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 작가노트에서 겸재 정선까지
[연합뉴스] 기사입력 2006-04-12 16:53 | 최종수정 2006-04-12 16:53
▲데라우치문고 가운데 <제신제전>.
《제신제진》은 영조의 치적 중 하나로 손꼽히는 1760년(영조 36)청계천 준설사업의 완공을 기념하여 4월 16일 창덕궁 춘당대(春塘臺)에서 시사(試射}를 행한 뒤 영화당(暎花堂)에서 사선(賜膳)하는 내용을 담은 기록화이다.
《홍운당첩》에는 이유신(李維新, 18~19세기)의 그림이 4점 들어 있습니다. 여항화가로 그 생애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근역서화징』에는 ‘그림을 잘 그렸다’라고, 『이향견문록』에는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젊은 신위에게 세배하러 가서 수석을 얻어가지고 왔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중인이지만 『영조실록』에 말단직 벼슬을 했음이 써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품은 많은 양이 남아 있어, 산수인물, 영모, 화훼, 사군자, 실경산수 등 다양합니다. 이 그림 <취작비폭도醉作飛瀑圖>는 제목대로 술에 취해서 그린 그림인 모양으로, 과감하고 자유로운 구도와 필치가 개성을 드러내며 더욱 시원스런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화면의 오른쪽에 중심이 되는 폭포와 계류, 폭포를 둘러싼 바위와 소나무를 강하게 표현한 반면 좌측 화면은 어딘가 허전한 느낌도 듭니다. 비어 있는 좌측에 그의 호인 '석당石塘'이 보입니다.
초대 조선총독 수집품 서울 나들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되는 '데라우치 문고' 특별전에 선보일 131점 중 주요 작품들이 12일 언론에 공개됐다.
6월11일까지 계속될 이번 특별전의 언론 프리뷰 행사에는 10년 전인 1996년 데라우치 문고본 서책들을 기증받아 현재 소장 중인 경남대의 박재규 총장과 안휘준 문화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특히 눈길을 끈 출품예정작은 조선 중기 서예의 대가로 꼽히는 석봉 한호의 작가노트. '석봉필론'(石峰筆論)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노트는 석봉 서예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으며, 나아가 이렇게 개발한 조선의 서예에 석봉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을 지녔던 지를 생생히 증언한다.
"우리 동방의 신라 김생(金生)도 서예에 뛰어나 행서 초서 해서의 법에 신통해 우군(右軍.왕휘지)과 거의 비길 만 했다… 비해당(匪懈堂) 청지(淸之. 안평대군 이용)는 자앙(子昻.조맹부)을 배웠으나 그보다 뛰어났다."
이런 말로 동방의 서예 대가들이 결코 중국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음을 주장한 석봉은 그 자신의 서예에 대해서는 "이전에 익힌 것을 모두 버리고 길이 두 가지 신묘함을 대하니 오늘 한 글자를 쓰고 내일 열 글자를 배워 달마다 연습하고 해마다 터득"한 결과 "비록 왕희지에는 미치지 못하나 조맹부보다 못하지 않으니 어찌 다행이 아닌가"라는 말로 강렬한 자부심을 표출하고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이시발(李時發.1569~1626)이 1603년에 작성한 발문(跋文)이 들어 있는 '계묘사마동방계회도첩'(癸卯司馬同榜契會圖帖)은 지금까지 알려진 계회도로는 연대가 아주 이른 시기 작품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동방(同榜)이란 같은 시험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합격자 명단이니 요즘으로 말하면 고시 합격 동기생들이다. 계회도란 이런 동창들의 모임을 그림으로 그린 것.
따라서 이 계회도는 1573년(선조 6)에 사마시(司馬試)라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30년 뒤인 계묘년 1603년(선조 35) 10월16일에 안동에서 동창회인 계회를 열면서 그 광경을 화가를 시켜 그리게 한 그림이다.
안휘준 위원장은 "이 작품이 가치를 갖는 것은 산을 표현할 때 미법준(米法峻)을 사용한 흔적이 뚜렷하다는 사실"이라면서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미법준을 기준으로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가 조선에 도입된 상한시기를 17세기 중반으로 잡곤 했으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성휘(閔聖徽.1582-1647)라는 인물이 각각 명나라와 청나라에 사신을 떠날 때 지인들이 송별을 위해 써 준 시들을 모은 앤솔로지의 일종인 별장첩(別章帖) 두 종류는 당시 조선의 사대부 지식인들 사이에 팽배한 명-청 교체기에 대한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들 별장류는 이호민(李好閔) 이덕형(李德炯) 김류(金류<流 밑에 土>) 김상헌(金尙憲) 등의 당대 지식인 154명이 쓴 육필 원고 뭉치라는 점에서도 주시를 요한다.
아울러 이정(李霆)과 송민고(宋民古) 이후 윤두서(尹斗緖)를 거쳐 정선(鄭敾) 김홍도(金弘道)에 이르는 조선 중-후기 화가들의 그림 28점을 모은 도록인 '홍운당첩'(烘雲堂帖)도 새삼 주목된다.
이 중 정선의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는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한다는 점에서 그의 초기화풍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 나들이에 나선 데라우치 문고는 초대 조선총독을 역임한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수집한 서책류로 일본 야마구치현립대학이 소장하고 있다가 박재규 총장의 노력에 의해 경남대에 기증됐으며, 이를 기념해 그 해 덕수궁 석조전에서 '데라우치 문고 특별전'을 통해 일부가 공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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