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고종과 일제,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놓고 두뇌싸움/이덕일

고종과 일제,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놓고 두뇌싸움 이덕일 事思史 금대를 말하다. [제214호 ㅣ 20110416 입력] 고종 통치의 특징 중 하나가 이중성이다. 을사늑약 체결 주범에게 정권을 주는 한편 의병에게는 밀지를 내려 거병을 촉구했다. 하지만 각 지방의 진위대는 고종의 명령에 따라 의병을 진압했다. 고종은 표면적으로는 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순응하는 한편 헤이그엔 밀사를 보내 외교권을 되찾으려 했다. ↑이회영의 장남인 이규학(왼쪽)과 조남승(오른쪽). 고종의 조카인 조남승·조남익 형제는 고립된 고종과 바깥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망국의 몇 가지 풍경 ④ 헤이그 밀사 고종은 을사늑약 체결 당사자인 박제순을 승진시켜 내각을 맡겼지만 의병들에게는 밀지(密旨)를 내려 거병을 촉구했다. ‘밀지 정치’..

합천의 역대 수령 명단 - 조선조

■ 합천의 유례 경남 합천은 원래 신라(新羅)의 대량주(大良州)로서 경덕왕(景德王)때 강양군(江陽郡)으로 개칭되었고, 고려(高麗)때는 현종(顯宗)이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서 즉위(卽位)하고 또 효숙왕후(孝肅王后)의 본향(本鄕)이라는 이유로 해서 지협주사(知陜州事)가 파견되는 지역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이르러서는 태종(太宗)때 합천군(陜川郡)으로 개칭하고 진주진관(晋州鎭管)에 소속되었다. 이후 1629년(仁祖 7) 역옥죄인(逆獄罪人)의 태생지(胎生地)라는 이유 때문에 현(縣)으로 강등 되었다가 1644년(仁祖 22) 다시 군(郡)으로 환칭()還稱된 바 있다. 대량(大良), 강양(江陽), 합천(陜州)은 모두 합천의 고명(古名)이며, 이외 고명으로는 대야(大耶)가 있다. 합천읍지(陜川邑誌..

8.15해방 사진 모음

위 사진은 59년 전 8월 15일 조국이 일제로 부터 해방돼 서울 시민들이 남산 국기 게양대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 이 사진은 촬영한 사람이 누구인지, 태극기를 게양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돼지 않는 정부 자료 사진입니다. 해방 한달쯤 뒤 국민학교가 개교해 첫수업을 하는 장면,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색 사진으로 알려진 해방 1주년 기념행사 사진 등 귀중한 사료도 포함돼 있습 니다. 사진은 이형모 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촬영한 사람이 확인돼지 않은 자료들입 니다. 또 사진에 대한 해설도 불충분 합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1945년 광복을 환호하는 모습 조국의 해방을 환호하는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의 인파 모습. 만나는 이 마다 서로 부둥켜 안고 목이 터져라 해방 만세를 외치..

묘의 석물

■ 묘지의 석물(石物) 비를 세우는 것을 입석(立石), 수비(竪碑), 수비(樹碑) 등으로 지칭한다. 고려나 조선조에는 벼슬에 따라 묘역과 분묘의 크기를 법으로 정하여 계급을 나타내었는데, 무덤을 장식하는 석조문(石造文)에도 역시 규제가 있어 석상(石像), 망주석(望柱石), 비(碑), 갈(碣), 묘지명(墓誌命), 상석(床石), 혼유석(魂遊石), 향안석(香案石) 등을 만드는 데도 차이가 있었다. 망주석 중 묘의 왼쪽 즉 동쪽 망주석의 도롱뇽은 양계(陽界) 즉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고 오른쪽 즉 서쪽 망주석의 도롱뇽은 음계(陰界) 즉 땅으로 내려가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비석 돌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오석(烏石)이고 다음이 황등석(黃登石), 애석(艾石)이며 보통은 화강석을 쓴다. 비석에는 ‘비’와 ‘갈(碣)..

우리나라 역대 왕대표[1]

가야왕대표 존칭명[왕호] : 왕(王) 성(姓) : 김(金) 10대 520년(환기7239~7759, 서기42 ∼ 562) 대 왕 명 즉위년도 (환기-서기) 재위 기간 약 사 1 수로(首露) 7239-42 157 2 거등(居登) 7396- 199 54 어머니는 허황후(許皇后) 기묘(己卯 : 199) 3월 13일에 즉위(卽位), 치세(治世)는 39년으로 계유(癸酉; 253) 9월 17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慕貞)이며 태자(太子) 마품(麻品)을 낳음. 3 마품(麻品) 7450- 253 38 신해(辛亥 : 291) 1월 29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孫女) 호구(好仇)로 태자(太子) 거질미(居叱彌)를 낳음. 4 거즐미 (居叱彌) 748..

우리나라 문(文) - 사대(事大)하는 표(表)와 소(疏)를 이웃 나라에게 준 서(書)

해동역사 제52권 >예문지(藝文志)11> ●백제(百濟)의 개로왕(蓋鹵王)이 송(宋)나라 효무제(孝武帝)에게 올린 표문(表文). 대명(大明) 2년(458, 개로왕 4) 신의 나라는 대대로 특별한 은혜를 입고 문무(文武)의 훌륭한 신하들이 대대로 조정의 관작을 받았습니다. 행 관군장군(行冠軍將軍) 우현왕(右賢王) 여기(餘紀) 등 11인은 충성스럽고 부지런하여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삼가 가엾게 여기시어 모두에게 관작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송서(宋書)》 ●백제의 개로왕이 후위(後魏)의 효문제(孝文帝)에게 올린 표문. 연흥(延興) 2년(472, 개로왕 18)에 개로왕이 표문을 올려 군사를 보내 주어 고구려를 정벌하기를 요청하자, 위나라 효문제가 너그러운 조서를 내려 답하였다. 조서는 중국문..

"조선민족운동 연감”/도서

일본 경찰이 작성한 상해임정 모든 것 "조선민족운동 연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부터 13년간 아주 상세한 기록과 인명이 수록되어있다. 임시정부 원년의 도입부분은 다음과 같다. 1919년 대정 6년 4월 (4)주요결의사항 국호 급 관제(官制)등 결의 (5)국무원선거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경성임시정부내무총장) ◇외무총장 김규식 ◇재무총장 최재형 ◇교통총장 신석우(경성임시정부교통총장) ◇군무총장 이동휘 ◇법무총장 이시영 ◇국무원 비서장 조소앙 ◇내무차장 신익희 ◇외무차장 현 순 ◇재무차장 이춘숙 ◇교통차장 선우혁 ◇군무차장 조성환 ◇법무차장 남형우 (6)임시 헌장을 의결 이외에도 바뀐 임시정부 요인들의 명단이 연도별로 모두 나와 있다. 김구, 이동녕, 이광수, 신익희, 여운형의 이름기록이 많이..

6, 25 전쟁(戰爭)

■ 상기(想起)하자 6.25 전쟁(戰爭) ↑1950. 10. 1.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국군용사들 ↑1950. 10. 1. 38선을돌파하고북진하는국군용사들 ↑1950. 10. 1.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유엔군 ↑북진하는 국군용사들 ↑국군 환영 군중대회(함흥) ↑1950. 10. 10.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공산군에 확살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평양 북빙에 니히하는 공수부대 ↑평양 환영 군중대회 ↑압록강에 도착한 국군용사(1950, 11, 20) ↑1950.11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 40군단. ↑1950.11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 40군단. ↑후퇴하는 미군들... ↑후퇴하는 미군들.. ↑1950년 12월 3일 평양, 파괴된 대동강 철교에서 피란민들이 남하하고 있다..

일본 총독부의 가공할 사적파괴령 비밀문서

총독부의 가공할 사적파괴령 비밀문서 ↑고달사지 부도 처음엔 석탑 자체에만 눈독을 들여 어떠한 어려운 운반조건도 무릅썼던 일본인 무법자들은 차차 탑 속에 들어 있는 사리장치 유물만 꺼내는 새로운 범행을 병행시키게 되었다. 이 새로운 목표물은 무거운 큰 덩어리의 탑재들을 많은 인원과 시간을 동원하여 불법 반출하는 모험에 비하면 훨씬 손쉽게 성공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탑이 깨져 나가거나 말거나 밀어서 무너뜨리고, 혹은 사리장치가 있음직한 부분의 탑재 사이에 지렛대를 넣어 들어 올린 후 유물만 꺼내는 일은 몇이서 하룻밤 사이에 간단히 해치울 수 있는데다가 잘 걸리면 작은 순금 불같은 굉장하고 진귀한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악당들의 목표물은 더욱 다양해졌다. 석탑 속의 사리장치 유물..

이차돈의 목이 떨어진 곳에 자추사를 세우고

■ 이차돈의 목이 떨어진 곳에 자추사를 세우고 -소금강산 경주 벌판의 북쪽 얕으막한 산이 금강산(金剛山, 143m)이다. 남쪽에는 금오산(468m)과 고위산(494m)이 이어진 남산이 장엄하게 뻗어있고, 서쪽에는 선도산(380m)과 송화산(214m)이 솟아있다. 동쪽에는 명활산(245m)을 비롯하여 만호봉(505m), 토함산(745m)이 연이어 있다. 그러나 북쪽에는 형산강이 흘러가므로 산다운 산이 없고 모두가 나즈막 하니, 지세로 보아 가장 약하고 허(虛)한 편이다. 허약한 곳은 이름이라도 강하게 붙여야 다른 곳과 균형이 맞을 것 아닌가? 그래서 강한 이름! ‘금강(金剛)’인 것이다. 백두대간의 중허리에 자리잡은 강원도의 금강산이야 돌들이 뼈만 남은 것같이 단단하게 엉킨 모습이라 생김새 대로 표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