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익재이제현선생 90

익재(益齋)의 《후서정록(後西征錄)》 서문

■ 이익재(李益齋)의 《후서정록(後西征錄)》 서문 최해(崔瀣) 지음 익재 선생이 연우(延祐) 초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아미산(蛾眉山)에 가서 분향(焚香)을 하고는 《서정록(西征錄)》을 지었는데, 초승(楚僧)인 가모옥(可茅屋)이 그 서문을 썼다. 그리고 지치(至治) 말에 또 태위왕(太尉王)을 맞이하러 가기 위해 임조(臨洮)를 지나 하주(河州)까지 갔다가 와서《후서정록(後西征錄)》을 지었는데, 이를 꺼내 나에게 보여주며 서문을 써달라고 하였다. 만 리 먼 땅을 가 보지 못하고 만 권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면 두보(杜甫)의 시를 볼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나의 얕은 식견으로 이렇게 훌륭한 시편을 본다는 것 조차도 오히려 참람하지나 않을까 두려운 판국에 서문을 써 달라고 하는 부탁은 도저히 감당할 수 ..

이제현(李齊賢)

■ 익재 영정(益齋影幀) [지정번호] 국보 제 110호 [지정 년월일] 1962년 12월 20일 [시대] 고려 충숙왕 6년(1319) [규모양식] 세로 177.3cm 가로 93cm 종축 [재료] 비단 [소유자] 국유 [소재지] 140-026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135 국립중앙박물관 ■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생년] 1287년(충렬왕 13) 12월 24일(경진일) [졸년] 1367년(공민왕 16). [세계] 경주이씨 익재공파 파조(益齋公派派祖) ------------------------------------------------------------------------------------------------------------------------------------- 1.이제현(李齊..

익재영정을 봉안한곳

■ 익재영정을 봉안한 곳 익재 초상화가 많은 것은 경주이씨 후손들이 그의 인물됨을 기리기 위해 그림을 많이 이모(移模)했기 때문이다. '이모'는 원작을 본떠서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①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소장본(所藏本): 국보 110호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57 국립중앙박물관 ◇작자 : 원(元)의 화공 진감여(陣鑑如) ②가산사(佳山詞) 소장본(所藏本): 전남 문화재자료 164호 ◇소재지 : 전남 장성군 삼서면 홍정리 488-2 ◇작자 : 미상(未詳).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소장본(所藏本)의 이모본(移模本-원그림을 보고 그린 그림) ③구곡사(龜谷祠) 소장본(所藏本): 전남 유형문화재 제189호 ◇소재지 : 전남 강진군 대구면 구수리 895 ◇작자 : 조중묵(趙重默). 국립..

영가군부인 권씨 묘지명(永嘉郡夫人權氏墓誌銘)

■ 영가군부인 권 씨 묘지명 (永嘉郡夫人 權 氏 墓誌銘) (익재 이제현 선생 부인) 최해 찬(崔瀣 撰) 지순(至順) 3년(1332, 충숙왕 복위 1) 3월에 고려국(高麗國) 광정대부(匡靖大夫) 전(前) 정당문학(政堂文學) 이공 제현(李公 齊賢)의 처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 권씨(權氏)가 병에 걸려 이달 28일 정유일에 양제방(楊堤坊-고려시대 개성부의 동부에 소속된 행정 구역 동)의 집에서 졸하였는데, 장례 지낼 것을 상의하여 4월기미일로 길일(吉日)을 잡았고, 장지는 옛 임진현(臨津縣) 장화사(章和寺) 남쪽 언덕이 또 길하다고 하였다. 이에 이공이 눈물을 흘리며 같은 고을 사람인 최모(崔某)를 찾아와서, “아, 내가 불행히도 갑작스레 아내를 잃고 말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그 영혼을 위로할 길이 없네. 자네..

혜화 궁주 경주이씨 졸기 - 공민왕 후궁 혜비(惠妃).

태종 8년 무자(1408, 영락 6) 2월 3일(임오) / 조선왕조실록 ■ 혜화궁주 경주이씨 졸기 공민왕 후궁 혜비「惠妃,미상~1408년(태종 8)」졸기 - 익재공 이제현의 6녀 혜화 궁주(惠和宮主)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상(喪)에 부의(賻儀)를 내려 주었다. 궁주(宮主)는 고려(高麗) 시중(侍中) 이제현(李齊賢)의 딸인데, 공민왕(恭愍王)이 아들이 없어 후궁(後宮)에 뽑혀 혜비(惠妃)로 봉(封)하였고, 뒤에 여승(女僧)이 되었을 때에는 정업원(淨業院)에 머물러 있었다. 쌀. 콩 30석과 종이 1백권을 부의(賻儀)로 주고, 소도군(昭悼君)의 처(妻) 심씨(沈氏)로 대신 정업원의 주지(住持)를 삼았다. {原文] ○壬午/賜賻惠和宮主 李氏之喪。 宮主, 高麗侍中齊賢之女。 恭愍王無子, 選入後宮, 封惠妃, 後爲尼,..

益齋의 著作

■ 역옹패설(櫟翁稗說) ● 저작동기 및 의의 은 고려 말기 문신 이제현이 지은 시화, 잡록 집으로 4권 1책의 목판본 이다. 초간본은 저자 이제현(李齊賢)의 77세 때인 1363년(공민왕 12)에 막내아들 이창로(李彰路)와 장손 이보림(李寶林)이 편집하고 이색(李穡)의 서(序)를 받아 경주에서 처음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 《초간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432년(세종 14)에 세종대왕의 명으로 집현전학사들이 선사(繕寫)해 만든 원고 본을 강원도 감영이 있던 원주에 내려 보내 간행한 것으로 역옹패설 말미에 편성 및 출판과정을 설명한 집현전 응교 김빈(金鑌)의 발문이 있다. 이 원주본의 《중간본》부터 익재난고와 역옹패설을 합하여 익재집(益齋集) 이라고 한다. 이 중간본을 2016년 2월 22일(월..

익재(益齋)의 문답

익재(益齋)의 문답 상왕(上王) - 충선왕(忠宣王)이다. 이 이제현(李齊賢)에게 묻기를, “우리나라가 옛날에는 문물(文物)이 중국과 대등하다고 일컬어져 왔다.그런데 지금 배우는 자들이 모두 석자(釋子승려(僧侶))를 따라서 장구(章句)를 익히고 있으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하므로,이제현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옛날에 태조께서는 나라를 처음 개창하시느라 한가한 틈이 없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먼저 학교를 일으켜서 인재를 길러 내었으며,한 차례 서도(西都)에 행차하시어 수재(秀才)정악(廷鶚)에게 명하여 그를 박사로 삼아서 육부(六部)의 생도들을 가르치도록 하고,이들에게 채백(綵帛)을 내려 권면하고 녹미(祿米)를 반사(頒賜)하여 배양하였으니,그 마음 쓰심이 얼마나 절실하였던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

익재 이제현 선생 인물평(益齋 李齊賢先生人物評)

■ 익재 이제현 선생 인물평(益齋 李齊賢先生人物評) [생졸년] 1287년(충렬왕 13) - 1367년(공민왕 16) / 壽80歲 선생의 초명은 지공(之公). 자(字)는 중사(仲思). 호(號)는 익재(益齋). 실재(實齋). 역옹(櫟翁)으로 고려 사회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이라는 고려 최고의 관직 까지 올랐으며, 그가 남긴 주옥 같은 수많은 글과 더불어 해박한 식견은 현재는 물론이고 당시 사회에서 존경 받고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100여년 간엔 걸친 무인(武人) 지배로 인한 후유증과 함께 원(元)의 정치적 간섭을 받던 시련의 시기였다. 이제현은 이러한 시기에 수차에 걸쳐서 원을 왕래 하기도 하고 표문(表文>신하가 자신의 생각을 임금에게 적어 올리는 글)을 올려 원의 부당..

鄭瓜亭(정과정)

■ 鄭瓜亭(정과정) 憶君無日不霑衣 / 억군무일부점의 님 그려 옥지시지 않는 날이 없으니, 政似春山蜀子規 / 정사춘사촉자규 바로 봄산의 자규와 비슷하도다. 爲是爲非人莫問 / 위시위비인막문 옳거니 그르거니 사람들아 묻지 마오. 只應殘月曉星知 / 지응잔월효성지 응당 새벽달과 별이 알 것이로다. ● 요점 정리 [지은이] 이제현 [시간적 배경] 이른 아침, 새벽] [시형] 소악부(중국의 악부를 볼 때, 우리 나라의 민간 가요에서 제재를 취하여 이제현이 7언절구의 형식으로 지은 한시) [주제] 님을 그리워함 ● 내용 연구 새벽달과 별이 알 것이로다 : 새벽달과 별을 절대자로 보고 있음,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존재로 파악.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충신 연주지사로 사람들에게 널리 애송되었으며, 궁중에서도 이를 전..

[역옹패설] 사람으로 읽는 역사 - 김승룡 교수

『역옹패설』 사람으로 읽는 역사 ― 김승룡교수 부산대 한문학과 고려후기 이제현(李齊賢·1287~1367)은 역사가의 눈으로 포착한 당대 공직자의 풍경을 '역옹패설'에 남겨놓았다. 흡사 콩트처럼 제시된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사람들의 표정까지 되살아난다. 그가 제시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풍경 하나. 국가대사가 발생하면 정승들은 함께 모여 합의했다. 이것을 '합좌(合坐)'라고 한다. 이 자리에 기홍수(奇洪壽)와 차약송(車若松)이 참석했다. 먼저 차약송이 기홍수에게 물었다. '자네 집 공작새는 안녕하신가?' 기홍수가 대답했다. '그렇네만, 자네 모란 키우는 법이나 좀 알려주게?' 풍경 둘. 원부(元傅)가 문생들과 담소하다가 여론이 궁금했다. 그 가물었다. '나는 재주가 없는데도 외람되이 국정의 수반을 맡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