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1974년 8월 15일)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이 청중석 뒤쪽에서 뛰어나와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으나 총탄이 빗나가 박대통령 대신 육영수여사의 머리에 명중 절명했고 무대 왼편에서 급히 장막을 걷고 들어온 경호원 조모씨의 지향사격 실패로 객석에 앉아있던 여고생 장봉화가 목에 맞고 사망했다. 문세광은 이날 오전 8시쯤 조선호텔을 나와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검문을 수월히 피하기 위해 미리 포드 20M 검은색 승용차를 빌려놓았다. 극장입구를 무사히 통과한 문세광은 식장입구에서 한차례 검문을 받았지만 일본어를 사용하며 귀빈 행세를 해 식장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기념식이 시작되고 얼마 뒤 왼쪽열 맨뒷 좌석에 앉아..

러시아와 소련의 역대 통치자

러시아와 소련의 역대 통치자 모스크바 공과 대공 : 다닐로비치 왕조1세 다닐(알렉산드로 네프스키의 아들) 1276경~1303 유리 1303~1325 이반 1세 1325~1340 세묜 1340~1353 이반 2세 1353~1359 드미트리 돈스코이 1359~1389 바실리 1세 1389~1425 바실리 2세 1425~1462 이반 3세 1462~1505 바실리 3세 1505~1533 이반 4세 1533~1547 차르 : 다닐로비치 왕조 이반 4세 1547~1584 표도르 1세 1584~1598 차르 : 혼란시대 보리스 고두노프 1598~1605 표도르 2세 1605 가짜 드미트리 1605~1606 바실리 4세 1606~1610 공백기 1610~1613 차르와 여제 : 로마노프 왕조2세 미하일 3세 1613..

이정미 헌재권한대행, 임기마치고 13일 퇴장

'헌정사 장식' 이정미 권한대행, 임기마치고 13일 퇴장 김승모 입력 2017.03.11 12:21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주문 낭독 헌재 사상 최초 권한대행 2번 역임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읽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있다. 2017.03.10.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승모 기자 = 이정미(55·사법연수원 16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오는 13일 퇴임식을 가진 뒤 헌법재판관 6년 임기를 마무리한다. 11일 헌재에 따르면 이 권한대행 퇴임식은 당일 오전 청사 1층 대강당에서 이뤄진다. 이 권한대행은 지난 1월 31일 퇴임한 박한철(64·13..

정경운(鄭慶雲) /함양 수동출신

■ 정경운(鄭慶雲) 정경운(鄭慶雲, 1556∼?)의 자는 덕옹(德 )이고, 호는 고대(孤臺)이며, 본관은 진양(晋陽)이다. 그는 함양읍 백연리(栢淵里) 돌뿍[席卜]에서 살았으며 주변에 위치한 위천수(渭川水)의 뇌계(뇌溪) 냇가에 고송반석(古松盤石)으로 경승(景勝)을 이룬 소고대(小孤臺)가 있었으므로 자신의 호를 '고대'라고 하였다. 집안은 고려 때 첨정(僉正)을 지낸 송헌(松軒) 정중공(鄭仲恭)을 1세로 하였고, 12세손인 정희보(鄭希輔, 1488∼1547) 때에 이르러 함양군 동면 모간리(毛看里, 현 咸陽 水東面 牛鳴里 院坪里 일대주변)로 이주하여 세거(世居)한 후 그 후손들이 일부 함양 각지로 분포하여 살아왔는데 그 세계(世系)는 다음과 같다. ↑정경운(鄭慶雲)선생의 세계도 정경운은 필사본 『고대일록..

도우룡(都右龍)

■ 도우룡(都右龍) [진사시] 철종(哲宗) 12년(1861)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42위(72/137) [인물요약] ◇생년 : 1838년(헌종 4) ◇졸년 : 1906년 ◇본관 : 성주(星州) ◇거주지 : 의성(義城) [이력사항] ◇전력 : 유학(幼學) ◇시험과목 : 이시(二詩 [가족사항] ◇아버지 : 도진구(都鎭龜)/학생(學生) --------------------------------------------------------------------------------------------------------------------------------------------------------------- 公의 휘(諱)는 우룡(右龍),자는 운오(雲五) 호는 일회헌(一悔軒..

변희용(卞熙瑢) - 독립운동가 및 교육자

■ 변희용(卞熙瑢) 변희용(卞熙瑢)1894~1966) 일제강점기 고령 쌍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및 교육자로, 호는 일파(一波), 본관은 초계(草溪)로, 부인은 최초 민주당 여성총재와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가 박순천(朴順天) 여사이다. 그는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변창모의 3남으로 태어나 20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분가한 뒤, 곧 일본에 유학하여 1917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이재과(理財科)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조선인유학생학우회 간부로 활동하며, 1919년 1월 결성된 조선독립청년단에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조선독립청년단이 2·8독립선언서와 민족대회소집청원서를 각국 공사관과 일본정부에 우송한 뒤 학생 600명이 회집한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박순천(朴順天)/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 정치가

■ 박순천(朴順天)/전 국회의원 [생졸년] 1898년 10월 24일(음력 9월 10일) ~ 1983년 1월 9일.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자로 대한민국의 여성운동가, 정치인이다. 초명(初名)은 명련(命蓮).호(號)는 해암(海岩),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한학자인 아버지 박재형(朴在衡)과 기독교신자였던 어머니 김춘열(金春烈)의 무남독녀로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마을에서 3㎞쯤 떨어져 있는 월전교회에 다니면서 기독교신자의 소양을 키웠다. 1917년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에 있는 의신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의신여자중학교에 재직 중이던 1919년 3·1 운동 때 민족대표의 한 사람인 이갑성(李甲成)이 보낸 독립운동..

박순천(본명 : 朴命連)

여성정치인 박순천(朴順天) [생졸년] 1898~1983 / 壽86세 한국 정치사 최고의 '여걸' 5선 국회의원… 농촌계몽·여성인권운동 활발히 펼쳐 제1 야당 최고위원, 5선의 국회의원, 통합야당 당수' 한 정치인이 걸어온 길이다. 웬만한 인물의 경력이 아닌 거물급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일반인이 생각하듯 남성정치인이 아닌 여성정치인이다. 그가 바로 부산이 낳은 여걸 박순천(朴順天·1898∼1983년)이다. 한국적인 풍토와 정서에 비한다면 현재에도 그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안타깝게도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가 바로 부산이 낳은 여걸 박순천(朴順天·1898∼1983년)이다. 한국적인 풍토와 정서에 비한다면 현재에도 그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안타깝게도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하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생각나다.

박근혜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하여 전두환 전직대통령이 생각나다. 전두환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1951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육군사관학교 제11기로 졸업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에게 발탁되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 1963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1969년 육군본부 수석부관을 지냈다. 1970년 백마부대 제29연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고, 1971년 제1공수특전단 단장을 지냈다. 1976년 대통령경호실차장보, 1978년 제1사단장을 지낸 후 1979년 초에 국군보안사령관이 되었다. 그 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로부터 저격 사망하자 12월 12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

조하망(曺夏望) - 창녕인(昌寧人)

조하망(曺夏望) 1682(숙종 8)∼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아중(雅仲), 호는 서주(西州). 문수(文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영(漢英)이고, 아버지는 금구현령 헌주(憲周)이며, 어머니는 이일상(李一相)의 딸이다. 1711년(숙종 37) 사마시에 합격, 1722년(경종 2) 장릉참봉(章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그 뒤 동몽교관(童蒙敎官)·공조좌랑·의령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판결사·승지·참찬관(參贊官)을 지내면서 어사를 파견하여 양정(良丁)을 살필 것을 청하였다. 1739년 승지를 지내고, 1741년 대사간, 다음해 강릉부사로 부임하여 경포대를 중수, 상량문을 지어 그 문장으로 격찬을 받았다. 174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