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조선사(朝鮮史) 63

고승호(高陞號) 사건-격랑의 청일전쟁

▲고승호(高陞號): 격랑의 청일해전 전시관 입구. 목포국립해양유물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2015년 8월 4일부터 10월 4일까지 고승호(高陞號): 격랑의 청일전쟁이라는 주제로 국립해양문화연구소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이 공동주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고승호(高陞號) 고승호(高陞號)는 길이 72.6m로 2134톤을 적재할 수 있는 증기선으로써 1883년 청나라는 영국 배로우 조선회사에서 건조한 고승호를 4만 파운드에 임대하여 조선에서 발생한 동학농민혁명 진압용 군사수송선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고승호는 1894년 7월 25일 일본군의 공격으로 경기도 안산 풍도 앞 바다에서 일본의 기습 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청일전쟁의 서막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세기 말 청나라는 서구 ..

조선 왕조 계보도

■조선왕조 계보도(1392년~1910년/518년간, 총27대) 대 왕명 재위기간 업적 및 사건 1 태조 1335-1398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왕조를 세움 2 정종 1398-1400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뜻이 없었으나 이방원의 뜻으로 왕이 됨. 3 태종 1400-1418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하고 조선왕조의 기틀 마련함. 4 세종 1418-1450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 집현전을 두어 학문 연구, 훈민정음 창제, 장영실 측우기,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창제 5 문종 1450-1452 세종대왕의 장남. 병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3년 만에 사망하였다. 6 단종 1452-1455 아버지 문종이 단명하여 12세에 보위에 올라 왕권이 위태로웠다. 7..

조선의 인구조사

■ 조선의 인구조사 조선의 호패법은 조선 태종 때 이루어졌는데, 조선초의 건국 혼란을 감안하더라도 인구가 7십2만 명으로 나와 있는 기록은 착오인듯하고 약 2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호패법은 현종, 숙종, 영조, 정조대까지 실시되면서 아마 정조대 와서 정착된 것으로 본다. 병자호란 이후 4백만 명이던 인구가 30년 만에 1백5십만 명이 증가하여 5백5십만 인구로 증가되었다. 태종 12년 18만 246호 x 4명= 약 72만 984명 정도 태종 때의 호구조사 정확하지 않은 듯하다. 조선의 인구는 물론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15-16세기까지 인구가 고속성장을 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다시 평화와 농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무렵 다시 인구가 고속성장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조선의 호구조사는..

사대사화(四大士禍)

영남파와 기호파로 나눠진 훈구와 사림의 파벌과 사대사화. "기호(畿湖)"란 경기와 호서(충청도).호남(전라도)을 아울러 지칭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기호 지방이라고 하면 전라도도 포함되는 것이다. 영남 지방에는 고려 말에 정몽주(영천 출신), 길재(선산 출신), 정도전(본이 영주 봉화 출신), 하륜(진주) 등의 대학자들이 출현하여 많은 유학자들을 양성하였다. 그 후에도 김숙자(거창, 김종직의 아버지). 김종직(밀양 출신), 김굉필(현풍 출신), 정여창(진주), 이언적(경주), 이황(안동) 등 수 많은 유학자들이 배출되어 추로지향(鄒魯之鄕 : 공자 맹자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성리학이 발달하였고, 영남지방은 사림파의 온상이 되었다. 서울. 경기에는 워낙 벼슬하는 학자,.관료들이 많아 주로 관학적..

고려사를 조작한 조선의 기록흔적들

고려사를 조작한 조선의 기록 흔적들........ 1.태조 3년 갑술(1394, 홍무 27) 4월 14일(계미) -조선왕조실록 (중략)-왕씨 일족을 제거하기 위해 관원들을 삼척, 강화, 거제도에 보내다. “왕씨를 구처할 일은 한결 같이 각 관사(官司)의 봉해 올린 글에 의거하게하나, 왕 우(王 瑀)의 삼부자(三父子)는 선조(先祖)를 봉사(奉祀)하는 이유로써 특별히 사유(赦宥)한다.”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정남진(鄭南晉)과 형조의랑(刑曹議郞) 함부림(咸傅霖)을 삼척(三陟)에 보내고, 형조 전서(刑曹典書) 윤방경(尹邦慶)과 대장군 오몽을(吳蒙乙)을 강화(江華)에 보내고, 형조전서(刑曹典書) 손흥종 (孫興宗)과 첨절제사(僉節制使) 심효생(沈孝生)을 거제도(巨濟島)에보내었다. 2.태조 3년 갑술(1394, 홍..

궁녀의 품계

■ 궁녀의 품계 정5품 상궁(尙宮) : 왕비를 인도하며, 상기와 전언을 통솔함. 상의(尙儀) : 일상생활의 모든 예의와 절차를 맡았으며, 전빈과 전찬을 통솔함 종5품 상복(尙服) : 의복과 수로 무늬 놓은 채장을 공급하고, 전의와 전식을 통솔함. 상식(尙食) : 음식과 반찬을 준비하였으며, 전선과 전약을 통솔함. 정6품 상침(尙寢) : 왕을 일상으로 뵐 때와 왕이 옷을 입고 먹는 일의 진행을 맡았으며 전설과 전등을 통솔함. 상공(尙功) : 여공(女功)의 과정을 맡았고, 전제와 전채를 통솔함. 종6품 상정(尙正) : 궁녀의 품행과 직무단속 및 죄를 다스림. 상기(尙記) : 궁내의 문서와 장부의 출입을 담당. 정7품 전빈(典賓) : 손님 접대, 신하가 왕을 뵐 때 접대, 잔치 관장, 왕이 상을 주는 일 등...

서얼금고법 폐지상소(庶孼禁錮法廢止上疏)

국역승정원일기>영조 즉위년 갑진(1724, 옹정2)> 12월 17일(병술). ■서얼을 금고(禁錮)하는 법을 폐지하여 재능에 따라 호조 낭청 등의 요직에 조용(調用)해 줄 것을 청하는 진 사(進士) 정진교(鄭震僑) 등의 상소(263명) 진사(進士) 정진교(鄭震僑), 생원(生員) 정최령(鄭最寧), 유학(幼學) 이정화(李正華)ㆍ어유호(魚有浩), 진사 이정언(李廷彦), 생원 이집일(李集一), 진사 송수옹(宋秀雍)ㆍ정린(鄭璘), 유학 이만년(李萬年), 진사 정진규(鄭震奎)ㆍ송필위(宋必煒), 업유(業儒) 윤치(尹治)ㆍ이항녕(李恒寧), 유학 심복래(沈復來)ㆍ민효백(閔孝百)ㆍ이헌신(李獻身)ㆍ이만(李墁)ㆍ유하상(柳夏相), 업유 이도흥(李道興), 유학 신소(申紹)ㆍ이서채(李瑞彩)ㆍ이서표(李瑞彪)ㆍ이의인(李宜人), 업유 윤..

태종묘정배향인물5인(太宗廟庭配享人物五人)

연려실기술 ■ 태종묘정배향인물5인(太宗廟庭配享人物五人) ◉영의정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문충공 하륜(河崙) 상신(相臣)에 있음 ◉우의정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 충무공 조영무(趙英茂) 상신에 있음 ◉우의정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 익경공(翼景公) 정탁(鄭擢) 세종 때 상신에 있음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 명신(名臣)에 있음 ◉계성군 경절공(景節公) 이래(李來) 명신에 있음 -------------------------------------------------------------------------------------------------------------------------------------- 세종실록 태종의 배향 공신(配享功臣)에게 그 집 사당(祠堂)에 제사..

조선왕조 계보(1392~1910/518년)

대 왕 즉위년도 재위기간 주요 일지 1 태조 (太祖) 1392 6 -고려말 무신으로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우고,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 -1392년 조선왕조를 세움. 2 정종 (定宗) 1398 2 -사병을 삼군부에 편입시킴. 3 태종 (太宗) 1400 18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 -여러 가지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움 4 세종 (世宗) 1418 32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 -훈민정음 창제 -측우기,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창제 -북쪽에 사군과 육진, 남쪽에 삼포를 둠 5 문종 (文宗) 1450 2 -유교적 이상 정치 -문화를 발달시킴 6 단종 (端宗) 1452 3 -12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계유사화로 수양대군에 의해 영월에 유배 되었다가 죽임 을 당함 7 세조 (世祖) 1..

<고려왕조실록>을 조작하여 고려사를 남긴 조선의 기록-高麗(Goli)

을 조작하여 고려사를 남긴 조선의 기록.---高麗(Goli) 고려사의 내용중 고려조에서 내려오던 이 있음을 알게 된다. 조선초 1392년, 과거부터 내려오던 고서를 전부 수거(焚書)하기 시작하고 고려왕족을 멸족 시키기 시작한다. 태조, 태종조와 더불어 세종 ~ 단종까지 당시에 남아있던 진실한 고대사와 고려사를 수거하여 없애고 왜곡하는 극치를 이룬다. 고려사를 보면 고려의 왕들은 거의 즉위 초기 열심히 일하다 후반에 놀기 좋아하거나 모자란 사람들로 묘사하여 마치 고려가 위태 위태하게 5세기 동안을 버텨온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고려 원종때 원나라 침입에 항거하여 저항한 삼별초 기록에 진도와 제주도 등의 남해섬 들이 현재의 지리 상황과는 다르게 서술되고 있어 조선에서 개정한 현재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