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배운다는 것과 가르친다는것.

■ 배운다는 것과 가르친다는것. "배운다는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남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럼으로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지않으면 지혜로울 수 없고 가르치기를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어질수가 없다." 따라서 책을 볼때 마다 매번 한 가지 의미를 터득한다면, 그것은 진주로 장식한 배와 같은 진귀한 물건을 얻은 것과 같다. ------------------------------------------------------------------------------------------------------------------------------------------------------- ■ 임자(任子) 생몰년 미상, 백제 의장왕 때의 대신으로 관직은 좌평(오늘날 장관급)이었다. 신라의 ..

숭정년간(崇禎年間)을 서기로 환산

■ 숭정년간(崇禎年間)을 서기로 환산 1628 戊辰 숭정후 戊辰 숭정1 1629 己巳 숭정후 己巳 숭정2 1630 庚午 숭정후 庚午 숭정3 1631 辛未 숭정후 辛未 숭정4 1632 壬申 숭정후 壬申 숭정5 1633 癸酉 숭정후 癸酉 숭정6 1634 甲戌 숭정후 甲戌 숭정7 1635 乙亥 숭정후 乙亥 숭정8 1636 丙子 숭정후 丙子 숭정9 1637 丁丑 숭정후 丁丑 숭정10 1638 戊寅 숭정후 戊寅 숭정11 1639 己卯 숭정후 己卯 숭정12 1640 庚辰 숭정후 庚辰 숭정13 1641 辛巳 숭정후 辛巳 숭정14 1642 壬午 숭정후 壬午 숭정15 1643 癸未 숭정후 癸未 숭정16 1644 甲申 숭정후 甲申 숭정17 1645 乙酉 숭정후 乙酉 숭정18 1646 丙戌 숭정후 丙戌 숭정19 1647 丁..

곡학아세(曲學阿世)

■ 곡학아세(曲學阿世) 曲(굽을곡), 學(학문학, 배울학), 阿(아첨할아, 언덕아), 世(인간세, 대세), 자(字)로 학문을 굽히어 세속(世俗)에 아첨 한다는 뜻으로, 정도를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함을 이르는 말이다. 한(漢0나라 6대 황제인 경제(BC, 157-141)는 즉위하자 천하에 널리 어진 선비를 구해 다가, 산동(山東)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시인(詩人)을 등용 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90세의 고령 이었었나 직언을 잘하는 대쪽같은 선비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당시 사이비 학자들은 원고생을 중상비방(中傷誹謗)하는 상소를 올려 그의 등용을 극력 반대 했으니, 하지만 경제는 끝내 듣지 않았다. 당시 원고생과 함께 등용된 소장(小壯) 학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산동 사람으로, 이름..

최항 묘지명(崔沆墓誌銘) - 고려 무신정권의 집권자

■ 강민제세공신(康民濟世功臣)이고, 특진 금자광록대부 수대사 개부의동삼사 중서령 상주국 상장군 감수국사 판이부 어사대사 대자대사 진평군개국공 식읍 3,000호 식실봉 1,000호(特進 金紫光祿大夫 守大師 開府儀同三司 中書令 上柱國 上將軍 監修國史 判吏部 御史臺事 大子大師 晉平郡開國公 食邑 三千戶 食實封 一千戶)이며, 추증된 시호가 광정공(光正公)인 최공(崔公) 묘지명 「홍범(洪範)」의 오복(五福)에는 작위(爵位)와 공명(功名)은 들어 있지 않다. 수(壽)를 누린 것을 첫째로 치기 때문에, 만일 대장부가 이 세상에 태어나 젊은 나이[妙㱓]에 공명을 얻고 부귀를 누렸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어찌 감히 장수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기겠는가. 생각하건대 공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공의 성은 최씨(崔氏)..

제수의 종류

1.과(果) 나무 열매인 생과(生果)와 약과, 산자등 조과(造菓)로 그 종류는 짝수로 한다. 조(棗=대추), 율(栗=밤),시(枾=감), 이(梨=배)등 4가지 생과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이들 생 과만이 제사상에 올라갈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거나 새로운 것들은 회피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런 것들을 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음식이 있을 때 어른께 먼저 드리고 먹는 일상의 풍습을 참고한다면 제사상에 새로운 음식을 올려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포(脯) 어류나 육류를 말린 것이다. 3.해(醢) 생선이나 고기를 소금에 절여서 만든 음식으로 젓갈을 말한다. 과일, 포와 함께 제사음식의 기본이었으나 지금은 과일과 포만을 기본으로 하고 해는 쓰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4.육(肉) ..

등고자비(登高自卑)

■ 등고자비(登高自卑) 登(오를등), 高(높을고), 自(스스로자), 卑(낮을비)는 높은곳을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군자(君子)가 중용의 도를 실행함에 있어 가까운 곳에서 부터 한발자국, 한발자국 먼 곳에 이르듯이 또는 낮은 곳에서 부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높은 곳에 이르듯이 하여야 한다. 우리 속담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우리속담과 일맥상통 한다고 볼수 있다.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에 군자는 아래서 부터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닷물을 관찰하는데 몇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 반듯이 그 움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 마차 해와 달을..

黃僉知慶壽宴序(황첨지 경수연 서)

[柏谷先祖文集冊五] ※황첨지(黃僉知)는 선산(善山)의 덕산황씨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1521(중종 15)~1575(선조 8)」 서예가를 말함. ■ 黃僉知慶壽宴序 黃僉知長督震龍氏與余同庚。歲丁巳。黃僉知携震龍氏翊洛中。爲震龍觀司馬會科也。震龍氏善楷隷草聖。名動縉紳間。爲冠冕一代。歲在癸丑。先君爲嶺南均田使。往善州見震龍氏草聖奇。揚厲其名。是以震龍氏之入洛也。不之他所。直到吾家仍留着。其時余齒雖同而筆不能成字樣。文不解丁字。然震龍氏不以不才棄。乃與之交。以之情密。其後有便自嶺南至。輒必寄書以訊。丙子。㺚兵大猘。余避地善州。震龍氏已作泉下人。訪黃僉知。則黃僉知見余敍舊時事。蔌蔌泣下。以余與震龍氏同庚交密故也。乃今聖后用其優老之典。黃僉知年旣八袠。蒙通政之賜。此門闌大慶。季胤元龍氏榮其主恩。是年季冬。爲設慶席。獻以壽杯。旁近邑及鄕黨之長者小者咸集其家慶之。隆懽娛之極爲..

익재공의 제향 주관에대하여.....

익재공(益齋公 諱 齊賢)의 제향(祭享)은? [질문] 글쓴이: 이이우번호 : 374조회수 : 132007.10.07 20:03 아래의 글은 메뉴판 '창작시. 글' 난에 올려 졌던 글을 삭제하고 하나로 묶어 이곳에 올렸습니다. ■ 익재공(益齋公 諱 齊賢)의 제향(祭享)은? 이 글의 일부는 족보에 수록된 글이지만 ※표시의 글은 확인이 필요한 내용입니다. ◈판윤공 파보 제1권 54쪽 판윤공묘갈문(判尹公墓碣文) ◇통정대부 비서원 승 장례원 장례(通政大夫秘書院承掌禮院掌禮) 종형(鍾瀅) 근지 (謹識) 휘 종형(鍾瀅) 주임관이 지은 글 중에 56쪽 우(右) 둘째 줄에 [是生判書諱瑄 判書二子 長諱之會 后孫不見 甲子譜 次卽判尹公 實主 益齋府君祀] 판서를 낳으니 휘는 선이요, 판서가 두 아들이 있으니 장자의 휘는 지회이나 ..

궁중혼례

창경궁 궁중혼례창경궁 궁중혼례 2007년 6월 2일(토), 창경궁 통명전에서 문화재청이 영조대왕이 66세에 15세의 정순왕후를 계비로 맞이하는 가례(嘉禮) 과정이 잘 기록 되어있는《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를 바탕으로 학계 및 실무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구성한 것입니다. ↑왕과 비로 선출된 신랑. 신부^^ 영조임금이 실제로 혼례를 하였던 통명전에서 실시하였습니다. ↑신랑이 참 잘 생겼습니다.^^ ↑이날 관람객들도 참 많았네요.^^ ↑신랑과 신부 나란히 서서^^너무 부럽네요.^^ ↑어가행렬입니다. ↑신랑 클로즈 업 ↑황후는 가마타고 행렬 ↑자태가 참 아름답습니다. ↑참 단아한 모습입니다.^^ 창경궁 궁중혼례 2007년 6월 2일(토), 창경궁 통명전에서 문화재청이 영조대왕이 66세에 15세의 정..

남인과 서인의 가례법

■ 남인「조율이시」과 서인「홍동백서」의 가례 법 ●우리나라 가례(家禮) 근원의 약사(略史) 선사시대로부터 공자(孔子 : 522∼479BC)를 거처 주자(朱子 : 1130∼1200)에 이르기 까지 의례에 관하여 구전(口傳)과 관습 체계화되지 않는 예서(禮書)를 수집 집대성하여 편찬한 책이 주자가례(朱子家禮)이다. 저자는 주자가 아닌 명(明) 나라의 구준(丘濬)이다. 우리나라 개국(開國)초부터 내려오던 민속신앙의 관습과 퇴계「退溪 : 1501(연산군 7)∼1570(선조 3)」와 율곡「栗谷 : 1536(중종 31)∼1584(선조 17)」에 이르기 까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근간으로 우리나라 가례의 근본이념을 정립(定立) 실시 해왔다. 그 뒤 퇴계문인 중심이 된 남인(南人 : 영남학파)과 율곡문인이 중심이 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