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한국의 여성인물. 64

문재인 대통령 어머니 강한옥 여사

호송차 따라오며 '재인아!' 부르던 어머니..文대통령의 사모곡 최은지 기자입력 2019.10.29. 19:31 흥남철수 때 피란 내려와..2004년 이산가족상봉서 막내 여동생 재회 文 "연탄배달 창피해 툴툴거려 어머니 마음 아프게 했다" 회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모친 강한옥 여사와 성탄미사를 드리러 가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 공식 블로그 제공) (서울=뉴스1) 최은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자서전 '운명'에서 "혼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으로 꼽은 것은 자신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구속돼 호송차를 타고 이동하던 순간이다. 문 대통령이 경희대 법대에 다니던 1975년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아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했을 때다. '청년 문재인'은 경찰에 예비 구금된 총학..

이긍탄(李亘坦)스님 -비구니

■ 긍탄(亘坦) 스님/세계최초 비구니 종단 보문종 창립 ◇생졸년 : 1885년 4월 15일(고종 22)~1980년 7월 17일. ◇법명 : 긍탄(亘坦) ◇법호 : 설월(雪月) ◇속명 : ◇본적 : 서울시 왕십리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 3가 168번지(보문사) [출가 이력] ◇1885년 서울 왕십리 출생. ◇1891년 탑골승방 보문사에서 세장(世長) 스님을 은사로 출가함. ◇1902년 금강산 장안사(金剛山 長安寺)에서 벽하(碧霞)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沙彌尼戒) 수지. ◇1903년 동학사 강원 졸업(東鶴寺講院卒業) ◇1910년 만화(萬化) 스님을 계사(戒師)로 비구니를 수지. ◇1912년~1945년 보문사 주지(普門寺 住持) ◇1937년~1952년 상원사(上院寺). 대성암大成庵). 화엄사 구..

가려진 여인, 신사임당의 손녀들

[한겨레]등록 2019. 04.05. 가려진 여인, 신사임당의 손녀들 그림>일러스트 장선환 서자 서녀 가운데 부모의 재능이나 자질을 물려받은 자가 없을 수 없지만 역사는 그들의 존재를 숨겨왔다. 조선에서는 약간의 벼슬이나 학문만 있어도 그것을 기반으로 자녀들의 앞날이 열렸건만, 친가 외가가 아무리 대단해도 서녀 서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선시대 기억의 계보에서 서자 서녀는 분명 거추장스런 존재였다. 다만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특출한 자들이 있어 숨바꼭질 하듯 그 모습이 드러나곤 한다. 서녀로 태어난 사임당의 두 손녀가 그들이다. 신사임당은 화가이자 율곡의 어머니로 역사에 화려하게 등극하여 수세기가 지나도록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반면에 생전 그의 삶은 빈궁할 정도로 고단했다. 그림도 생계를..

혜비이씨(惠妃李氏)

■ 혜비이씨(惠妃李氏) 혜비(惠妃)는 황제, 제후. 왕의 비(妃)에게 붙는 작호(綽號) 이다. 「혜비이씨(惠妃李氏, ?~1408년(태종 8) 음력 2월 3일」는 고려의 제31대 공민왕(恭愍王)의 제2비이다. ●생애와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로 성리학자로 검교 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을 지낸 이진(李瑱)의 손녀이고, 계림부원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딸로, 어머니는 익재의 재취(再娶) 부인인 수춘국부인 박씨(壽春國夫人朴氏) 소생이다. ●왕비시절 공민왕(恭愍王)의 정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 ~1365/중국 원나라 황족 위왕(魏王)의 딸」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노국대장공주를 비롯한 여러 재상(宰相)들이 공민왕에게 명문가(名門家)의 여식으로 후비를 들일 것을 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간택된 사..

'우당의 아내' 이은숙 여사, 건국훈장 받는다.

'우당의 아내' 이은숙 여사, 건국훈장 받는다. 경향신문 l 유정인 기자입력 2018.08.06. 21:11수정 2018.08.06. 22:43 곤궁한 살림에도 동지들 밥 먹이고…주야로 옷 지어 독립운동자금 지원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이자 독립운동을 지원한 이은숙 여사·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제공 여성 독립운동가 고 이은숙 여사(1889∼1979)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된다. 이 여사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다. 만주를 거점으로 한 독립운동을 지원했지만 그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광복절 ‘독립유공자’ 명단에 포함 이 여사, 남편보다 56년 늦은 추서 이 여사는 오는 15일 열리는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경축행사’에서 정부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 177명 명단에 포함된..

조선 3대 여류시인

■ 조선 3대 여류시인 조선 3대 여류시인이란 황진이(黃眞伊), 허난설헌(許蘭雪軒), 신사임당(申師任堂)을 말한다. 그 중에서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은 주로 한시를 썼고, 시조를 남긴 사람은 황진이이다. ●황진이(黃眞伊) 조선 시대의 기생. 송도3절로 불렸으며 뛰어난 미모, 활달한 성격, 청아한 소리, 예술적 재능으로 인해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작으로 , 가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허난설헌(許蘭雪軒) 본관 양천(陽川). 호 난설헌.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강릉(江陵) 출생. 균(筠)의 누이.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시재(詩才)를 발휘했으며, 1577년(선조 10) 김성립(金誠立)과..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1974년 8월 15일)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이 청중석 뒤쪽에서 뛰어나와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으나 총탄이 빗나가 박대통령 대신 육영수여사의 머리에 명중 절명했고 무대 왼편에서 급히 장막을 걷고 들어온 경호원 조모씨의 지향사격 실패로 객석에 앉아있던 여고생 장봉화가 목에 맞고 사망했다. 문세광은 이날 오전 8시쯤 조선호텔을 나와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검문을 수월히 피하기 위해 미리 포드 20M 검은색 승용차를 빌려놓았다. 극장입구를 무사히 통과한 문세광은 식장입구에서 한차례 검문을 받았지만 일본어를 사용하며 귀빈 행세를 해 식장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기념식이 시작되고 얼마 뒤 왼쪽열 맨뒷 좌석에 앉아..

이정미 헌재권한대행, 임기마치고 13일 퇴장

'헌정사 장식' 이정미 권한대행, 임기마치고 13일 퇴장 김승모 입력 2017.03.11 12:21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주문 낭독 헌재 사상 최초 권한대행 2번 역임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읽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있다. 2017.03.10.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승모 기자 = 이정미(55·사법연수원 16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오는 13일 퇴임식을 가진 뒤 헌법재판관 6년 임기를 마무리한다. 11일 헌재에 따르면 이 권한대행 퇴임식은 당일 오전 청사 1층 대강당에서 이뤄진다. 이 권한대행은 지난 1월 31일 퇴임한 박한철(64·13..

박순천(朴順天)/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 정치가

■ 박순천(朴順天)/전 국회의원 [생졸년] 1898년 10월 24일(음력 9월 10일) ~ 1983년 1월 9일.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자로 대한민국의 여성운동가, 정치인이다. 초명(初名)은 명련(命蓮).호(號)는 해암(海岩),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한학자인 아버지 박재형(朴在衡)과 기독교신자였던 어머니 김춘열(金春烈)의 무남독녀로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마을에서 3㎞쯤 떨어져 있는 월전교회에 다니면서 기독교신자의 소양을 키웠다. 1917년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에 있는 의신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의신여자중학교에 재직 중이던 1919년 3·1 운동 때 민족대표의 한 사람인 이갑성(李甲成)이 보낸 독립운동..

박순천(본명 : 朴命連)

여성정치인 박순천(朴順天) [생졸년] 1898~1983 / 壽86세 한국 정치사 최고의 '여걸' 5선 국회의원… 농촌계몽·여성인권운동 활발히 펼쳐 제1 야당 최고위원, 5선의 국회의원, 통합야당 당수' 한 정치인이 걸어온 길이다. 웬만한 인물의 경력이 아닌 거물급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일반인이 생각하듯 남성정치인이 아닌 여성정치인이다. 그가 바로 부산이 낳은 여걸 박순천(朴順天·1898∼1983년)이다. 한국적인 풍토와 정서에 비한다면 현재에도 그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안타깝게도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가 바로 부산이 낳은 여걸 박순천(朴順天·1898∼1983년)이다. 한국적인 풍토와 정서에 비한다면 현재에도 그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안타깝게도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