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금루기(雲錦樓記)
지은이 : 이제현(李齊賢)
세상에서 구경할 만한 경치가 반드시 궁벽한 먼 지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도읍한 곳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에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그러나 조정에서 명예를 다투고 저자에서 이익을 다투다 보니, 비록 형산(衡山)ㆍ여산(廬山)ㆍ동정호(洞庭湖)ㆍ소상강(蕭湘江)이 한 발 내디디면 굽어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도 의외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왜 그런가 하면 사슴을 쫓아가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 잡으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하며 가느다란 가을 새의 털끝을 볼 줄 알면서도 수레에 가득 실은 섶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쏠리는 곳이 있으면 눈이 다른데 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일을 벌이기 좋아하고 재력가들은 멀리 관문(關門)과 나루를 지나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아름다운 경치 속에 노니는 데 만족하면서 스스로 고상하다고 여긴다.
고강락(高康樂)이 경승지에 새 길을 내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의아해 했고, 허범(許氾)이 시골을 찾는 일을 진동 같은 호걸다운 선비가 꺼렸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고상한 생활이 아니겠는가?
경성 남쪽에 못이 있어서 사방이 백 묘(땅 넓이의 단위. 곧 30평)쯤 되는데, 그 연못가로 빙둘러 여염 민가가 고기비늘처럼 빽빽하게 빗살처럼 나란히 늘어서 있다. 짐을 지고 이거나 말을 타거나 걸으며 그 곁을 지나 왕래하는 자들이 줄을 이어 앞서고 뒤서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윽하고 기이하고 한가로우며 넓은 터가 그 사이에 있는 줄을 알겠는가.
지원(至元) 정축년(충숙왕 6년) 여름에 못 위에 연꽃이 한창 피었을 때 현복군(玄福君) 권후(權侯)가 그곳을 발견하여 매우 마음에 들어, 곧장 못 동쪽에 땅을 사서 누각을 지었다.
두 길이나 되게 높이 하고 세 길이나 되게 넓게 만들었는데, 주춧돌을 세우지 않았지만 기둥은 썩지 않게 하고, 기와를 이지 않아도 초가 지붕은 새지 않게 하였으며, 통나무를 대패로 밀지 않았지만 굵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으며, 벽은 백토만 바르고 단청을 하지 않았으니 화려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았다.
건물의 모양은 대략 이와 같았는데 그 연못의 연꽃이 가득 둘러싸 있었다.
여기에 그 아버지 길창공(吉昌公)과 형제와 인척들을 초청하여 그 위에서 술자리를 벌여 즐겁고 유쾌하게 놀면서 날이 저물도록 돌아갈 것을 잊었는데, 그때 아들 중에 큰 글씨를 잘 쓰는 이가 있으므로 ‘운금(雲錦)’ 두 글자를 쓰게 해서 걸어 놓고 누각의 이름으로 하였다.
내가 어떤가 하고 직접 가보니 붉은 꽃향기와 푸른 잎 그림자가 넓은 못에 가득히 있는데, 맑은 이슬과 시원한 바람이 아지랑이가 낀 연못 위로 미끄러지니 과연 이름이 헛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용산(龍山)의 여러 산봉우리가 청ㆍ녹색을 휘날려 처마 밑으로 모여드니 어둡고 밝은 아침저녁마다 제각기 모습이 다른데 저쪽 여염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민가는 그 형세의 곡절을 앉아서도 세어 볼 수 있으며, 지고 이고 말 타고 걸어 왕래하는 자와 달리는 자, 쉬는 자, 돌아보는 자, 부르는 자와 친구를 만나 서서 말하는 자와 존장을 만나 달려가 절하는 자들도 모두 그 모습을 감추지 못하니 바라보며 즐길 만한데 저들에게 있어서는 연못이 있는 것만 보이고 누각이 있음은 알지 못하니 또 어찌 그 누각에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으랴.
참으로 찾아가 구경할 좋은 경치는 반드시 외지고 먼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과 저자의 사람들이 언제나 보아도 알지 못하는 곳에도 있는 것이니 아마도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 쉽게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인가 싶다.
후(侯)가 만호(萬戶)의 병부를 차고 외척(外戚)의 권세를 차지하였는데 나이가 옛사람의 강사(强仕)할 시기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부귀와 이록(利祿)에 대해서는 정당하여 취편하게 잠들고 꿈꾸듯 위하며 어진 이와 지혜 있는 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백성을 놀래킴을 당하지도 않고 선비에게 꺼림을 받지도 않으면서 그윽하고 기이하고 한가로우며 넓은 지경을 저자와 조정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 있으며 그 어버이를 즐겁게 하여 손님에게까지 미치게 하며 그 몸을 즐겁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하니 이야말로 가상한 일이다. 익재거사 아무개가 기문을 쓴다.
[해설]
'운금루'라는 누각과 관련하여 지은 기(記) 양식의 수필로서, 고려 때 이제현이 지은 작품이다. 작가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은 궁벽한 곳에 있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가까운 곳에도 얼마든지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관점만으로 바라보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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