이 말을 허균의 죽음에 이..

조선시대 일기에 나타난 성 의식.

조선시대 일기에 나타난 성 의식. -보이는 성, 숨겨진 성- 박동욱 1. 서론 2. 성욕, 자유와 억압 사이 3. 단죄되지 않은 성 4. 일기에 나타난 성생활의 실제 5. 결론 [국문초록] 성(性)이란 매우 개인적인 차원의 일이다. 성 문제에 있어서 은폐나 왜곡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집은 말 그대로 저자 본인에 의해 한 번, 문집을 간행할 때 그와 관련된 관계자들에 의해 또 한 번 선별이 되는 까닭에 고인에게 누가 될 기록은 빠지기 마련이다. 반면 일기는 아주 개인적인 기록으로 날것 그대로를 담고 있어 내밀한 성 체험에 대한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기도 자기 검열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번히 등장하는 성경험에 대한 기록은 그것이 별반 흠이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

김시습 '매월당집(金時習 梅月堂集)

고전의 향연 - 옛 선비들의 블로그 ■ 김시습 '매월당집(金時習 梅月堂集)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알고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중용’, ‘대학’에 통달해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 이런 기이한 재주를 세종 임금이 전해 듣고 직접 불러 시험하고 ‘뒷날 크게 쓰겠노라’ 다짐했던 사람. 그러나 평생 울분과 방랑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허름한 절간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람. 우리 한문소설의 명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 ↑17세기 초반 기자헌이 편집해 간행한 ‘매월당시(梅月堂詩) 사유록(四遊錄)’에 실린 김시습의 초상화. 무량사에 있던 자화상을 보고 그린 것으로, 현재 전하는 초상화 가운데 원본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원본에는 목에 염주를 건 모..

제주목사(濟州牧使)

■ 제주목사(濟州牧使,Jeju Magistrate/제주 최고 행정관) 조선시대 제주목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 문관. (제주 목사는 형옥·소송의 처리, 부세의 징수, 군마(軍馬)의 고찰, 왜구의 방비 등 제주 지방에 대한 모든 행정을 집행하였던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한 관직이었다.) [제주목 설치 배경 및 목적] 제주도에 목사를 파견한 것은 고려 1295년(충렬왕 21)부터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왔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제주목의 설치는 1397년(태조 6)으로 나타난다. 이 당시 제주목은 제주도 전체를 관할 구역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끊임없는 중앙집권화 시책에 따라 1416년(태종 16)에 제주목 외에 대정현·정의현이 신설되면서, 제주목의 관할 구역은 제주읍성을 중심으..

최명길(崔鳴吉)의 두 가지 잘못

■ 최명길의 두 가지 잘못 [번역문] 무인년 공은 심양(瀋陽)에 인질로 있다가 돌아와 문충공(文忠公 최명길(崔鳴吉)에게 말하기를, “아버님이 국정을 담당하면서 잘못하신 일이 두 가지 있으니, 김청음(金淸陰 김상헌(金尙憲)을 논박하여 배척한 것과 중을 홍승주의 군문(軍門)으로 보낸 것입니다. 화의와 척화는 서로 배치되지만 모두 국가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에 와서 결국 증명되었고, 이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에서 화친의 맹약을 맺은 것은 다행이 아니라 치욕입니다. 아버님이 나라를 보전했다고 반드시 칭송받을 일도 아니고 청음 공이 일을 망쳤다 하여 반드시 비난받을 일도 아닙니다. 오직 의심과 간극을 없애고 서신을 보내 청나라와의 화친이 부득이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