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2008년 12월 19일 "위장 귀순 이중간첩 이수근씨 무죄판결"

야촌(1) 2017. 12. 19. 00:36

[오늘의 역사]

2008년 12월 19일

"위장 귀순 이중간첩 이수근씨 무죄판결"

 

2017. 12. 19. 0:17

 

1969년 3월6일 판문점을 통해 자진 월남했던 이수근씨가 위장귀순으로 밝혀져 검찰에 구속 송치되고있다.

위장 귀순한 이중간첩으로 몰려 지난 1969년 사형집행된 고(故) 이수근(당시 46세)씨에 대해 법원이 39년 만인 2008년 12월 19일 “이씨가 위장간첩이 아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1967년 3월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뒤, 1969년 1월 31일 위조 여권을 이용해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로 향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체포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 등으로 같은 해 7월 사형이 집행됐다.

 

 

↑1969년 3월 6일 판문점을 통해 자진 월남했던 이수근씨가 위장귀순으로 밝혀져 검찰에 구속 송치되고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박형남)는 2008년 12월 19일 이씨의 암호문을 북한으로 보내는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21년을 복역했던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70)씨에 대한 재심(再審)에서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의 남한 탈출을 방조하고 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이 선고된 이씨의 외조카 김세준(61)씨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씨의 사형 집행 목격자에 따르면 그가 ‘나는 북도 남도 싫어 중립국에서 살려고 했고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는 취지로 말한 점 등을 종합할 때 그를 위장 간첩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먼저 밝힌 후, 이에 근거해 배씨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형식적으로는 배씨와 김씨 사건에 대한 재심이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이씨가 위장 간첩이 아니었다는 점을 사법부가 인정한 판결인 것이다. 서 이 사건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현 조갑제닷컴 대표)가 월간조선 1989년 3월호에 보도한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문제 제기됐었다.

 

재판부는 1980년대 후반 조 대표가 3년에 걸쳐 취재하던 도중 만난 홍필용 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이대용 전 사이공 공사, 김기완 전 중앙정보부 정보부국장 등의 인터뷰 내용을 판결의 근거로 인용하기도 했다.


조 대표 역시 월간조선 기사가 보도된 후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이었던 A씨(육사 8기·현재 미국 거주)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고소돼 검찰 조사를 받고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다.


이씨는 1967년 귀순한 후 정착금을 받았고 각지에서 성금도 답지했다.

서울 미아동에 단독주택도 마련했고 당시에는 흔치 않던 코로나 승용차도 타고 다녔다.

 

1968년에는 서울 반도호텔에서 우석대 의대 교수였던 이모(당시 35세)씨와 결혼식도 올렸다.

부인 이씨는 1972년 미국으로 이민간 뒤 소식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