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익재이제현선생 90

개성 익재선생유적지 답사일정표

개성 익재선생 유적지 답사일정표 2008년 02월 13일(수요일) 시 간 소요시간 과 목 비 고 06:30 경복궁 동 주차장 집결 개인별 06:30 - 06:50 20분 출발 준비(명찰, 일정표 배포) 경복궁 동주차장 06:50 - 07:50 1시간 서울→남측CIQ(도라산) 이동 자유로 07:50 - 08:45 55분 방북교육, 방문증 교부, 출경 수속 CIQ강당 08:45 - 09:00 15분 남측CIQ에서→북측 CIQ로 이동 비무장지대 09:00 - 09:20 20분 북측 CIQ도착 입경 수속 북측CIQ 09:20 - 10:20 1시간 익재공 산소로 이동 10:20 - 11:20 1시간 성묘행사(고유제 집례) 11:20 - 12:20 1시간 산소에서 개성시내로 이동 12:20 - 13:40 80분 점..

익재공의 3남 10녀 자녀들.....

익재공(益齋公)의 3남(男) 10여(女) 자녀들..... 목은 이색이 찬한 익재공의 묘지명에 따르면 익재공의 자녀는 3남 10녀이나, 익재공파보(益齋公派譜)에는 3남 9녀의 자녀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측실에서 소생한 둘째 딸이 익재 묘지명 기록 당시에 아직 어리다란 기록만 있고, 그 후 출가한 기록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것으로 보면 이분이 족보에 누보된 것으로 보인다. 1. 길창국부인(吉昌國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 〇장남 서종(瑞種)과 차남 달존(達尊)외 3녀를 생산. ▶장녀 : 정순대부(正順大夫)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풍천인(豊川人) 임덕수(林德壽)에게 출가하였다. 임덕수의 부(父)는 시중(侍中-광평성, 내사문하성, 중서문하성, 문하부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1품)이고, 아들 송 (松)은 순의 판..

익재 이재현 선생 화상

■ 익재 이제현선생영정. 전해오는 4개본중의 한 작품인 영정이다 . 전에 보은군 탄부면에 모셔져 있다가, 도난 되었던것을 수사기관에서 되찾아 지금은 국립 충주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익재선생 영정 ↑익재선생 영정 상부모습 ↑우측상부의 찬문 ↑좌측상부의 찬문 ↑또 다른면의 영정사진 고려 후기의 문신인 익재 이제현(1287∼1367) 선생의 초상화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선생의 영정(국보 제110호)과 형식이 같은데, 조선시대에 옮겨 그린 것으로 보인다. 약간 오른쪽으로 앉아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는 전신좌상으로, 가로 96㎝, 세로 165㎝의 크기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윗부분에 그림의 제작에 관한 내용과 그림을 찬하는 글을 적고 오른편에 몇 권의 책이 놓인 책상을 배치하여 재미있는 화..

김반이 문묘의 동· 서무와 제례와 반궁 등에 관해 상언하다

세종 59권, 15년(1433 계축 / 명 선덕(宣德) 8년) 2월 9일(계사) 4번째기사 ☞본 글은 성균사예 김반(金泮)이 익재 이제현. 목은 이색. 양촌 권근 선생 세분을 문묘에 배향하자는 당시 세종에 께 고한 글입니다. -------------------------------------------------------------------------------------------------------------------------------------- 성균사예 김반이 문묘의 동.서무와 제례와 반궁 등에 관해 상언하다. ●성균 사예(成均司藝) 김반(金泮)이 상언하기를, “신은 용렬하고 어리석음으로써 오랫동안 관직(館職)을 더럽힌 것이 지금 5년이오나, 털끝만한 도움이 없었습니 다. 삼가좁은 소견..

화엄사상과 체원대사(體元大師).

■ 체원(體元)과 화엄사상 2003년7월 도서출판 푸른 역사에서 발간한 지영재 지음 서정록(西征錄)을 찾아서 20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사서는 익재 이재현과 충선왕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정확히 전 하는바가 없다. 익재의 아버지 이진(李瑱)과 장인 권보(權溥)가 충선왕의 개혁정치에 동참하였으니, 이로인해 일찍부터 신임을 받았으리라 추측할수 있다. 그리고 이씨족보에는 삼형제만 등재되어 있지만 익재에게는 법명을 체원(體元) 이라고 한 중형이 있었다. 체원은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충선왕의 지우(知遇)를 받아 승직이 오르고 명찰에 제수 받았으나, 부모가 늙어 그 좌우를 떠나지 아니 하였다. 이 체원이 충선왕에게 익재를 추천하였을지도 모른다. ●고려후기 화엄사상(華嚴思想)에 관한 사전에 이른 기록이 ..

경주이씨 선대연원

■ 경주이씨 선대연원(慶州李氏先代淵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묘지명(墓地銘)에 선대(先代)가 신라(新羅)때 소판 벼슬을 지낸 이거명(李居明)이라는 기록을 남김으로서 시조 이후(始祖以後) 기록이 전하는 최초의 선조(先祖)가 되었다,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소판공(蘇判公)을 중시조(中始祖)로 씨족중흥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신라때 소판(蘇判)의 벼슬은 진골(眞骨)만이 오를수 있는 직(職)이었다. 따라서 시조 이알평(李謁坪) 이후 실전(失傳)된 1000年 동안에도 다른 기록에 의하여 경주이씨(慶州李氏)들이 대대로 왕족(王族) 다음가는 지위를 누려왔다는 사실(事實)을 알수있다. 소판공(蘇判公) 이후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천자만손(天子萬孫)으로 번영(繁盛)하여 고려조(高麗朝)와 조선조(朝鮮朝)를 통하여 과거급..

익재 이제현 선생 화상(국보 제110호)

↑국보 익재 이제현 화상(국보 제110호) 고려 후기 문신이요, 학자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선생의[1287년(충렬왕 13) - 1367년(공민왕 16)]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趙孟頫, 1254년-1322년)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 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호는 익재(益齋), 또는 역옹(櫟翁)으로, 『국사』, 『역옹패설』 등을 남겼다. 가로 93cm X 세로 177.3cm 크기의 의자에 앉은 모습을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그림 위쪽에는 원나라 문장가인 탕병룡이 쓴 찬(贊)과 잃어버린줄 알았던 이 그림을 33년 만에 다시 보고 감회를 적은 익재의 글이 있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오른쪽을 바라보는데 비해 이 영정은 왼쪽을 바라보..

익재 이제현의 저작(著作)

↑益齋 李齊賢先生 畫像(國寶 第110號. ● 익재 초상의 주해. 고려 후기 문신(高麗 後期 文臣)이자 학자(學者)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 1287∼1367) 先生의 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元) 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號)는 익재(益齋), 역옹(櫟翁)으로,『국사』『역옹패설』등을 남겼다. 위의 익재 초상(益齋肖像)은 원나라 화가 진감여가 그린 고려 말의 문신 익재 이제현의 전신 초상화이다. 국보 제110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면 상단에 적혀 있는 화기에 의하면, 이제현이 33세 되던 해인 1319년에 충선왕을 모시고 중국 저장성[절강성]의 보타산 사찰에 강 향하기 위해 갔을 때, 왕명으로 항주 ..

이 익재(李 益齋)의 문묘 배향을 청한 상소문

世宗 72卷, 18年(1436 丙辰 / 명 정통(正統) 1年) 5月 12日(丁丑) 6번째 기사 ■ 성균 생원 김일자 등이 이제현. 이색. 권근을 문묘에 배향하기를 청하다. 성균 생원(成均生員) 김일자(金日孜) 등이 상언(上言)하기를,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옛 성인(聖人)을 계승하고 후학(後學)을 열어 주는 것은 성현(聖賢)의 대공(大功)이요, 조종(祖宗)을 도타이 하고 예(禮)로써 행하는 것은 제왕(帝王)의 성전(盛典)입니다. 이러므로, 역대 이래로 무릇 도학(道學)에 공이 있는 분을 거의 학궁(學宮)에 모시어 제향 하는 소이는 돌아가신 이에게 포숭(褒崇)의 뜻을 보이는 것이며, 앞으로 오는 뒷사람에게 권려 하는 뜻을 드리우는 것입니다. 옛날에 공자(孔子)께서는 하늘이 낳으신 성인으로써 경위(經緯/註1..

서정록을 찾아서

「서정록을 찾아서」낸 지영재씨 (서울=연합뉴스) 홍성록기자 = 2003년 07월 18일 PM 12:11:45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8-1367)은 몽골족이 고려를 지배하던 시절, 한시를 통해 고려문화의 우수성을 알림으로써 국권신장을 꾀했던 인물입니다." 단국대 중국문학과 교수를 지낸 지영재(67)씨가 고려시대 시인 이제현이 시작활동을 통해 고려와 원의 관계개선을 돕고 고려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 애썼던 외교관이었음을 주장한 「서정록을 찾아서」(푸른역사 刊)를 출간했다. `자주성을 잃은 고려'라는 특별한 시대를 살아야했던 익재는 14세기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에 세운 만권당(萬卷堂)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한시의 대가이자 여행가. 만권당은 고려와 원나라의 고급관료들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