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도난 문화재 수천점 10년만에 찾았다.

[충청투데이] 양승민 기자 sm1004y@cctoday.co.kr 데스크승인 2012.02.16 도난 문화재 수천점 10년만에 찾았다. 전국 사당·고택서 훔쳐 판 4명 대전서 검거 전국 사당이나 고택 등에서 보물급 문화재를 무더기로 훔쳐 대학교에 위탁 보관하고 공소시효가 끝나자 시중에 판매·유통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특히 훔친 문화재 중 일부인 분재기(分財記)와 교지(敎旨) 등 고문서는 역사적 중요성은 물론, 수억 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5일 훔친 문화재 수천 점을 몰래 보관하고 유통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 등)로 A(63) 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1995년 4월 12일경 경북 성주군 한 종가에서 문화재 절도범 B(6..

美國에 關한 常識

*美國에 關한 常識* ↑뉴욕 맨하탄의 허드슨 강 자유의 여신상 01. 미국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널은 면적을 가진 나라이다. 캐나다는 9,984,670km²에 호수가 全국토의 8.92%이다. 미국은 9,826,630km²에 호수가 6.76% 이다. 02. 미국은 중국, 인도에 이어 인구가 세 번째로, 약3억5500만 명이다. 03.백인은 66.9%, 히스패닉계는 14.4%, 흑인은 13.4%, 아시안은 4.8% ,그 밖에 아메리칸인디언 1.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백인 중엔 독일系 이민이 가장 많다. 이어서 아일랜드, 영국系이다. 05. 국민총생산(GDP)은 13조 8000억 달러로 세계1위, 국민소득은 일인당 4만 3594달러로 세계 11위 이다. 삶의 질은 세계 11위..

비문(碑文). 행장(行狀). 묘지명(墓誌銘). 묘비문(墓碑文). 묘갈문(墓碣文). 묘표(墓表)에 대하여

■비문(碑文). 행장(行狀). 묘지명(墓誌銘). 묘비문(墓碑文). 묘갈문(墓碣文). 묘표(墓表)에 대하여 1. 비문(碑文) 유협이 이르기를, “비(碑)란 돋운다[埤]는 뜻이다. 상고(上古) 시대에 제황(帝皇)이 처음으로 호(號)를 기록하고 봉선(封禪)을 할 때에 돌을 세워 산악 위에 도드라지게 하였으므로 비라고 한 것이다.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엄산(弇山)의 바위에다 사적(事跡)을 기록하였다.” 하였고, 진시황(秦始皇)은 역산(嶧山) 꼭대기에 명(銘)을 새겼는데 이것이 비의 시초이다. 그러나 상고해 보건대, 사혼례(士婚禮)의 “문에 들어서서 비를 맞닥뜨리게 되면 읍을 한다.”라는 글의 주에 “궁실(宮室)에 비를 세워 두고서 해의 그림자를 표시함으로써 시각을 안다.” 하였고, 제의(祭義)의 “희생을 ..

기자(箕子)의 평양과 고구려(高句麗)의 평양(平壤)

■箕子의 平壤과 高句麗의 平壤 기자(箕子)는 락수(濼水)의 동평양지방(東平壤地方=지금의 永平)과 요수(遼水)의 서평양지방(西平壤地方=지금의 廣寧) 사이의 공지(空地)에 처음 거주(居住)하였다. 후(後)에 자손(子孫)들이 次次 강성(强盛)하여져서 강토(疆土)를 날로 개척(開拓)하여 가자 도읍(都邑)을 동평양지방(東平壤地方=지금의 요양(遼陽)으로 옮겼다. 그 후(後) 연나라의 장군(將軍) 진개(秦開)와의 싸움에 패(敗)하여 영주(幽州), 계주(薊州), 역주(易州)의 땅 二千里를 잃었으며 그의 41世孫인 기준(箕準)에 이르러 위만(衛滿)에게 쫓기어 망(亡)하였으니 그 역년(歷年)은 929年이었다. 위만조선(衛滿朝鮮)은 기씨(箕氏)의 뒤를 계승(繼承)하여 군사(軍士)를 강(强)하게 하고 국토(國土)를 넓혀갔는데..

명성황후 시해 관련자들

■ 명성황후 살해 관련자들 ▲명성황후시해전날인 10월7일촬영한것으로 추정되는 한성순보사(비밀아지트) 앞에서 촬영한 사진! 일본인 들의 옷이 증명해주고 있다. 한성순보사의 책임자는 바로아다치겐조임! 이들 살인범들은 신문사11명, 순사 8명, 통역관 6명, 상업 5명, 농업 5명, 외교관 3명 겐요사[우익단체] 3명, 교원2명, 무직 2명, 의사 1명, 저술업 1명, 승려 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당시 나이를 보면 50대 2명, 40대 9명, 30대 20명, 20대 16명, 10대 1명입니다. 출신지역은 구마모토 21명, 나가사키 4명, 가고시마 4명, 후쿠오카 4명, 도쿄 2명, 가니기와2명 와카타2명, 시가시마 2명, 지바구치1명, 나가자키1명, 이와테 1명입니다. 아래의 살인자들은 확실히 그 죄악이 나..

전두환 "김재규는 국방장관을 원했다" - 이법철 칼럼

[이법철 칼럼] "출세욕이 왜 그렇게..." 최종편집 2012.01.14 20:23:07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김재규, 국방장관직을 원했다” 신정(新正) 인사와 구정세모(舊正歲暮) 인사를 겸해 지난 1월 12일 낮, 연희동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불교 믿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한 분이기에 나는 각별한 심정으로 뵙고 금년 82세의 고령이었지만, 건강속의 장수를 의미하는 축수(祝壽)를 하였다. 그 때 누군가의 입에서 ‘군인의 충의(忠義)’에 대해 거론되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나는 그 때 김재규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시해 하기 전 국방부장관직을 원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全斗煥 전 대통령은 나를 만나면, 언제나 합천의 집안 얘기를 많이 한다. 외할아버지가 독실한 불자인데..

대구 옻 골 마을

■ 대구 옻골 마을 문창공 영정에서 길을 물어 옻골 마을로 향했는데, 가다 보니 천년기념물 1호라는 달성 측백수림이 나왔다. 측백수림은 나지막한 야산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가지를 펼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도동의 달성 측백수림은 그 남한지로 큰 의의가 있다고 했는데, 별로 특이하지는 않아 사진은 찍지 않았다. 단지 야산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게 특이해서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듯... ↑달성 측 백 수림 맞은편에 있는 나무. ↑부근 서양풍 건물의 ‘꽃 뫼 어린이집' 표지판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옻골마을의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이 나왔다. 토요일인데도 해설사께서 상주하고 계셨고, 나는 그냥 해설지만 받으려고 했는데 상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곳 '옻..

도예농의 백자 도자기 감상

도예농 청우요 김건출 작품 ↑ 백자청화연지어문호(wp549) 70 /크기: Ø36 x h35 cm 월정 한석기 작 1. 1969년 백자의 명장 안동오선생에게 도예에 입문한 이후 1987년 월정 도예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전국 공예 품 경진대회 등에서 다수 입상하였고,1994년에는 경기도 우수기능인으로 선정된 40여년 경력의 백자도예명장 입니다. 2. 탁월한 물레 성형기능을 바탕으로 스승의 뜻을 이어 백자에 전념하며 투각을 전문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는 백자 투각 작품들은 도예 애호가들의 호감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백자청화매죽문호(wp572) 2,5 /月 正 韓 錫 基 作 국보 219호, 호암미술관 소장(재현품,장작소성)/Ø31 x h41.5 cm ↑화백자매죽문호(대/특대,w..

도예농의 청자 도자기 감상

↑청자투각줄국화운학문장경병(cp338) 20 ↑청자투각운학문장경병(cp319) 06 ↑청자이중투각국화문매병(cp380) 60 ↑청자양각죽절문병(중/대,cp371) 40 ↑청자이중투각칠보문1구화병(cp374) 42 ↑청자상감운학문주병(소,cp302) 05 ↑청자상감운학문주병(대,cp306) 15 ↑백자이중투각칠보문호(중/대,wp560) 70 ↑청자상감연속칠보문호(cp653) 1,2 ↑청자이중투각칠보비단문대호(cp665) 5백

박정희 대통령 관련 도자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의원회관 방에 있던 항아리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자주총화 국리민복(自主總和 國利民福)`이라고 쓴 휘호(揮毫) 글씨를 항아리에 새겼다. ↑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년휘호/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비록 세상이 평화로워도 전쟁을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청와대 생활 도자기 그릇 ↑술을 즐겼던 박정희대통령이 사용한 도지기에는 유일하게 술병이 포함 되어 있습니다. 사각모양의 떡을 담는 접시가 눈길을 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