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남극관 선생 묘.

●남극관선생 묘. ♣ 시대 : 조선 숙종37년(1711)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5호 ♣ 지정년월일 : 1990.11.22 ♣ 소재지 : 용인시 모현면 초부리 산1-5 ♣ 소유자 : 남표희(南杓熙) ♣ 규모 : 비높이 90㎝, 폭 67㎝, 두께 35㎝ 재료 : 토분 및 석물 -------------------------------------------------------------------------- 남학명(南鶴鳴)의 아들로 남구만의 손자이다. 座隅覺暑退 / 좌우각서퇴 자리 옆에 더위가 물러가더니 隙見陰移 / 첨극견음이 처마 틈의 그늘도 옮기어 간다. 竟日無語 / 경일묵무어 온 종일 묵묵히 아무 말 없이 陶情且小詩 / 도정차소시 정 빚어 한편의 시를 짓는다 더운 여름, 닫힌 방안이 푹푹 찐다. 한..

안성 전주이씨 이해룡 고가(安城 李海龍 古家)

■ 안성 이해룡 고가(安城 李海龍 古家) ↑상량문에 의하면 이 건물은 1797년(정조 21)에 신축되어 2000년에 허물어져 없어졌다. ↑중수하기전의 옛건물 ↑2006년 11월에 위의 건물을 다시 복원했다. [명칭] 이해룡고가 (李海龍古家) [지정종목]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3호 [지정일] 1985년 -9월 20일 [수량] 1동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78번지 [시대] 조선 [종류/분류] 가옥(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7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통가옥) --------------------------------------------------------------------------------------------------------------------------------- ..

과전이하(瓜田李下)

■ 과전이하(瓜田李下) 瓜(오이과), 田(밭전), 李(오얏나무 이), 下(아래하)자로,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이다. 전국시대의 주(周)나라 열왕(烈王) 6년(B.C 370), 제(齊)나라 위 왕(威王)때의 일이다. 위 왕이 즉위한지 9년이나 되었지만 간신 주파호(周破湖)가 국정을 제 멋대로 휘둘러 왔던 탓에 나라꼴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를 보지 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 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오니 그를 내치시고 북곽(北郭) 선생과 같은 어진선비를 등용 하시오소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파호는 우희와 북곽 선생은 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우희를 모..

신수근(愼守勤, 1450~1506) 묘

■ 신수근 묘 신수근愼守勤)은 10대 연산군의 처남이자 중종의 장인으로서 본관 거창(居昌). 자는 근중(勤仲). 호는 소한당所閒堂). 시호는 신도(信度). 성종때 음보로 장령(掌令)이 되어 우부승지· 중추부첨지사 ·호조참의를 역임하고, 1495년 연산군비가 된 누이의 덕에 승지가 되었다. 같은 해 선위사(宣慰使)로서 평안도 지방을 순회하고 우승지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거쳐 우찬성(右贊成)에 올랐다가 파직되었다. 1504년 다시 돈령부첨정(敦寧府僉正)에 기용, 이듬해 우의정으로 등극사(登極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1506년 좌의정에 올랐다. 이때 사위인 진성대군(晉城大君 : 中宗)을 옹립하고 함께 반정(反正)을 도모하자는 박원종(朴元宗)등의 제의를 거절했다가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3형제가 유자광(柳子..

흥선대원군 묘의 기구한 사연.

서울 역사박물관 자료집 " 흥원천 봉등록 " ●풍운아 흥선대원군 묘의 기구한 사연.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온갖 수모와 능멸을 참아내며 세상을 바꿀 꿈을 꾸던 흥선대원군 이하응. 그가 마련한 비장의 한 수는 아버지 남연군묘의 이장이었다. 이하응은 '2대에 걸쳐 군왕이 날 자리'라는 지관의 말을 믿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묘를 충남 예산으로 옮겼다. 이장한 지 7년 뒤 아들 명복은 왕위에 올랐다. 손자 순종도 황위에 올랐으니 2대군왕지지(二代君王之地)라는 지관의 말에 틀림은 없었다. 광무2년(1898년) 2월 흥선대원군은 경기도 고양군 공덕리(현 서울 마포구 공덕4동)의운현궁 별장 '아소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생전 아버지 묘를 쓰는 일에 운명을 걸었던 노정객은 그대로 '아소당' 뒤뜰에 묻혔다...

광평대군 묘(廣平大君墓域) - 세종대왕의 5자

↑세종대왕(世宗大王)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廣平大君) 장의공(章懿公) 이여(李璵)의 묘(墓)이다. 광평대군은 세종7년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5남으로 태어나 8세 때에 광평 대군의 봉작되었다. 배위는 여가부부인 평산신씨이며 증 좌의정 신자수의 따님이다. 묘지명은 대제학 이계전이 신도비명은 청양군 심의겸 이 찬하였다. ↑좌측이 광평대군(廣平大君)의 묘이고 우측이 배위 부부인 평산신씨(申氏)의 묘로 쌍분(雙墳)이다. ↑광평대군의 묘표 ↑봉분(封墳)의 정면중앙에 묘표(墓表)을 세우고 그 앞에는 상석(床石)을 놓았다. 상석(床石)의 고임돌 은 능의 고석(鼓石)과는 달리 방형의 돌을 4개 사용하였다. ↑묘의 전면과 좌우 앞쪽으로 석축을 쌓았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상석의 정면에 약간 거리를..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

■충무공 이순신 장군묘. 답사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한번 사진자료를 올립니다. 여기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에 위치해 있는 이충무공묘소입니다. 이 무덤형식을 보면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고관대작의 무덤형식으로 지위가 높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충무공묘비에 보면 일등공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등공신은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功臣), 2등공신은 효충장의협력선무공신, 3등공신은 효충장의선무공신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묘비 전면에 보면 무덤주인의 신분이 어떤지 바로 알수가 있습니다. 1등공신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충장공 권율(權慄)· 원릉군 원균(元均), 2등공신은 신점(申點)· 권응수(權應銖) ·김시민(金時敏)· 이정암(李廷)· 이억기(李億祺), 3등공신은 정기원(鄭期遠)..

흥선대원군의 묘(흥원)

↑흥선대원 묘 후경 ↑흥선대원군 묘 전경 /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산 22-2번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묘역을 흥원(興園)이라고 칭한다. 처음에는 경기도 고양군 공덕리에 예장했는데, 1906년 파주군 대덕리로 이장되었고 1966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창현리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산 중턱에 2단으로 나뉘어져있고 봉분을 따라 기와를 얹은 나즈막한 돌담이 둘러져 있다. 봉분에는 낮은 호석(護石)이 둘러져 있는 비교적 아담한 원형 봉분에 앞에는 상석이 놓였다. 봉분 옆에는 좌우 1쌍의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이 2기씩 각각 서 있다. 하단에는 중앙의 명등석(明燈石)을 중심으로 좌우 1쌍인 망주석(望柱石)·문인석(文人石)·마석(馬石)이 2기씩 각각 ..

계구우후(鷄口牛後)

■계구우후(鷄口牛後) 鷄(닭계), 口(입구), 牛(소우), 後(뒤후)자로 닭의 부리가 될 지언 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으로, 곧 큰 집단의 말석 보다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말이다. 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의 도읍 낙양(落陽)에 소진(蘇秦)이란 종횡가(縱橫家 : 모사)가 있었다. 그는 합종책으로 입신할 뜻을 품고,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동진(東進)정책에 전전긍긍 하고 있는 한(韓),위(魏),조(趙),연(燕),제(齊), 초(楚)의 6국을 순방하던 중 한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말했다. "전하" 한나라는 지세가 견고한데다 군사도 강병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아니하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겨놓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