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영천군(永川君) 이정(李定)의 풍류

야촌(1) 2017. 11. 30. 23:11

용재총화 4.22/성현(成俔:1439~1504) 저

 

영천군(永川君) 이정(李定)의 풍류

 

영천군(永川君) 정(定)은 효령대군의 아들(다섯째)이다.

그의 부인은 우리 문중에서 갔으므로 서로 친히 지냈다. 그는 사람됨이 활달해 속박되지 아니했다.

 

성품 또한 순진하고 근엄해 무슨 일이든 곧이 대로 행했다.

시사(詩思)가 맑고 참신했으며 화격(畫格)도 또한 기이했다. 일생을 주색(酒色)에 빠졌다.

 

시골의 기녀가 처음으로 뽑혀서 서울에 오면, 공(公)은 집으로 맞아다가 의복을 잘 차려 입혔다.

얼마 안 있어 젊은 사람들이 유인해 도망해도 또한 찾지도 아니했다.

 

이런 까닭으로 평생에 잘되게 해 준 사람이 그 수를 모를 정도다.

집안 계집종은 모두 악공을 불러 시집을 보냈다. 한 병의 술을 얻더라도 풍악이 뜰에 가득해 매일 취했다.

 

일찍이 말위에서 채찍을 들어 허공에다 글을 쓰거늘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산수 도형(山水圖形)을 그렸다.” 했다. 문사를 몹시 사랑해 사귀는 사람이 모두 이름난 관료와 큰 선비들이었다.

 

만약 유생을 보면 말 위에서라도 옷소매를 잡고 고금의 인물과 문장, 기율(氣律)을 두루 담론 했다.

사문(斯文) 이윤인(李尹仁), 이유인(李有仁) 형제가 이현(梨峴=오늘날 종로구 인의동 112번지 현재 해운항만청 동쪽에 있던 배나무 고개)을 지나다가 술에 취한 채 남루한 옷을 입고 길가에 앉아있는 영천군을 만났다.

 

두 사람은 보통사람이라 여기고 말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영천군이 사람을 시켜 불러오게 하고는 말하기를, “너는 왕손을 보고도 어찌 예를 하지 않느냐?

너희들은 누구냐?”했다.

 

이유인이 말하기를

“우리는 문사입니다”

 

영천군이 말하기를

“누구의 방(榜)에 급제했느냐?” 하니 이유인이 말하기를

‘우리의 장원은 고태정(高台鼎)“입니다 했다.

 

영천군은 침을 뱉으며

“강자평(姜子平)의 무리로구나.

너는 속히 물러가라”했다.

 

윤인에게 묻기를

“너는 누구인가?”하니

‘문사입니다“했다.

 

“너는 누구의 방(榜)에 급제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우리의 장원은 이승소(李承召)입니다”했다.

 

영천군이 말하기를

“그러면 <백두산부(白頭山賦)>를 아느냐?”했다.

이윤인이 외우거늘 영천군은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고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