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172

2008년 12월 19일 "위장 귀순 이중간첩 이수근씨 무죄판결"

[오늘의 역사] 2008년 12월 19일 "위장 귀순 이중간첩 이수근씨 무죄판결" 2017. 12. 19. 0:17 1969년 3월6일 판문점을 통해 자진 월남했던 이수근씨가 위장귀순으로 밝혀져 검찰에 구속 송치되고있다. 위장 귀순한 이중간첩으로 몰려 지난 1969년 사형집행된 고(故) 이수근(당시 46세)씨에 대해 법원이 39년 만인 2008년 12월 19일 “이씨가 위장간첩이 아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1967년 3월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뒤, 1969년 1월 31일 위조 여권을 이용해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로 향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체포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 등으로 같은 해 7월 사형이 집행됐다. ↑1969년 ..

영천군(永川君) 이정(李定)의 풍류

용재총화 4.22/성현(成俔:1439~1504) 저 영천군(永川君) 이정(李定)의 풍류 영천군(永川君) 정(定)은 효령대군의 아들(다섯째)이다. 그의 부인은 우리 문중에서 갔으므로 서로 친히 지냈다. 그는 사람됨이 활달해 속박되지 아니했다. 성품 또한 순진하고 근엄해 무슨 일이든 곧이 대로 행했다. 시사(詩思)가 맑고 참신했으며 화격(畫格)도 또한 기이했다. 일생을 주색(酒色)에 빠졌다. 시골의 기녀가 처음으로 뽑혀서 서울에 오면, 공(公)은 집으로 맞아다가 의복을 잘 차려 입혔다. 얼마 안 있어 젊은 사람들이 유인해 도망해도 또한 찾지도 아니했다. 이런 까닭으로 평생에 잘되게 해 준 사람이 그 수를 모를 정도다. 집안 계집종은 모두 악공을 불러 시집을 보냈다. 한 병의 술을 얻더라도 풍악이 뜰에 가득해..

함양 황석산 피바위

“구차히 살아 무엇하리”… 황석산을 피로 물들인 민초들의 순국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 조선이 감당한 마지막 육전(陸戰) ↑황석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둘레 3km의 함양 황석산성. 정유재란때 사용됐던 무기고, 식량창고 등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경남 함양의 황석산성을 취재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저려옴을 느꼈다. 황석산(1190m)의 능선을 따라 설치된 산성을 찾아 오르는 길에 만난 ‘피바위’ 때문이었다. 성의 남문지(南門址) 근처 널따란 암석지대를 설명하는 입간판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성이 함락되자 성안의 부녀자들은 왜적의 칼날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십 척의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꽃다운 여인들이 줄줄이 벼랑으로 몸을 ..

"김영삼의 ‘전두환 재판’은 무효다"?

"김영삼의 ‘전두환 재판’은 무효다"? 5.18 30년 앞두고 “5.18특별법 위헌” 새 주장 “12.12는 대통령 사후 재가로 범죄 성립 안돼” “김영삼의 ‘전두환 재판’은 무효다.” 5.18 30주년을 앞두고 법학자 조문숙씨가 “5.18특별법은 명백한 위헌”이라는 주장을 해 화제가 되고 있다. 5·18 특별법은 1979년 12.12 사태와 1980년 5.18 사태에 관한 공소시효 정지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한 내용. 이 특별법에 따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법적 처벌을 받았다. 지난해 5.18특별법의 부당성을 다룬 책 ‘식인’을 펴냈던 조씨는 최근 ‘전두환 재심 프로젝트’(도서출판 be 펴냄) 라는 책을 새롭게 내놨다. 조씨는 이 책에서 5.18특별법과 관련, 1심, 항소심, ..

사도세자 배봉산에 잠들다

↑서울 휘경동에 소재하는 배봉산(拜峰山) 사도세자 배봉산에 잠들다 1735년 1월 21일~1762년 윤5월 21일)/ 향년 27세 글 : 조영희[(사)문화살림] 서울 휘경동 배봉산(拜峰山)이다. 배봉산은 1992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전체 면적은 265,582㎡(80,479평)이고 높이는 108m다. 그 주변에는 서울시립대학교와 위생병원이 있다.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잘 가꾸어 놓은 산책로도 갖추고 있다. 배봉산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평생에 못 다한 불효를 속죄한다며 날마다 부친의 묘소를 향하여 배례했다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고 전한다. 이곳 산기슭에 영우원(永祐園/사도세자의 첫 무덤)과 휘경원(徽慶園/조선 정조의 후궁이자 조선 순조의 사친인 수비 박씨의 무덤) 등 왕실의 묘원이 있어 길손..

박근혜 정부를 파멸로 몬 10장면

박근혜 정부를 파멸로 몬 결정적 10장면 [한국일보]등록 : 2017.03.10. 14:27/수정 : 2017.03.10. 14:27 ↑세월호 수색 한창때 박근혜 대통령은 미용시술 흔적, 세월호 유족 면담 3일전 얼굴에 피멍든 박 대통령,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이 한창이던 2014년 5월 13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제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에 피멍자국이 선명하다. 4년 남짓한 박근혜정부를 돌이켜 보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대선 직후 불거진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은 국정원장의 구속으로 이어졌고 이듬해는 세월호 참사로 국가적 비극을 맞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 등으로 민생은 고달팠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무능력, 아집에 대한 원성도 높았다. 박 대통령의 ..

[탄핵인용]'전원일치' 파면결정에 담긴 뜻?

[탄핵인용]'전원일치' 파면결정에 담긴 뜻? 2017년 3월 10일(금요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제18대 박근혜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전원일치' 의견에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헌재 선고 전 여론상으로는 박 대통령 탄핵평결에 참가한 8명재판관들의 성향에 따라 찬반이 엇갈릴 것으로 예측됐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 전 대통령이 추천한 재판관 2명을 포함, 평결에 참여한 8명전원이 박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재판관들은 박 대통령의 파면사유에 대하여는 일부 의견 차이를 약간 보였으나 파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에는 일치된 결론을 내 놓았다. 특히 대통령파면을 호소하며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과 탄핵청구인용에 반대..

노산군 부인을 첩으로 삼으려 했던 신숙주

[매경프리미엄] 배한철 ㅣ 입력 : 2016.02.05 15:42 ■ 미모 빼어난 단종의 부인을 첩으로 삼으려 했던 신숙주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읽기 - 41] 조선 말 3대 문장가로 꼽히는 김택영(金澤榮 : 1850~1927)이 구전 등을 정리해 엮은 《한사경(韓史綮)》에 "좌의정 신숙주(1417~1475년)가 노산군(魯山君) 부인(夫人: 定順王后 宋氏, 1440~1521)을 노비로 삼고자 주청하였으나 왕이 윤허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김택영은 "세조가 조카를 죽이고 여러 아우들을 살해하여 임금의 지위를 훔친 것도 사악한데 「신숙주가」가 단종부인(端宗夫人)을 노비로 삼겠다고 청한 것은 매우 간사하고 악한 짓"이라고 평가했다. 정순왕후는 미인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에 이끌려 신숙주는 한때 주군..

병인양요(丙寅洋擾), 아직 안 끝났다.

■ 병인양요, 아직 안 끝났다. 양헌수와 조선軍의 외침 들리는가… “강화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내놔라” 이덕일의 산성기행 | 강화 정족산성 강화도만 제대로 답사해도 한국사 대부분을 꿰찰 수 있다. 강화도는 ‘역사문화답사 1번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전 시대 유물·유적이 널려 있다. 강화는 예로부터 갑비고차(甲比古次)·혈구(穴口)·해구(海口) 등으로 불렸다. 지리지는 “강화는 고구려의 혈구군으로 바다 가운데에 있고 신라 경덕왕 때 해구군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갑비고차란 현대어로 ‘갑곶’ 또는 ‘갑곶이’라는 말로, ‘고차’는 바다로 돌출된 곶(串)을 뜻한다. 강화 동쪽 바닷가에는 갑곶리라는 명칭이 남아 있다. 갑은 둘(2)이라는 뜻인데, 한강 하류의 조..

위장 간첩 이수근 체포

1969.1.31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위장간첩 이수근 체표 압송 장면 개그맨 이수근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가 TV를 보시다가 무심코 한 마디 하셨다. “이수근 이수근 하니까 난 그 이수근이 생각이 나서.............” ‘그 이수근’이란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을 통해 남쪽으로 탈출한 북한 중앙 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이었다. 그에게는 ‘위장간첩’이라는 별칭이 아호처럼 따라붙는다. 위장간첩 이수근.....그의 탈출은 영화와 같았다. 정전 회담을 취재차 판문점에 왔던 그는 한국측 인사에게 귀순 의사를 밝혔고 이에 미군 장교가 갖다 댄 차에 날쌔게 올라탄 후 북한측의 차단봉을 뚫고, 아차 하는 순간 분계선을 넘는다. 인민군은 총을 쏘며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20초 정도에 전광석화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