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익재이제현선생 90

구곡사(龜谷祠)

■ 구곡사(龜谷祠) ↑강진 구곡사에 봉안된 전경 ↑구곡사 영정 종목 시도 유형문화재 제189호 명칭 강진구곡사소장익재이제현상과백사이항복상 (康津龜谷祠所藏益齋李齊賢像과白沙李恒福像) 분류 초상화 수량 2폭 지정일 1995년 12월 26일 소재지 전남 강진군 대구면 구곡길 31(구수리 895번지)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경주이씨 강진 문중 관리자 경주이씨 강진 문중 구곡사(龜谷祠)는 익재 이제현(1287∼1367)과 백사 이항복(1556∼1618)의 영정이 모셔져 두 분을 제사지내 온 사당이다. 구곡사에 소장된 두 영정은 필자나 제작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으나 모두 18세기 이후에 추화된 이모작품으로 생각된다. 구곡사에 모셔진 두 영정 가운데 고려말의 인물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영정에서는 여말 초상화의 ..

익재공 화상 자료 모음

조선왕조실록 세조 44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0월 24일(병진) 5번째기사 최영. 이제현과 같은 옛신하들의 진영을 구해 오게 하다. 세종대왕이 명하여 최영(崔瑩)· 이제현(李齊賢)과 같은 옛날 신하들의 진영(眞影)을 구하여 오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8책 136면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예술-미술(美術) ▲익재난고 유상(益齋亂稿 遺像) 右先祖遺像。卽詩集中所謂 我昔留形影。靑靑兩鬢春。是也。三山有宗人胤。傳奉是本。歲久破壞。幾不堪傳。迺倩工摹寫。謹奉藏焉。以圖垂之永遠。且摹刻小像于本集卷首。使後裔之覽是集者。人得以瞻仰敬慕云。時辛丑九月日。 삼산(三山 : 충북 報恩의 옛 지명)의 종인(宗人) 윤(胤 : 청호공 후손)이 이 초상 본을 대대로 모시고 있었는데 세월이..

익재 이제현

[연재소설] 후기- "삼불망"을 마치며--저자 우종철/2010. 08. 31. 12:08 ■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생졸년 : 1287(충렬왕 13)~1367(공민왕 16) 80평생을 원나라의 고려 지배라는 미증유의 민족수난기를 살면서 고난의 역사를 타고난 숙명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고려가 40여 년간의 대몽항쟁을 포기하고 강화도로부터 출륙환도(出陸還都)하여 원나라에 예속된 지 17년 후인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원이 망하기 1년 전인 1367년(공민왕 17)까지 살다간 역사의 증인이다. 그의 일생은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고려에 대한 원의 내정간섭과 그에 따른 인종(忍從)과 굴욕의 시대와 때를 같이 했다. 그는 7대왕(충렬․충선․충숙․충혜․충목․충정․공민왕) 시대를 거치며 네 번이나 재상..

개성 철동의 익재공 진당에 참배하다 - 이색 詩

■ 개성 철동(鐵洞)에 있는 익재공 진당에 참배하다. 지은이 : 이색(李穡) 정 원재(鄭圓齋), 이 봉익(李奉翊) 구(玖), 박 승지(朴承旨) 진록(晉祿)과 함께 술을 가지고 찾아 준데 대하여 받들어사례하고, 겸하여 익재(益齋)의 진당(眞堂)에 참배하자는약속을 다졌다. 동이 술로 서로 만난 게 꿈속만 같은데 / 樽酒相逢似夢中。 천지간에 광대히 또 동풍이 불어오누나 / 乾坤浩蕩又東風。 노쇠하니 망년교의 후의를 새삼 느끼겠고 / 老衰更驗忘年厚。 빈병이 겹치니 명이 궁함을 이제 알겠네 / 貧病方知賦命窮。 그만이로다 두 귀밑은 문득 희어졌는데 / 已矣兩髦俄變白。 술 취하니 두 뺨은 오히려 불그레하구나 / 醉來雙頰尙浮紅。 당부하노니 부디 약속을 저버리지 말고 / 丁寧有約休辜負。 철동 진당에 들러 익재옹께 참배하세..

이존오(李存吾)의 옥사(獄事)

■ 이존오(李存吾)의 옥사(獄事) 1366년(공민왕 15) 4월초.최영장군이 귀양을 간지 일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국권을 한손에 휘어잡은 신돈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으나, 조정대신 모두가 그 위세에 눌려 감히 탄핵을 하지못하고 있을때였다. 임금보다 더 큰 권력을 쥐고있는 신돈의 잘못을 간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우정언 이존오(李存吾)는 약관 26세였다. 그는 58년 전 충선왕이 복위한 해(1308)에 우탁(禹倬)이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린것을 떠올렸다. 그는‘ 나라가 어지러운데 침묵하는 건 참선비가 아니다 ’ 라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정추(鄭樞)와 함께 목숨을 걸고 공민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방약 무도한 신돈(辛旽)은 말에 오른체 궁궐을 드나들고..

이 익재(李益齋) - 이덕무(李德懋)

청장관전서 제34권>청비록 3(淸脾錄三) - 이덕무(李德懋) 著 ■ 이 익재(李 益齋) [생졸년] 1287년(충렬왕 13) 12월 24일[庚辰]∼1367년(공민왕 16) 7월 9일(癸卯日) [고려문과] 충렬왕(忠烈王) 27년(1301) 신축(辛丑) 신축방(辛丑榜) 병과(丙科) 1위(4/33) [고려사마] 충렬왕(忠烈王) 27년(1301) 신축(辛丑) 진사시(進士試) 1등(一等) 2위(2/77) ------------------------------------------------------------------------------------------------------------ 시문학(詩文學)의 대가(大家)로는 언제나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의 호』을 추앙(推仰)하여 시가(詩家)의 종주로 삼고..

익재집 중간서(益齋集重刊序)

■ 익재집 중간서(益齋集重刊序) 지은이 : 임상원(任相元) 익재(益齋)는 여조(麗朝)에 있어 이 문순『李文順 : 문순은 이규보(李圭報)의 시호』보다는 조금 나중이고, 이 문정(李文靖 『문정은 이색(李穡)의 시호』보다는 먼저였다. 문순의 문장은 호방하며 문정의 문장은 전아했는데 이 두 공은 모두 조예가 지극하여 함께 대가(大家)로 일컬었다. 그러나 익재의 문장은 잘 다듬은 옥처럼 아주 유려하여 한 시대의 동량(棟梁)이 되어 개천(開天)의 문풍이 많이 있었다. 웅대함은 두 공만 조금 못하다 할지라도 그 품격만은 낫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공(公)은 먼 만 리 밖까지 임금을 모시고 가서 비상한 공로를 세운 것이 사책에 빛나게 드리워졌으니 한갓 문장만이 후세에 표준 될 뿐 아니었다. 그러나 공의 문집이 여러 차..

익재집(益齋集) 해제(解題)

■ 익재집(益齋集) 해제(解題) 장덕순(張德順 : 1921년 7월 9일~1996년 8월 20일. 현대 국문학자. 본관은 울진(蔚珍)이다. 호는 성산(城山)이다. 본적은 서울 서대문구(西大門區)이고, 출생지는 간도(間島) 용정(龍井)이다. ●머리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초명(初名)은 지공(之公)이요, 자(字)는 중사(仲思), 본관(本貫)은 경주(慶州)로서, 검교정승(檢校 政丞) 진(瑱)의 아들이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13년(1287)에 태어난 그는 15세에 등과(登科) 입신(立身)하여, 6대 왕(王)을 섬기면서 네 번 재상(宰相)에 오른 대정치인이며, 이 나라에 성리학(性理學)을 처음 전교(傳敎)한 대학자요, 그리고 시(詩)ㆍ문(文)이 고루 갖추어 빛나지 않은 것이 없는 문호(文豪)로서, 81..

곡령(鵠嶺)에 올라 - 익재 이제현 詩

곡령(鵠嶺)에 올라/詩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목구멍에는 연기가 피고 땀은 물 흐르듯 / 煙生渴咽汗如流。 열 걸음 걷자면 여덟 아홉 번 쉬게 되네 / 十步眞成八九休。 뒤에서 오는 자 앞 지름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 莫怪後來當面過。 천천히 가도 결국 꼭대기 까지 이를 거야 / 徐行終亦到山頭。 ◇곡령(鵠嶺)은 개성(開城)에 있는 송악산(松嶽山)의 이칭(異稱)이다. 자료 : 익재집 : 익재난고 제1권 > 시(詩) ↑멀리 보이는 산이 개성 송악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