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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지진(2011년 3월 11일 금요일 발생)

거대한 재앙앞에 무너진 '30년 인간의 꿈' YTN | 입력 2011.03.14 04:43| [앵커멘트] 지진과 해일에 대한 준비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일본인이었지만 이번 대지진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습니다. 쓰나미를 막자고 무려 30년을 거쳐 만든 역사적인 대형 구조물 역시 거대한 바닷물의 습격을 막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이승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비교적 조용한 어촌마을인 타로 지구가 유명해진 것은 이 거대한 방조제 때문입니다. 지난 1933년 산리쿠 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를 겪은 뒤 이 것을 만들었습니다. 높이 10m, 길이 2km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다 만드는 데만 꼬박 30년이 더 걸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난공불락의 요새 안에 사는걸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11일의 대지진은..

민족시인 이상화

영남일보 2005-01-04 09:57:09 입력 [이상화]3.1운동 때 대구서 만세운동 주도한 민족시인.ㅣ 경북 대구에 살고 지고 [역사속의 영남사람들. 제52] 이상화 ●글로 몸으로 일제에 저항 ●3·1운동때 학생동원 대구서 만세운동주도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발표 ●후진양성에도 힘써…광복2년 앞두고 숨져 ●題字 : 토민 전진원 ↑아상화시인 고택(대구 중구 계산동)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 가도다. 망각 속에 있는 간도와 요동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아가도다. 자갈을 밥으로 해채를 마셔도/ 마구나 가졌으면 단잠을 얽을 것을 인간을 만든 검아 하로일즉/ 차라리 주린목숨 뺏어가거라 ('가장 비통한 기욕(祈慾)' 55, 1925년) 시인의 문학작품은 식민지 대중이 처한 비참하고 고통..

정영진의 대구이야기(27) / 문화계 분열

정영진의 대구이야기(27) / 문화계 분열 [매일신문 2006-07-03 13:27] /뉴스-문화일반 해방정국의 좌우대립현상은 문화계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45년 10월25일에 발족한 ‘죽순(竹筍)시인구락부’(대표 李潤守시인)나, 이해 12월30일에 결성된 ‘조선아동회’(대표 李永植목사)가 닻을 올리던 무렵만 해도 박영종(朴泳鍾. 필명 박목월), 김홍섭(金洪燮), 김진태(金鎭泰), 이원식(李元式) 등이 이념을 초월하여 어울렸다. 그러나 1946년 5월27일 “향토예술의 탐구발전을 기 한다”는 기치아래, ‘경북예술가협회’(회장 崔海鍾. 문학부장 박목월)가 결성될 무렵은 이미 분열의 징후가 뚜렷했다. 범 우익성격의 이 단체는 사실 45년 12월16일에 결성된 범 좌익단체인 ’경북문화건설연맹‘(위원장 李命錫...

“우리의 가치가 싫으면 떠나라”

조화롭게 살자더니… “우리의 가치가 싫으면 떠나라” 유럽 우파정부 ‘다문화주의’ 정책 포기 ‘국가 통합’에 방점 경향신문 | 이지선·김향미 기자 | 입력 2011.02.15 21:47 | 수정 2011.02.15 22:47 | 영국과 프랑스, 독일 정상이 잇달아 '다문화주의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한 사회가 이민자들의 독특한 문화와 공존하는 형태의 다문화주의는 이민국가인 미국, 캐나다, 호주는 물론 세계화로 인해 이민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각국에서 이민자 정책의 근본 철학이 돼 왔다. 유럽 3국 우파정부 지도자들은 '공존'의 가치를 강조한 다문화주의를 실패로 규정짓고 '통합'의 가치에 방점을 찍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얼핏 이민자를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자성(自省)으로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

당호(堂號)란 무엇인가?

대학국어강의 자료> 우리선조들은 집을 장(莊). 옥(屋)이라 했고[후세엔 장((莊)을 여관으로, 옥(屋)을 대포 집으로 전락했음] 작은집을 사(舍)라 했다. 사재척언(思齋燧言)이란 문헌에 보면 옥(屋)자를 풀어 송장(戶)이 이른다. 지(至)는 뜻이요. “사”자를 풀어 사람(人)이 길(吉)하다는 뜻이니 옛말은 개념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집을 나타냈던 옛말 가운데 장(莊). 각(閣). 대(臺).등이 있었지만 이는 사대부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호화 주택이었고, 일반 백성에게는 지극히 예외적인 집들이다. 대부분 오두막, 주막, 새막(幕)을 뜻하는 무릎굽힐 수 있을 정도 공간을 뜻하는 사(舍), 겨우 비나 별을 가린다는 뜻인 헌(軒), 책을 읽고 도를 닦는 집이란 뜻인 제(齊), 그리고 흙위에 지붕만 ..

전두환 前 대통령, "모내기 해준 논에서 벼베기도"

모내기 해준 논에서 벼베기도 1982년 9월 18일(토) 洪 承 祚(농민.경기 안성) ▲나는 경기도 안성군 대덕면 내리 부락의 농민이다. 지난 82년 5월 25일(화) 대통령이 오셔서 우리 마을 김구영씨 논 3천여평에 모내기를 해 주시고, 또 그해 가을(9월 18일 토요일)에는 대통령께서 직접 심으신 벼를 베시며 풍작을 확인 했다. 나는 대통령과 같은 논에서 모를 심는 영광을 가졌다. 그날 오전 10시경 우리 마을에 오신 대통령은 우리 마을 농민 5명 등 여럿 이서 2시간 가량 쉬지도 않고 모내기를 했다. 농촌 일만 하는 우리도 힘드는데 쉬지 않으면서 2시간이나 일을하는 대통령의 체력과 근면함에 정말 놀랐다. 모를 심으면서 하시는 말씀도 마치 농민인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거머리가 있으니 조심하시라」,..

신사임당·율곡 이이 유품, 고향으로 돌아온다

신사임당·율곡 이이 유품, 고향으로 돌아온다. SBS | (강원민방) 이종우 | 입력 2007.03.13 22:06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유품을 앞으로는, 신사임당의 고향인 강릉의 오죽헌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강릉으로 돌아온 유품은 모두 390여 점 입니다. 강원민방, 이종우 기자입니다. 잘익은 수박덩쿨 앞에 사뿐히 기어가는 풀벌레. 꽈리풀 주위로 몰려드는 잠자리와 꿀벌들. 풀과 곤충을 즐겨 그렸던 신사임당의 '초충도'입니다. 사임당의 그림은 섬세하고 생동감이 넘쳐, 닭이 그림에 있는 벌레를 쪼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또 작품 곳곳엔 풍요와 다산 등 사임당의 철학도 담겨 있습니다. [정항교 관장/오죽헌시립박물관 : 맨드라미는 입신양명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

초대 조선총독 수집품 서울 나들이

한석봉 작가노트에서 겸재 정선까지 [연합뉴스] 기사입력 2006-04-12 16:53 | 최종수정 2006-04-12 16:53 ▲데라우치문고 가운데 . 《제신제진》은 영조의 치적 중 하나로 손꼽히는 1760년(영조 36)청계천 준설사업의 완공을 기념하여 4월 16일 창덕궁 춘당대(春塘臺)에서 시사(試射}를 행한 뒤 영화당(暎花堂)에서 사선(賜膳)하는 내용을 담은 기록화이다. 《홍운당첩》에는 이유신(李維新, 18~19세기)의 그림이 4점 들어 있습니다. 여항화가로 그 생애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근역서화징』에는 ‘그림을 잘 그렸다’라고, 『이향견문록』에는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젊은 신위에게 세배하러 가서 수석을 얻어가지고 왔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중인이지만 『영조실록』..

[경주 이씨] 전통 가치 소중함 지키며 종중 발전 도모

고양신문 [952호] 2009년 11월 10일(화) 17:46:54 뉴스 > 문화 > 종합| 사라지는 씨족마을에 대한 기록 종중 전원 모여 조상묘역 조성 등 단결력 자랑 경주이씨는 전체적으로 고양시에 9개 마을에 분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익재공파 화정화수회(회장 이상광) 후손들이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의 명지병원 일대 골모리 마을과 백석동 일대에서 생활해 왔다. 고양신문은 고양시 씨족협의회와 함께 집성촌을 찾아 그들의 삶과 조상의 모습을 엿 보고자 한다. 고양신문과 고양시 씨족협의회의 조사가 완료되는 수ㄴ서에 따라 11월 6일 경주이씨 익재공파 화정화수회를 찾았다. 사라지는 씨족마을에 대한 기록 (39) - 경주 이씨 익재공파 화정동 골모리 취재조사 | 박기범 기자, 고양시 씨..

[태광그룹 수사] 가족간 유산 갈등 불거지나

[태광그룹 수사] 가족간 유산 갈등 불거지나 한국일보 | 입력 2010.10.23 02:33 | 누가 봤을까? 故 이임용 회장 장손 원준씨 美서 최근 귀국 "차남 아내도 상속과정에 의문 제기" 태광그룹 이호진(48) 회장이 고 이임용 회장의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미국에서 생활하던 이 회장의 장조카 이원준(32)씨가 최근 귀국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원준씨는 이 회장의 큰형인 고 이식진 전 태광그룹 부회장의 장남이다. 원준씨가 갑작스레 귀국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상속문제와 관련해 태광그룹 오너 일가의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며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전직 태광그룹 고위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