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한국의 여성인물. 64

고려시대의 여인들

■ 사랑과 욕망 ●법과 상식을 뛰어넘어 사랑과 욕망에 빠진 여인들 ◇고려시대 대표적인 자유부인 숙창원비(淑昌院妃) 김씨(金氏) ◇혼인을 두 번씩 한 순비 허씨 ◇세상의 법을 어겨가며 싱글맘마의 꿈을 이룬 박씨부인 ◇자신이 원하는 사랑은 모두 얻은 장씨 부인 ◇법도와 금기를 넘어서서 상상을 초월한 왕태후의 사랑 ●로맨스와 스캔들을 넘나든 여인들 ◇멋진 선비를 보고 거침없이 추파를 던진 어느 과부 ◇술과 노래에 취해 스캔들을 일으킨 덕령궁주 ◇아버지의 정적(政敵)과 자유연애를 펼친 정중부의 딸 ●불륜과 추문의 향연을 벌인 여인들 ◇재상들과 겹겹으로 사통(私通)한 여인들 ◇자신이 모시는 남자의 동생과 사통한 김군정(金君鼎)의 애첩(愛妾) ◇자신이 모시는 남자의 사위와 사통한 이배중(李培中)의 첩(妾) ◇간통으..

의순공주(義順公主) - 효종의 양녀

■ 의순공주(義順公主) 의순공주[義順公主, 1635년(인조 13)-1662년(현종 3)]는 조선 제17대 효종의 양녀이다. 종친 금림군(錦林君) 이개윤(李凱胤)의 딸로 본명은 이애숙(李愛淑)이다. 순치제의 섭정왕이자 계부(繼父)였던 도르곤의 계실(繼室) 대복진(大福晉)이다. 1650년 12월 31일에 도르곤이 사망하여 도르곤의 조카이자 부하 장수였던 친왕 보로(博洛)에게 재가하였지만 보로 또한 1652년 2월에 사망하여 홀로 지내다가, 1656년(효종 7) 4월에 청 연경에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온 아버지 금림군이 순치제에게 요청하여 그녀를 다시 조선으로 데려왔다. 1662년(현종 3) 8월에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양주면 금오리(현 의정부시 금오동)에 안장되었다. [일생] 이애숙(李愛淑)은 성종의 서..

김만덕의 금강산 여행

조선후기의 여성 CEO 김만덕의 금강산 여행 최근의 정계에서는 여풍이 거세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까지 여성 일색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여성으로 그 이름이 기록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최고의 국정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을 당당히 알린 여성이 있다. 바로 김만덕이다. 김만덕은 여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실록에 그 이름을 올렸고, 정조는 특별히 그녀를 궁궐에 초청하고 금강산 유람까지 보내주었다. 또한 정조때 정승을 지낸 채제공은 그의 문집에서 특별히 김만덕의 전기를 기록하였다. 김만덕이 이처럼 각광을 받은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정조실록』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가 있다. 제주(濟州)의 기생 만덕(萬德)이 재물을 풀..

가천의대 이길여 총장

"난 바람개비… 바람이 거셀수록 더 빨리 돈다" "남자는 필요없어요… 난 공주니까, 모두가 날 사랑하니까" "들일 한창이던 여름이었어. 새참을 광주리에 정성스레 담아 머리에 이고 나갔지. 근디 광주리를 내려놓으니 밥하고 반찬은 온데간데 없고 누런 놋숟가락만 가득하지 뭐여. 워메 이게 뭔 조화여. 내 얼마나 기가 차고 놀랐는지 아냐?" 그해 전북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 이서방네 정미소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아들 없는 설움을 오늘에야 갚으랴 싶었다. 태몽(胎夢)마저 그럴 듯했다. 이번엔 고추가 틀림없으렷다. 그런 집안 공기가 아이 태어난 순간 썰렁해졌다. "뭔 벼슬했다고 처 자빠져 있능겨!" 시어머니가 둘째딸 낳고 누운 며느리에게 외쳤다. 이길여(李吉女) 가천대총장이 처음들은 세상소리는 이랬다. 어머니는 ..

최욱경(崔郁卿)

■최욱경(崔郁卿) [생몰년] 1940-1985 [활동분야] 여류 양화가 1940∼1985. 여류 양화가. 서울출생. 1959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으며, 그해 도미하여 크랜브룩미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브루클린미술관과 스코패건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이어서 프랭클린 피어스대학 조교수(1968∼1971), 위스콘신주립대학 초빙 전임강사(1977∼1978)로 재직하였고, 1979년 귀국하여서는 영남대학교 부교수(1979∼1981), 그리고 덕성여자대학교 교수(1981∼1985)를 역임하였다. 1985년 45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여러 차례의 개인전을 미국·한국·캐나다 등지에서 개최하였는데, 미국시절에는 고르키(Gorky, A.)·드쿠닝(de Koonin..

경혜공주(敬惠公主) - 조선 제5대 문종의 적녀

■ 경혜공주(敬惠公主) [생졸년] 1435년(세종 18) ~1473년(성종 4) 12월 30일 [묘의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고읍마을. 문종(文宗)의 적 장녀로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1418~1441)이다. 영양위(寧陽尉)증 의정부 영의정(贈 議政府 領議政)정종(鄭悰)에게 하가하였다.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인생은 보통 백성의 삶보다 훨씬 기구했다. 세종 18년(1435) 봄에 태어난 경혜공주는 일곱 살 때인 세종 23년(1441) 어머니 권씨가 단종을 낳다가 사망하면서 권씨 집안의 여종인 어리니(於里尼)에 의해 길러졌다. 16세 때인 세종 32년(1450) 형조참판을 역임한 정충경(鄭忠敬)의 아들인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과 혼인하는데, 이 혼인 또한 비극으로 점철된다. 부왕 문..

월명부인(月明夫人)

■ 월명부인(月明夫人) 생몰년 미상. 신라의 왕족. 성은 박씨(朴氏), 진덕여왕의 어머니이다. 남편은 진평왕의 아우인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이다. 선덕여왕에 이어 그녀의 딸 승만(勝曼)이 왕위에 올라 진덕여왕이 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아니부인(阿尼夫人)박씨로서 노추□□□갈문왕(奴追□□□葛文王)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이름으로 아니부인(阿尼夫人) 이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金福順〉

고타소랑(古陀炤娘)

● 고타소랑(古陀炤娘) ?∼642(선덕여왕 1).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金春秋)의 딸. 무열왕비 문명왕후(文明王后)의 소생으로 김유신(金庾信)의 생질이다. 642년 8월 백제의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야성(大耶城:지금의 합천)을 함락시키니 대야성도독 이찬(伊飡) 품석(品釋)과 그의 처 고타소랑이 함께 죽었다. 김춘추는 이 소식을 듣고 백제를 멸망시켜 딸의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하여 고구려에 청병하였으나 실패하고 다시 당나라에 가서 청병을 허락받고 돌아왔다. 김유신은 대야성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647년 백제를 쳐서 포로된 백제장 8인과 고타소랑 부부의 해골을 교환하여 왔다., 660년(태종무열왕 8)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백제를 멸하자 법민(法敏)은 의자왕의 왕자 융(隆)에게 “너의 아..

욱면(郁面)

■ 욱면(郁面) 생몰년 미상. 신라 경덕왕 때의 불교신도.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계집종이었으며, 후에 극락왕생(極樂往生)하였다. 강주(康州)의 거사(居士) 몇 십 명이 뜻을 극락에 두고 미타사(彌陀寺)를 세워 만일계회(萬日契會)를 만들었다. 욱면은 그때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뜰에 서서 염불하였다. 주인은 그녀가 일하지 않음을 미워하여 곡식 두섬을 주어 하루 저녁에 찧게 하였는데, 그녀는 초저녁에 다 찧고 절에 와서 부지런히 염불하였다. 하루는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고 노끈으로 꿰어 말뚝에 매어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면서 지극히 정진하였는데 공중에서 “욱면낭은 당에 들어가 염불하라.”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소리를 들은 승려들이 법당에서 함께 염불하게 하였다. 그 뒤 얼마 있지 ..

의숙공주(懿淑公主) - 세조(世祖)의 장녀

■ 의숙공주(懿淑公主) [생졸년] 1442(세종 24)∼1477년(성종 8) / 향년 36세 세조(世祖)의 장녀로 어머니는 정희왕후(貞熹王后)이고, 이름은 세선(世宣)이다. 덕종, 예종의 누이동생이다. 영의정(領議政) 문성공(文成公) 정인지(鄭麟趾)의 아들인 익대좌리공신(翊戴佐理功臣) 하성군(河城君) 정현조(鄭顯祖)에게 하가(下嫁)하였다. 의숙공주는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고 1477년 훙서(薨逝)하였으며, 성종은 정사를 쉬어 의숙공주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의숙공주의 무덤은 경기도 의왕시 초평동에 있다. [참고내용] ◇하가(下嫁) : 지체가 낮은 곳으로 시집간다는 뜻으로, 공주나 옹주가 귀족이나 신하에게로 시집감을 이르던 말. ◇훙서(薨逝) : 왕이나 왕족, 귀족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 정현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