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이완대장(李浣 大將)의 구비설화(口碑說話)

야촌(1) 2013. 10. 30. 10:13

■ 이완(李浣)

 

1602년(선조 35)∼1674년(현종 15) 때의 조선 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징지(澄之), 호(號)는 매죽헌(梅竹軒). 인조반정공신 수일(守一)의 아들이다, 조선 제17대왕 효종(孝宗)의 북벌정책(北伐政策)을 보필하며, 국방 체계와 군비, 병력 정비에 기여하였다.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과 공조판서(工曹判書), 형조판서(刑曹判書), 수어사(守禦使-조선 인조때 남한산성에 설치된 수어청(守禦廳)의 으뜸 벼슬로 정이품(正二品)의 품계)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을 지냈다.

 

이완대장(李浣大將)의 구비설화(口碑說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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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 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완 대장과 장사 방울이 이야기는 1985년에 출간한 용인의『내 고장 옛 이야기』에 채록 상황과 설화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완(李浣)과 관련한 설화(說話)는 1984년에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1-9와 1997년에 출간한 『용인 북부지역의 구비전승』에 각각 한 편씩 채록되어 있다.

「이완 대장과 방울 장사」에 나오는 방울의 이름이 ‘박탁’으로 바뀌어 전하는 이야기도 있다.

 

1. 李浣 大將과 방울 壯士

 

조선 중기 효종(孝宗)때 북벌을 주관하던 이완 대장(李浣大將)이 용인(龍仁)에 있는 선산으로 성묘를 갈 때의 일이다. 이완 대장은 광주(廣州)를 지나 용인의 모현촌(慕賢村)에서, 보통 사람 세 배의 나뭇짐을 지고서, 나는 듯이 김량점(金良店) 장으로 가는 총각을 발견하였다.

 

이완 대장은 그가 모현촌 숯가마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홀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사는 방울이라는 것을 알았다. 방울이는 힘이 센데다, 성격이 거칠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이완 대장은 성묘 길을 돌려 방울의 뒤를 따랐다.

 

이완 대장은 김량점의 사처에서 평복으로 갈아입고 시장터에 갔다. 방울이는 그때까지 장작을 팔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술에 취한 나졸이 흥정을 하던 중 방울이가 나무를 팔지 않겠다고 하자 방울의 빰을 때렸다.

 

그러자 방울이가 나졸을 번쩍 들어 개울가에 던졌는데, 이를 본 다른 나졸 10여 명이 관을 능욕하였다고 육모방망이로 몰매를 주려고 하자, 방울도 장작개비를 빼어들고 싸웠다. 이완 대장의 하인이 통부(通符-통행증 또는 출입증을 말함)를 내보이며, 육모방망이를 휘두르자 나졸들이 줄행랑을 쳤다.

 

이완 대장은 나뭇짐을 사면서 내력을 물은 다음, 방울의 집을 찾아가 “나라의 큰 기둥을 만들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방울의 어머니는 장탄식(長歎息-긴 한숨을 지으며 깊이 탄식하는 일)을 하며 허락하였다.

 

그후 이완 대장은 효종에게 용인에서 천하의 장사를 얻었다고 상주하였고, 방울을 본 효종도 흡족하였다.

이완 대장은 다음날부터 방울에게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쳤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의 문리를 터득하는 등 총명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그리하여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초한지(楚漢誌)』, 『손자병법(孫子兵法)』, 『제갈량심서(諸葛亮心書)』 등과 군사훈련을 시켜 기예에 능통하게 되었다. 방울이는 효종 임금이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실 뜻을 말하자. “선봉에 서서 성총에 보답하겠다.”고 하였지만, 효종이 승하하자 원대한 포부도 물거품이 되었다.

 

방울은 눈에서 피가 나오도록 울더니,

“시골에 내려가 어머니를 봉양하겠다.”

면서 하직인사를 하였다.

이에 이완 대장도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 이완대장의 담력이야기

 

여러 담력있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오는 인조. 효종대의 무신으로 훈련대장 겸 병조판서로 효종의 청나라 북벌 계획의 중심이었던 그의 젊은 시절, 대단한 임기응변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날. 효종임금은 평복차림으로 측근들을 대동, 민심을 살피러 성(城) 밖의 야행(夜行)을 나갔다.

 

어느 주막에서 일행은 기골장대한 청년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는데, 급기야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게 되자, 측근 중 한사람이 「이놈. 이 분이 누군줄 아느냐」며 은근 나랏님임을 내비추었다.

 

이에 눈치 빠른 이완대장이.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감을 파악하고, 강수로 대응하고 마는데, 냅다 효종 임금의 뺨을 후려쳤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다 생각했는지!? 그가 호기롭게 내뱉는 한마디가 가관인데.

 

“이런 불충, 극악무도한 넘을 봤나. 하늘 같이 지엄하신 주상전하를 사칭하다니”.

하고는 줄행랑을 쳤다. 이에 황당한 효종!. 그러나 효종은 그가 큰 재목임을 알아 보게 된 계기가 되어, 그를 중용하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야사로 보이는 듯한 이야기입니다.

 

3.이완대장 부인의 지혜

 

효종 대왕 시절에 이완 대장은 명장으로 유명하였는데, 그의 머리가 명석하다기보다도 부인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 부인의 인물이 아주 못 생긴 박색이어서 장군조차 소실을 들여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완 대장은 한밤중에 대궐에서 입궐하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조복(朝服-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을 차려입고 입궐하려고 하는데, 부인이 나와서 조복 자락을 잡고 어디를 가시냐고 물었다.

 

보기에도 마땅찮은 마누라에게 심통이 난 장군은 손으로 툭 뿌리 치면서, “이거 왜 이러느냐고?” 하였으나 부인은, 아무리 오밤중에 입궐하라는 명이 있었어도 명색이 무관인데 조복은 안 될 말이라고 하면서, 무장을 전부 갖추어다 놓고는 바꿔 입으라고 하였다.

 

장군도 느낀 것이 있어 무장으로 다시 갖추고 출발했다. 대궐에 도착하여 돈화문(敦化門-昌德宮의正門)을 들어서는데 양쪽으로 우거진 송림에서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 투구에 꽂혔다. 그때서야 부인의 비범함을 그는 알아차렸다.

 

그리고 계속 걸어가는 중에도 화살이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명색이 대장인지라 내색하지 않고, 걸어 들어가자 임금이 문간에 나와 계셨다. 북벌계획을 세워 놓고선 맡길 만한 인물인지를 시험해 본것이다.

 

반갑게 안으로 맞이해서는 별 말씀 없이 오밤중에 술상을 차려다가 이런 저런 대담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완 대장이 집에 돌아가려고 하자, 벼루집을 꺼내어 붓 한 자루를 내주며,

“사신이 중국에서 귀한 것이라고 하여 가져왔는데 혼자 쓰기 보다 경과 나누어 써야겠소.”

하셨다.

 

잘 챙겨서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는데, 부인이 들어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부인이 다 듣고 나더니, 밤중에 장군을 부를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또다른 것은 없느냐고 재차 물었다.

 

붓 한 자루를 받아왔다고 하였더니, 그 붓 좀 보자 하며 받아서는 이리저리 살펴보다 갑자기 다듬이 돌에다 붓을 놓고 방망이로 내리쳤다. 그 안을 잘 살펴보니 종이 쪽지가 하나 들어 있는데, 그 안에 북벌계획이 써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까지 효종이 시험해 보신 것이다. 하여 이완 대장은 부인 덕에 한 나라의 명장이 될 수 있었다.

 

[참고자료] : 디지털용인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