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법철 칼럼] "출세욕이 왜 그렇게..."
최종편집 2012.01.14 20:23:07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김재규, 국방장관직을 원했다”
신정(新正) 인사와 구정세모(舊正歲暮) 인사를 겸해 지난 1월 12일 낮, 연희동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불교 믿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한 분이기에 나는 각별한 심정으로 뵙고 금년 82세의 고령이었지만, 건강속의 장수를 의미하는 축수(祝壽)를 하였다. 그 때 누군가의 입에서 ‘군인의 충의(忠義)’에 대해 거론되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나는 그 때 김재규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시해 하기 전 국방부장관직을 원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全斗煥 전 대통령은 나를 만나면, 언제나 합천의 집안 얘기를 많이 한다. 외할아버지가 독실한 불자인데 해인사 주지스님과 의형제를 맺어 자주 해인사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 때면 외할아버지가 말을 타고 갔었다는 어머님이 전해주는 이야기와, 어머님이 처녀 때, 외할아버지를 따라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 어머님은 해인사 큰 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에서 기도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님을 그리워했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은 불교신앙이 집안의 전통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全斗煥 전 대통령은 청소년 시절이나 청년 장교 시절이나, 1사단장이 된 육군 소장의 장군 시절이나 오매불망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군인의 忠義(충의)”를 생명처럼 실천하는 군인 사상이었다. 오매불망 대통령이 되겠다고 정치를 한 YS, DJ와는 천양지차의 전혀 사상이 다른 국방의 간성일 뿐이었다.
“나는 꿈에서조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오직 충의를 실천하는 군인이 되려 했을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육군 대위로서 朴최고의장의 민원비서관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박의장은 전두환 대위를 의장실로 불러 독대하여 “군복을 벗고 국회의원이 되어 나를 도우라”고 엄명하듯 지시했다.
그 때 전두환 대위는 정색하여 “저는 충의를 실천하는 군인으로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 정치인은 하지 않겠습니다.”
박(朴)의장은 설득했으나, 전두환 대위는 끝내 군인의 길을 고수하여 박의장이 실망하여 섭섭해 했다고 한다.
박의장의 측근인 차지철(車智澈)도 박의장의 구상을 설명하며, 군복을 벗고 국회의원이 되어 박의장을 돕자고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이 쏘아대는 포탄이 대구 시외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조국 대한민국이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놓인 것을 절감하고, “군인이 되어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며 현재 대구공고의 전신 대구중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군문에 투신하고자 진력했지만 어머님의 만류로 보류했다가 마침내 고교를 졸업하고 난 직후, 곧바로 진해에 있는 육사로 달려간 그 각오를 고수했다. 차지철은 자신의 간절한 설득에도 단호히 거절하는 전두환 대위를 원망했다.
전두환 장군의 운명은 뜻하지 않게 전개되었다.
1사단장이 된 얼마 후, 사단의 모 사병이 북한군이 파들어오고 있는 ‘땅굴’을 군내 최초로 발견했다. 북한군이 베트남군이 성공한 땅굴작전을 원용하여 대한민국 내부로 땅굴을 파 들어오고 있었던 것을 사병에게 폭로된 것이다. 朴대통령이 땅굴을 친히 목도하기 위해 1사단을 방문했다.
당시 주한 미군 사령관 베시 대장은 4차례나 땅굴을 보기 위해 찾아왔고, 때마다 全사단장을 극찬했다. 朴대통령은 땅굴발견의 공로를 인정하여 전두환 1사단장을 전격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했다. 1대 보안사령관 김종완, 2대 보안사령관 진종채, 이어 전두환 장군은 3대 보안사령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어느 날, 당시 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 부장이 전두환 장군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 아부하듯 말했다. “전 장군 나 추천 좀 해주시오.” “형님, 무슨 말씀입니까?” 당시 김재규부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呼兄呼弟(호형호제)로 부르고 있었다. 김재규부장은 전장군이 박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다고 확신하고, 박대통령에게 자신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재규는 말했다. “정보부장은 신물이 날 정도로 해봤고, 국방부장관을 해보고 싶은 데…3군을 총지휘하는 국방장관이 꼭 하고 싶은 데… 전장군이 각하께 추천해준다면 가능한데…”라며 졸라댔다. 그때는 김재규가 왜 국방장관직을 원하는지 속내를 전혀 모르고, 전장군은 쏘아대듯 이렇게 대꾸했을 뿐이었다.
“형님은 왜 그렇게 출세욕이 과하십니까?”
김재규는 무능장교요, 石頭(석두)의 별호가 있었다. 그의 군문의 運(운)은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 부총장인 대령 계급에서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같은 鄕里(향리) 출신이고, 9세 년상인 朴대통령이 김재규를 친동생 같이 아꼈다.
朴대통령이 대령 예편될 김재규를 충주 비료공장 사장직을 주더니 곧 이어 준장 진급을 시켜 6사단장으로 임명했고, 뒤이어 3군 사령관, 보안사령관, 건설부장관, 정보부장으로 승승장구출세가도의 행운을 안겨 주었다.
김재규는 백골이 진토 되어도 朴대통령이 중용한 배려를 망각하지 말아야 할 은혜를 입었다. 그 날, 국방장관을 하고 싶으니 추천해달라고 졸라대는 김재규에 대하여 全장군은 오히려 지나친 출세욕에 훈계하는 입장이 되었을 뿐이다.
추천해주겠다는 말을 듣지 못한 김재규는 안절부절 했는데, 全장군은 김재규가 훗날, 朴대통령을 시해할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고 안타깝게 술회했다.
김재규는 왜 국방장관이 되려 안달했을까?
그는 ‘10, 26 대통령 시해사건’은 차지철(車智澈)의 무례한 시비 언사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시해 逆謀(역모)를 꾀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첫째, 정승화를 위시한 자신의 軍脈(군맥)을 사전에 조성하여 요직에 앉혔으며, 둘째, 그 후 각 군을 통솔 지휘할 수 있는 국방장관직을 원한 것이다.
가정컨대, 김재규는 자신은 국방장관으로서, 심복 정승화는 참모총장직에 있는 가운데 시해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상책이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도저히 국방장관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참모총장을 朴대통령 시해 현장부근에 대기 시켜놓고, 총을 뽑았다고 볼 수 있다.
결과는 어떤가? 교수대의 밧줄을 목에 거는 운명으로 돌변했고, 천추에 배신자의 대명사요,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남북분단의 대한민국 정치계는 전능한 신이나 부처, 예수 같은 성인이 와서 정치를 해도 만족할 중생은 없다. 중생의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되 大(대)를 위해서 소(小)를 희생할 수 밖에 없다. 100% 만족하는 정치는 없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은 건국초기 가난한 국가 때 雪上加霜(설상가상)으로 김일성의 남침전쟁으로 전국이 초토화 되었지만, 강력한 국가보안법으로 잡귀 같은 종북 좌익들을 잠재우면서, 경제를 일으키어 순차적으로 좋아지고, 안보는 튼튼한 세월이었다. 종북 좌파의 小는 이를 갈아대었겠지만, 대부분 大의 국민은 안도속에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북한정권은 1백년 가까운 세월을 두고, “민족은 하나다”고 외치면서 체제유지를 위해 “대북퍼주기”만을 바라는 손만 내밀 뿐, “편지 한 장 오가지 못하게” 할 뿐이다. 오직 대한민국의 위정자들만 변하여 첫째, 국민 혈세를 착취하듯 하여 북한정권에 돈 바치고, 둘째, 좌파에게 혈세를 지원하고, 셋째, 자신도 수입잡는 모리배 정치를 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社稷(사직)이 기운듯이 종북좌파의 목소리만 천지를 진동하듯 한다. 좌파가 백만 민란을 예고하고 선동해도 사법부는 팔짱끼고 笑以不答(소이부답)이다. 與黨(여당)은 동료간에 서로 돈봉투를 받은 “나쁜 놈”이라고 국민에게 고발장을 써대고 있다.
그 와중에 치마 입은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정신없이 아군끼리 泥田鬪狗(이전투구)의 패싸움을 독려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명박(李明博) 정권의 2인자라는 이재오 의원의 “자기를 죽이려 든다”는 비명도 들리고 있다. 제1야당 미주통합당도 지지 않을세라 동지간 돈봉투 공격이다.
한나라당의 최후를 보여주는 것같은 정치를 보여주는 판국에 북한 애송이 대장, 김정은은 아비의 생일을 지나면 대한민국을 향해 “볼 일을 보자”는, 위기를 맞고 있다. 李대통령도, 부하들도 모두 팔짱끼고 먼 산 보는 듯 보이는 데 큰 일 아닌가?
강력히 국가보안법을 시행하고, 朴대통령 시해범들에게 “군인의 충의”가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같은 기백이 절실히 필요한 시국이다. 끝으로, 나는 작별 인사 때, 마당에 보이지 않는 진돗개 백구 두 마리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私邸)가 경매되는 불운이 닥쳤을 때, 백구는 내용도 모른채 경매에 들어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었다. 천만다행히도 백구는 어느 인사가 경매를 받아 주인에게 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경매에 시달려서인지, 백구는 부쩍 늙어 있었다. 인간사 모두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는 듯, 득도한 듯이 집 뒤에서 얼굴을 들어 묵연히 흰구름을 응시하고 있었다.
<李法徹bubch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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