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검천전투(儉川川戰鬪) - 병자호란

야촌(1) 2013. 10. 30. 23:37

검천전투(儉川川戰鬪)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 때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樂生面)의 「검천(儉川=또는 험천(險川) 이라고도 함」에서 조선군과 청나라 군이 벌인 전투를 말한다.

 

검천은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과 용인시 수지구의 경계를 이루며 탄천으로 합류하는 동막천을 가리킨다. 당시 청나라 태종이 직접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으나 곧 산성 주변을 포위당하였다.

 

이때 충청감사 정세규(鄭世規)가 근왕병의 명을 받고, 좌영장 최진립(崔震立), 우영장 심일민(沈逸民), 별장 황박(黃珀), 중군 이건(李楗), 참모관 이경선(李慶善), 방량차사원(放粮差使員) 이상재(李尙載), 군기차사원 김홍익(金弘翼), 심약(審藥) 이시량(李時亮)과 병사 7,000여명을 대동하고 가장 먼저 남한산성으로 진격하여 같은해 12월 27일 검천에 이르렀을 때, 매복한 청나라 태종의 매부인 양굴리(揚古利) 장수의 10만 대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 끝에 최진립 이하 모두 진중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단 심일민은 힘껏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을 뻔하다 죽음에서 벗어났고, 정세규는 절벽으로 굴러 떨어졌다가 부하들에게 구출되어 수원으로 퇴각하였다.

 

검천전투의 패배에 대하여 《동명해사록(東溟海槎錄)》에는 '수천 명의 충청도 근왕병 시체가 험천에 쌓이고 그 피가 수십 리까지 이어져 말이 나아가지 못할 정도로 참혹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병자호란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