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허 난설헌 묘(許蘭雪軒墓)

■ 허난설헌 묘 경기 기념물 제90호 소재지 : 경기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안동김씨 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 광주선영지 묘역 및 허난설헌지묘 입구 표석이다 ↑이장하기 이전의 허 난설헌의 묘지 모습이다/(2002. 8. 29. 영환(문) 제공) 1985년 중부고속도로 건설로인하여 부득히 현위치에서 좌측으로 약 500m 지점인 안동김씨 선산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허난설헌 묘(許蘭雪軒 墓)의 측경(側景) ↑허난설헌 묘(許蘭雪軒 墓) ↑건너 중부고속도로가 보인다. 허난설헌의 묘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의 중부고속도로 옆 경수산 기슭에 있다. 처음 그녀의 묘는 지금의 위치에서 약 500m 우측에 있었으나 1985년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현 위치인 안동김씨 선산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그녀의 묘소 ..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면초가(四面楚歌) 四(넉사),面(낮면),楚(초나라초),歌(노래가)字로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소리란 뜻으로 사방으로부터 물셀틈 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를 말한다.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 왕(漢王)의 유방(劉邦)은 홍구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다툼을 멈췄다. 힘과 기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같은 유일한 모신(謨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서주)을 향해 철군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진평(陳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

『창경궁 궁중혼례』 王과 妃 공개 선발

『창경궁 궁중혼례』 王과 妃 공개 선발 시민이 참여·체험할 수 있는 궁중혼례를 시행하여 궁중 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해외 관람객에게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동 혼례의 주인공인 “왕과 비”를 공개 선발한다. 「창경궁 궁중혼례」는 영조대왕이 66세에 15세의 정순왕후를 계비로 맞이하는 혼례절차를 기록한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를.....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중 친영반차도(영조35, 1759) ↑ ↑ 악대와 군인들이 선도하여 영조의 가마 주변에 총·창·활을 멘 군인들이 호위하고 있으며, 그 뒤로 정순왕후가 탄 가마가 상궁·별감·시녀들의 악대와 군인들이 선도하여 영조의 가마 주변에 총·창·활을 멘 군인들이 호위하고 있으며, 그 뒤로 정순왕후가 탄 가마가 ..

白頣正先生神道碑銘 幷序 - 익재의 스승이고, 사돈지간임

高麗國三重大匡上黨君文憲公彛齋白先生神道碑銘 幷序 고려국삼중대광상당군문헌공이재백선생신도비명 병서 ※익재공의 둘째아들 운와공 달존의 장인. 輔國崇祿大夫兼吏曹判書致仕奉 朝賀安東 金履陽 撰 資憲大夫禮曹判書兼知 經筵事弘文館提學全城 李翊會 書 輔國崇祿大夫行知中樞府事兼吏曹判書判義禁府事弘文館提學世孫右賓客 徐俊輔 篆 我東僻在海隅人文開塞之運宜若不並中華 觀於箕聖東來仲尼欲居文明之兆已㫼焉由 是安文成公當麗代佛敎之漫 葺聖廟宗孔氏門人彛齋白公入中原 購得程朱全書 與李益齋朴耻庵諸公講誦討論揚 厲發揮環海數千里章甫之士 殆庶乎一變至道逮夫 我朝眞儒繼緖雲興霞蔚斐然成章 先輩所云自朱子歿吾道東來者儘非夸毗之言也 揚子雲曰聖人者天之譯也盖言 天道無爲故惟聖代其工而明其道也 推此而論之程朱孔氏之譯 白公又程朱之譯也 原原本本厥功誠不在文成之下矣然而世之等前世者往往知文成而不知 ..

오윤겸 선생 묘.

■ 추탄 오윤겸선생 묘(楸灘 吳允謙先生 墓) 오윤겸선생의 묘는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오산리 산5번지 양촌 해주오씨(海州吳氏) 선영 서남향에 위치해 있다. 근래에 후손들이 묘역을 새로 단장하였다. 묘는 정경부인(貞敬夫人) 경주이씨[慶州李氏/청호공 희(暿)의 현손인 26世 첨사공(僉使公) 응화(應華)의 장녀(長女)]와 쌍분을 이루고 있으며, 봉분에 호석 (護石)을 둘렀다. 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져 있고, 상석 전방에는 동자석이 좌우에 갖추어져 있다. 동자석 전방에는 망주석, 문인석 등의 석물이 좌우에 비치되 있다. 묘비는 화강암으로서 풍우에 의하여 비문의 마모가 심하다. 비좌는 축면에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고 상부 모서리에는 복련 (覆蓮)이 새겨져 있다. 비의 규모는 총높이 292cm, 비높이 226..

신숙주선생 묘(申叔舟 先生墓)

↑소재지>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산53-7 ↑신숙주선생 영정 ●신숙주(申叔舟)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 덕린(德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참의 포시(包翅)이고, 아버지는 공조참판 장(檣)이며, 어머니는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사마양시에 합격하여 동시에 생원·진사가 되었다. 이듬해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농시직장(典農寺直長)이 되고, 1441년에는 집현전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442년 국가에서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게 되자 서장관으로 뽑혔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참가하여 공적이 많았다. 중국음을 훈민정음인 한글로 표기하기 위하여 왕명으로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유배중이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

김상용선생 묘(金尙容先生 墓)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선생 묘 경기도 기념물 제99호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좌측에 김상용(金尙容) 선생의 묘역이 있으나 잘 눈에 띄지 않아서 지나치기 쉽습니다. 좌측의 작은 언덕에 비각이 보입니다. 비각을 올라서 뒷편을 보면 10여기 정도의 묘가 있습니다. 묘역 우측 하단에는 신도비가 서 있으며, 신도비 머릿돌의 조각이 정교합니다. 김상용 선생의 묘는 묘역 중앙 상단에 있으며, 봉분에 호석은 최근에 보수하면서 두른것 같습니다. 묘역 앞에는 묘지와 상석이,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서 있습니다. 묘역에 별 다른 특징은 없습니다. ↑김상용선생 묘 ↑김상용선생 신도비 조선 선조·인조 때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때 순국한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1561∼1637) 선생의 묘소이다. 선조 23년(..

김상용과 김상헌 선생 형제 묘.

■ 문충공 김상용과 문정공 김상헌 석실서원(石室書院)은 문충공 김상용(1561∼1636)과 문정공 김상헌(1570∼1652)의 충절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1656(효종4) 지방유림의 뜻을 모아 창건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서원중의 하나이다. 형제 간인 두 사람은 모두 병자호란 때 충절을 지킨 인물들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ㅣ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라는 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상헌은 병자호란때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하다가 중국 심양까지 볼모로 잡혀갔는데 그곳에 서도 결코 절의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남양주시 수석동에 '석실서원지'라고 새긴 화강암 비석만 남아 있는 석실서원은 창건된 이후 양주를 비롯한 경기 일원 유림의 근거지이자 조선후기 ..

12간지 해설(12干支解說)

■ 십이간지 해설(12干支解說) 고전(古典) 속에 나타나 있는 십이지(十二支)의 해설을 원전(原典)과 함께 여기 소 개 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子(鼠) ◇子者, 滋也 萬物滋於下也.(史記. 律書) ◇孶萌於子(자맹어자)(漢書, 律歷志) ◇子, 孶也. 孶孶已也.(白虎通, 爵) [解] ◇子는 번식한다는 뜻이며, 만물은 아래에서 번성하는 것이다. ◇子는 부지런히 싹트는 것이다. ◇子는 부지런한 것이다. 부지런히 늘어 나는 것이다. ●丑(牛) ◇丑, 紐也. 容氣屈紐也. (釋名, 釋天) ◇丑, 紐也, 言陽氣在上未降, 萬物厄紐未敢出(史記, 律書) [解] ◇丑은 끈으로 동여매는 것이다. ◇容과 氣가 구부러지는 것을 동여매는 것이다. ◇丑은 끈으로 동여매는 것이다. ◇양의 기가 위에 있으며 내려오지 않아, 만물..

두사충(杜師忠) 선생 묘.

↑두사충선셍 묘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716 ↑두선생묘의 후경 ↑ 뒤쪽에 보이는 비가 두선생의 신도비이다. 두사충 묘 옆엔 낡은 신도비가 하나 서있다. 마지막 구절은 ‘삼도통제사 이인수찬'(三道統制使 李仁秀撰)이다. 이인수는 이순신의 7대손이 된다. 두사충은 이순신과도 친교가 깊었다. 이순신의 처음 묘터도 그가 잡았다 한다. 전쟁터에서 맺은 선조들의 인연, 그 아름다운 인연을 후손들이 이어간 셈이다. ↑모명재(慕明齋) ■ 두사충(杜師忠) 조선시대 명풍수로서 숱한 전설을 남긴이 가운데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21대손 두사충(杜師忠)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돕기 위해 중국에서 온 섭정국(葉靖國), 시문용(施文用), 이문통(李文通) 등과 같은 풍수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