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172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임란 때 왜군 절반이 조선백성이었다.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임란 때 왜군 절반이 조선백성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나흘만인 선조25년(1592년) 4월17일.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 신립(申砬)은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패배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선조는 도성(都城) 한양을 버리고 도망칠 궁리부터 했다. 선조 일행은 4월30일 새벽 서울을 떠나 5월1일 저녁 개성에 도착했다. 선조의 최종 목적지는 요동(遼東), 즉 만주였다. 조선을 버리고 요동에서 살겠다는 것인데, 이를 요동내부 책(遼東內附策)이라고 한다. 요동으로 건너가 명나라의 제후 대접을 받으며 살겠다는 것이다. 이때 류성룡(柳成龍)이 "안 됩니다. 대가(大駕: 임금이 타는 수레)가 동토(東土: 조선)에서 한 발짝만 떠나면 조선은 우리 땅이 아니게 됩니다"《선조수정실록..

김구 암살한 안두희 소위를 정중히 모셔라.

김구 암살한 안두희 소위를 정중히 모셔라.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ㅣ 2014-08-12 10:41 [임기상의 역사산책 75] 평생 양지만 쫓아 다닌 친일파 전봉덕의 인생행로 ◈ 헌병사령부,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보호하다.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백범선생 시신 앞에서 오열하며 조문하는 시민들 1949년 6월 26일 낮.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를 탈취한 헌병 대위 김병삼은 필동 헌병사령부로 달렸다. 득의만만한 표정의 김병삼은 스리쿼터에서 내리면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우선 안 소위를 의무실로 모셔라" 김병삼은 곧장 사령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봉덕 부사령관에게 무사히 빼돌렸다고 보고했다. 장흥 헌병사령관은 이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파주로 성묘를 가느라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전봉덕은 만면에 미소를..

장혜공 북창 정렴(章惠公 北窓 鄭磏) 이야기

■ 정렴(鄭磏) 1505(연산군 11)∼1549(명종 4). 조선 중기의 유의(儒醫).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 순붕(順鵬)의 아들이다.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어려서부터 천문·지리·의서·복서(卜筮) 등에 두루 능통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약의 이치에 밝았는데, 1544년 중종의 병환에 약을 짓기 위하여 내의원제조들의 추천을 받아 입진(入診)하기도 하였다. 포천현감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가 일상경험한 처방을 모아 편찬한 것이라는 『정북창방(鄭北窓方)』이 있었으나 유실되었다. 이 책은 양예수(楊禮壽)가 지은 『의림촬요(醫林撮要)』에 인용되어 있다. 조선시대 도가(道家) 내단(內丹)사상, 즉 단학(丹學)의 비조(鼻祖)로, 매월당 김시습, 토정 이지..

삼별초의 항쟁

■ 삼별초의 항쟁「三別抄의抗爭,1270~1273(원종 14)」 1258년 3월 고려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최의를 타도함으로써 4대 63년에 걸친 최씨정권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아직 무신들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대몽강경론은 수그러들지 않았으며, 태자가 몽고로 입조하는 것을 반대하며 끝까지 항쟁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다시 몽고의 침입을 유발하여 1258년 4월 몽고군이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몽고군은 서 북 지방을 거쳐 경기, 황해, 충청 지방을 제압할 뿐만 아니라 동북 지방으로 남진하여 1259년에는 인제 방면까지 진출하였다. 피해는 극심하였고 일부 지방에서는 백성들이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낀 끝에 지방관을 죽이고 몽고군에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몽고군은 강화도 건너편 경..

식민사관은 해방 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 이덕일 박사 강연

STB 스페셜 다시보기 - 이덕일 박사의 강연, STB역사 2014.11.07 17:41 ■ 식민사관은 해방 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상생방송에서 방송되었던 역사 강연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마련한 게시물입니다. 그 첫 순서로 STB 스페셜로 방영되었던 이덕일 박사님의 명 강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STB 스페셜의 강연은 2012년 가을 서울 낙원상가와 안국역 사이에 있는 천도교 본당에서 개최된 역사 강연회를 STB 상생방송에서 모든 내용을 촬영하여 방영되었습니다. 당시 저도 이 강연회를 직접 방문하여 경청 하였습니다(물론 끝까지요...) 이덕일 박사님은 현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에 계시며, 근대사에 대한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이 강연에서 일제에 의한 우리 역사의 왜곡의 실정과 그에 대..

검천전투(儉川川戰鬪) - 병자호란

검천전투(儉川川戰鬪)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 때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樂生面)의 「검천(儉川=또는 험천(險川) 이라고도 함」에서 조선군과 청나라 군이 벌인 전투를 말한다. 검천은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과 용인시 수지구의 경계를 이루며 탄천으로 합류하는 동막천을 가리킨다. 당시 청나라 태종이 직접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으나 곧 산성 주변을 포위당하였다. 이때 충청감사 정세규(鄭世規)가 근왕병의 명을 받고, 좌영장 최진립(崔震立), 우영장 심일민(沈逸民), 별장 황박(黃珀), 중군 이건(李楗), 참모관 이경선(李慶善), 방량차사원(放粮差使員) 이상재(李尙載), 군기차사원 김홍익(金弘翼), 심약(審藥) 이시량(李時亮)과 병사 7,000여명을 대..

이승만의 두얼굴

■ 이승만(李承晩)의 두 얼굴 인터넷에 이승만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죽은 자들만이 알고 있겠지만, 어떤 분들의 판단과 설득보다는 본인이 보고 판단했을 때, 그것이 진실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1948년 10.28 미 중앙정보부에서는 한국생존의 전망 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는 이승만의 인격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고 명시한다. 이 목적을 추구하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전쟁과 식민지로 인하여 몰락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선교사들의 지원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고, 석사 과정을 밟게 된다. 허나 이승만은 학점미달로 인한 석사 졸업을 하지 못하..

최명길과 김상헌

■ 주화파(主和派) 최명길과 주전파(主戰派) 김상헌 우리의 역사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로....조선 건국 당시의 정도전과 이방원....단종 폐위와 관련하여 사육신 성삼문과 신숙주.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의 김상헌과 최명길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충절과 변절 (忠節과變節)의 대비(對比)로 설명되거나, 개인의 가치관 또는 처세(處世)로 구별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유교의 다른 가르침에 있슴을 알게 된다. 유교가 발생한 중국에서....유교는 크게 두개의 흐름으로 나뉘어 서로 발전한다. 하나는 원리(原理)를 중시하는 성리학(性理學)과 보다 실질(實質)을 중시하는 양명학(陽命學)이 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철저한 유교 원리주의가, 또 그만큼 배타적인 성리학만이 발전하게 된다. 이는 우리의 국민성과도..

7년전쟁(임진왜란) - 김성한 저

[책소개] 동아시아 삼국을 둘러싼 서사, 7년전쟁의 전모!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그린 김성한의 역사소설 『7년전쟁』 세트. 1984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1년 만에 「임진왜란」으로 제목을 바꾸는 곡절을 겪기도 했는데, 2012년 60년 만에 돌아오는 임진년을 맞아 다시 펴내면서 원래의 제목을 찾게 되었다. 조선과 일본, 명이 얽혀 있었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루고 있다. 전쟁 발발에서부터 명의 참전과 휴전, 화평협상, 재침과 종전에 이르는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명한다. ‘임진왜란’ 하면 왜적, 이순신, 거북선 등 몇몇 단어만 연상하던 것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기존 패권국이었..

털어놓고 하는 이야기 - 李鍾贊 前 국가정보원장 (下)

■ 털어놓고 하는 이야기 - 李鍾贊 前국가정보원장(下) ◈1995년 조순 서울시장 후보에 DJ가 10억 만들어줘 ◈1996년 5월, 李康來·朴琴玉 등과 ‘동북아연구모임’이라는 위장 명칭으로 DJ대권프로젝트팀 가동 ◈ 1996년 제주도에서 DJ를 발가벗기는 비밀 워크숍 열어, DJ의 약점 중점 점검 ◈ 클린턴, DJ 당선 직후 전화 걸어 IMF협약 이행 강요. 金基桓씨 도움으로 고비 넘겨 ◈ 제16대 총선 낙선 후 만난 노무현, “박지원이하고, DJ는 나쁜 놈들” 욕해 1995년 지방선거는 내연(內燃)해 오던 김대중(DJ)씨와 이기택(李基澤) 민주당 총재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계기가 됐다. DJ는 조순(趙淳)씨를 서울시장, 나를 경기도 지사 후보로 내세워 수도권을 석권하려던 전략이 이 총재의 비협조로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