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69

이 세상에서 최고의 소리는 미인 치마끈 푸는 소리?

■ 이 세상에서 최고의 소리는.....미인 치마끈 푸는 소리? 이항복은 선조대의 명신 중 한 명이지만 오성과 한음 설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늘 위트가 넘쳤다. 이항복은 어느날 송강 정철(1536~1593), 서애 유성룡(1542~1607), 월사 이정구(1564~1635), 일송 심희송(1548∼1622)과 서울 교외로 나가 술판을 벌였다. 술이 제법 거나해지자 누군가 "세상의 소리 중 무엇을 최고로 여기냐" 고 물었다.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답게 "밝은 달 아래 누각 꼭대기를 지나가는 바람" 이라고 했고, 이정구는 "산속 초가에서 선비의 시 읊는 소리" 라고 했으며, 심희송은 "붉은 단풍에 스치는 원숭이 울음" 이라고 했다. 모두들 고상한 말을 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나선 이항복이 "첫날밤 미인의 치마끈..

[고전산문] 죽음과 바꾼 스승의 가르침 - 무오사화

■ 죽음과 바꾼 스승의 가르침 [번역문] 선비의 습속이 밝지 않은 것은 도학(道學)이 행해지지 않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고, 도학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사도(師道)가 전해지지 않는 데에 근원한 것입니다. 김종직은 처음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는 학문[正心之學]’을 제창하여 후진들을 인도하고 도와주어 바른 마음을 근본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몸소 사도(斯道)를 자임하고 사문(斯文)의 흥기를 자기 책임으로 삼았으니, 그 공은 도리어 공명과 사업에 우뚝한 자보다 나음이 있습니다. 시호(諡號)를 정하는 법에 ‘학문을 널리 닦고 견식이 많은 것[博文多見]’을 '문(文)'이라고 하고, ‘사물을 널리 들어 알고 재능이 많은 것[博聞多能]’을 '문'이라 하고, ‘도덕이 높고 사물을 널리 들어 아는 것[도덕박문(道德博聞)]..

어른 없는 시대에 어른 되기

[고전산책]한국고전번역원 ■어른 없는 시대에 어른 되기 “요즘은 어른이 없다.” 는 말을 많이들 한다. ‘다 자란 사람’, 즉 성인(成人)이 없다는 뜻이 아님은 물론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어른’을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윗사람이면 당연히 높임을 받아야 하는데 점차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이를 두고 어른도 몰라보는, 어른이 없어진 시대라고 탄식할 만하다. 이런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은 어른들을 깍듯하게 모시며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본인이 정작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할 시기에 내뱉는 이런 탄식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맹자는 나이 오십 된 이가 비단옷을 입고 칠십 된 이가 고기반찬을 먹을 수 있게[五十者可以衣帛矣 七十者可以食肉矣] 해 주..

[고전산문] 딸아이 제문

[번역문] 그렇지만 내가 험한 곳을 넘고 건너서 멀리 도는 길을 마다하지 않은 건 너 때문이 아니었더냐. 돌아보고 연연하면서 머뭇거리고 맴돌다가 하룻밤 묵은 건 또 너 때문이 아니었더냐. 나는 너를 만나보고 위로받을 수 있으리라 마음속에 여겼는데, 도착하자 보이는 것이라곤 황량한 개암나무와 고목뿐이고, 너의 예쁘고 단아하던 용모는 볼 수 없구나. 들리는 것이라곤 골짜기에 부는 애달픈 바람소리뿐이고, 너의 맑고 낭랑하며 유순하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구나. 불러도 알지 못하고, 말을 해봐도 응답이 없구나. 한 언덕 두 무덤에 모녀가 서로 의지하고 있어 손으로 어루만지고 눈으로 보기만 해도 내 애통함을 배가시키지 않음이 없으니, 어떻게 내 심정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단 말이냐?…중략 무덤 주위를 세 번 ..

[고전칼럼]훈민정음을 세종이 짓지 않았다는 사람들

훈민정음을 세종이 짓지 않았다는 사람들 한국고전번역원 16. 06. 29 09 : 29 훈민정음을 세종이짓지 않았다는 사람들 『영산김씨 대동보』는 신미(信眉, 1403~1480)대사가 한글을 창제했다고 주장한다. 집현전에 불교를 배척하는 학자들이 많았기에 세종은 한글을 오랫동안 지키고 스님을 보호하기 위해 신미(속명 김수성)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신미는 ‘충북 역사·문화인물’로도 선정됐다. “조선 세조~세종 조의 승려로 범어에 능통해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을 담당” 했다는 이유에서다.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도 있다. 당대 최고의 산스크리트어 전문가로 세종의 총애를 받은 신미가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이라는 내용이다. 근거는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다. 신미가 쓴 『..

조선의 주축활자 갑인자(甲寅字)

■ 조선의 주축활자 갑인자 [번역문] 선덕 9년(1434) 7월에 전하께서 지중추원사 이천(李蕆)에게 말씀하셨다. “경이 예전에 감독하여 만든 활자로 인쇄한 책들은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다만 글자 모양이 너무 작아 읽기 불편한 점이 있으니 큰 글자로 된 책으로 자본(字本)을 삼아 다시 주조하는 것이 더 좋겠다.” 라고 하시며 그에게 활자 주조하는 일을 감독하게 하고 집현전 직제학 김돈(金墩), 집현전 직전 김빈(金鑌), 호군 장영실(蔣英實), 첨지 사역원사 이세형(李世衡), 의정부 사인정척(鄭陟), 봉상시주부 이순지(李純之), 훈련관참군 이의장(李義長) 등에게 실무를 주관하게 하셨다. 그리고 경연(經筵)을 위해 보관된 『효순사실(孝順事實)』· 위선음즐(爲善陰騭)』· 『논어』 등을 꺼내어 자본으로 삼..

고려시대 재산 상속이야기

[역옹패설] 고려시대 재산상속 판결문 이야기 ☆《역옹패설(櫟翁稗說)》은 1342년(충혜왕 복위 3년)에 역옹 이제현(櫟翁 李齊賢) 저술한 시화집(詩話集)입 니다. ☆고려시대의 재산상속관행은 균분상속이었음을 증명하는 판결문. 고려 말 학자 문충공(文忠公) 익재 이제현(益齊 李齊賢)이 쓴《역옹패설 》은 남매간의 재산소송 이야기를 흥 미롭게 전한다. 고려 23대 고종 때 경상도 안찰부사(按察副使) 손변(孫抃)에게 남매간의 재산상속에 관한 소송이 들어왔다. 내용인즉 ,남매의 아버지가 운명직전 유서를 남겨 전 재산을 결혼한 딸에게 물려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검은색 옷 한 벌 ,갓 하나 ,미투리 한 컬 레 ,종이 한권만 물려준다고 쓰였는데 ,성장한 남동생이 아버지의 유서 내용이 매우 부당하다고 소송을 낸 것이다. ..

의심을 푸는 방법에 대하여

■ 의심을 푸는 방법에 대하여 글 : 이곡(李穀, 1298 ~ 1351) 어떤 사람이 아무 근거도 없이 자기를 의심한다면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때도 있다. 왜냐하면 변명에 급급하다 보면 그 의심이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한 데에 반해서, 가만히 놔두면 뒤에 가서 저절로 의혹이 해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종이 주인 여자를 대신해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다가 얼마 뒤에 임신을 했는데 분만을 하고 나서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 주인 여자가 노하여 매질을 하려고 하며 심문하기를 “무릇 젖을 먹일 때에는 남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하는 법이다. 그 이유는 몸에 아이를 갖게 되면 젖을 먹이는 아이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의 첫 번째 죄이다..

유교(儒敎) · 유가(儒家) 또는 유학(儒學)

유교(儒敎) · 유가(儒家) 또는 유학(儒學) 양명학(陽明學)은 중국 명나라의 철학자 왕수인(王守仁)의 호인 양명(陽明)에서 이름을 따서 붙인 유가철학(儒家哲學)의 한 학파로 주관적 실천 철학에 속한다.양명학이라는 명칭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퍼진 것으로, 그 이전에는 육왕학(陸王學) 또는 왕학(王學)이라 불렸다. 육왕학(陸王學)은 육구연(陸九淵)의 학풍을 이어 왕수인이 대성한 유학(儒學)을 뜻하고, 왕학(王學)은 왕수인의 유학을 뜻한다. 심즉리(心卽理) · 치양지(致良知) ·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양명학의 3강령이다. 송나라 시대를 거쳐 오면서 학자들은 유교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수나라나 당나라 이전에는 경서의 음독이나 훈고(단어의 의미)를 중시한 훈고학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유교가 거쳐오면서 송나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