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계유사마동방계회도(癸酉司馬同榜契會圖)

■계유사마동방계회도(癸酉司馬同榜契會圖)’ ↑계유사마동방계회도(癸酉司馬同榜契會圖) 1573년(선조 6) 계유년에 치러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한 사람들이 30년 뒤인 1602년(선조 35) 10월 16일, 안동에서 계회(契會)를 할 때의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사마시는 조선시대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본래의 목적으로 실시한 과거로 소과(小科)라고도 한다. 관리 임용을 위한 문과[文科=大科]와는 성격이 달랐다. 생원・진사 두 시험 중에 진사시를 먼저 하고, 하루 지난 뒤에 생원시를 하기 때문에 흔히 진사시를 감시 초장(監試初場)이라 하고, 생원시를 감시 후장(監試後場)이라 하였으며, 이때 한 사람이 생원·진사 두 시험에 응시할 수 있어서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림을 살..

빙하시대의 인간

■ 빙하시대의 인간(빙하속에서 발견보존) 1991년 9월 19일 알프스 산맥 피나일봉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던 독일인 등반가 헬무트 지몬과 아내 에리카는 해발 3,200m 부근 외치 계곡 빙하지대에서 얼음 위로 상반신이 드러난 사체를 발견 하게 된다. 발견 당시 두 부부는 조난당한 산행가의 사체로 오해하여 지역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그만큼 사체의 상태는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냉동 미이라 곁에서 현대인의 것이라고는 볼수 없는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면서 뼈와 피부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5300년 전의 석기시대인으로 밝혀졌다. 또 미라의 뼈와 근육에서 DNA를 뽑아내 분석한 결과 유럽인의 조상으로 판명 되었다. 그리하여 그를 발견된 지역명 Oetzi 을 본 따 아이스맨 외치(Oetzi The ..

'신라왕릉 연구' 발간-이근직 교수

이근직 교수 유저 '신라왕릉 연구' 발간 "신라왕릉 중 진짜는 7기뿐..김유신묘는 경덕왕릉“ [연합뉴스]김태식 l 2012/02/20 14:31:59 [taeshik@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현재의 김유신묘는 제35대 경덕왕릉이며, 서악고분군 앞쪽 김인문묘야말로 실제의 김유신묘다.""오릉(五陵)은 박혁거세 무덤이 아니라 실은 5세기 이후의 적석목곽분이며 제4대 탈해왕릉·제6대 지마왕릉·제8대 아달라왕릉은 통일신라시대 횡혈식석실분이고, 제13대 미추왕릉은 5세기 이후의 적석목곽분, 제17대 나물왕릉은 7세기 무렵 횡혈식석실분이며 이들은 왕릉이 아니다."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담은 신라왕릉 연구서가 출간됐다. 생전에 학술강연회 등을 통해 이런 주장을 펼쳤다가 신라왕성 후손 문중에..

삼막(三幕)의 유례

작성일 : 2012. 03. 17 林下筆記/橘山 李裕元 著 삼막(三幕) 관악산(冠岳山)은 시흥(始興)과 과천(果川)의 경계에 있다. 그곳에 삼막사(三幕寺)라는 절이 있는데, 삼한 시대에 지어진 고찰이다. 신라 승려 원효(元曉)는 성이 설(薛)이고, 의상(義湘)은 성이 아(牙)이고, 윤필(尹弼)은 성이 윤(尹)이니,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관악산에서 나누어 살았는데, 원효의 일막(一幕)은 지금 폐허가 되었고, 의상의 삼막(三幕)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윤필의 이막(二幕)은 염불암(念佛庵)이다. 이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삼성산(三聖山)이라고 한다.

독도(獨島)가 우리땅인 증거[1]

■독도(獨島)가 우리땅인 증거 독도가 우리땅인지 일본땅인지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어서 다른 말이 필요없다. 우리가 부르는 독도(獨島=외로운 섬)와 일본이 부르는 죽도(竹島=대나무 섬)의 이름만 살펴보아도 알것이 아닌가? 독도에 어디 대나무 숲이 우거져서 대나무섬이라고 이름붙일 여지가 있는지, 삼척동자도 알수 있는 것을 우겨대는 꼬락서니가 참 엽겹습니다. 아래 자료는 독도연구보존협회 '신용하' 교수님께서, 그 동안 모아오신 역사자료입니다.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역사적 증거 14가지나 됩니다.

韓國사람들의 創造力-초대 부통령 이시영

■ 韓國 사람의 創造力 韓國 사람의 創造力이 優越(우월)하며. 決코 他民族에 뒤지지 않음을 일일이 列擧(열거)할 수 없으나 大略 世界的으로 第一 앞선 것을 골라 말 한다면 다음과 같다. 저 高麗의 빽빽하게 들어찬 (1)大藏經板(대장경판)은 멀리 900餘年 前의 일로써 그 美術的 價値의 精巧(정교)하고 微密(미밀)함은 世界 第一이다. 이 經板은 現在 陜川의 海印寺에 있는바 可히 世界的 珍本이다. 高麗의 鐵活字는 知白州事 徐贊이 創造한 것인데 지금부터 700餘年 前의 일이다. 李舜臣의 (2)거북선은 壬辰亂(1592~1598) 때 日本의 水軍 10萬名을 하루아침에 殲滅(섬멸) 시켰다. 英國(영국) 海軍省(해군성)에서 쓴 冊(책)에는 「韓國軍艦은 鐵板으로 뒤집어 쌌으며 모양이 마치 거북의 등처럼 생겼으며 前進 ..

한반도 분단의 현장을 찾아서

2012. 03. 06. 성공회대학교 한반도분단과 평화 제2강 이재정/ leejj4100@skhu.ac.kr/ 한반도 분단의 현장을 찾아서 1. 한반도 분단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DMZ(비무장지대)와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일 것이다. 1953년7월27일 마침내 한반도를 갈라 놓는 분단의 선을 정하고 휴전을 관리할 사항을 규정한 정전협정에 유엔 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그리고 중국인민군지원사령관이 서명하였다. 그리고 이 협정은 오늘까지 우리나라의 분단체제를 견고하게 만들어 왔다. 군사분계선은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정전협정)'에 규정된 휴전의 경계선을 말하며, 이것이 이른바 휴전선 이다. 그 길이는 모두 155마일(약 250km)로,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교동..

한반도 분단의 역사, 그 배경과 현안

파일명:한반도분단과평화1강20120227.hwp 2012. 02. 27. 성공회대학교 한반도분단과 평화 제1강 한반도 분단의 역사, 그 배경과 현안 이재정/석좌교수 leejj4100@skhu.ac.kr /교수실 7711 1. 19세기말 이후 힘의 외교무대 가. 청일전쟁의 배경과 경과 1880년대 후반 일본은 경제적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해외시장 또는 해외 거점이 필요 했고, 일본국내의 정치적인 불안을 타개할 필요도 있었다. 여기에 제국주의 열강들도 동아시아에서의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하여 영국이나 미국이나 모두 일본의 협력을 필요로 하였다. 따라서 당시에는 러시아가 역시 동아시아에서의 가장 두려운 세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에서 1894년에 일어난 갑오농민전쟁(동학혁명)이 열강..

韓民族의 言語⋅文字 및 道敎-이시영

韓民族의 言語⋅文字 및 道敎 韓族의 言語는 三國이 分立되어 있던 時代를 前後해서 大體로 統一되어 있었다. 그러나 土話는 統一하지 않은 말이 조금 있었다. 滿洲의 淸나라 乾隆皇帝①(1711~1799)는 『滿洲源流考』라는 冊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卽 金나라의 根源은 滿洲와 高麗이며 根本은 서로 同一한 것이다. 各 地方에 土話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같지 않은 것이 있으나 三韓 (馬韓⋅ 辰韓⋅ 弁韓)의 官制 一稱에는 新羅 中葉 以前까지도 韓의 文字를 써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陳壽(西晉사람 233~297)가 쓴 『三國志』(二十五史의 하나)에서는 三韓의 官制가 牛馬와 같은 六畜의 이름을 딴 것이 있어(例 牛加⋅ 馬加) 鳥類의 名稱을 딴 中國 官制와는 다르다고 했으며, 發音을 音譯함에 있어서 傳會와 侮辱(모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