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172

미인계로 흥한 남인 미인계로 망하다.

■ 미인계로 흥한 남인미인계로 망하다. 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제130호 | 20090906 입력] 신성한 왕권의 전제는 국왕이 하늘을 대신해 정치를 한다는 사실에 온 나라가 동의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국왕은 초월적인 위치에 서서 정치를 해야 했다. 그러나 숙종은 개인의 애욕(愛慾)을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해 잦은 정권교체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왕권은 강화됐지만 국왕은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왕위에 앉은 필부(匹夫)로 전락했다. ↑숙종과 인현왕후 민씨의 명릉(明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도동에 있다. 서인을 대표했던 인현왕후 민씨와 남인을 대표했던 장씨의 다툼은 결국 민씨의 승리로 끝났음을 보여주는 무덤이 다. 사진가 권태균 三宗의 혈맥 숙종 ⑧갑술환국 후궁 장씨가 인현왕후 ..

애욕에 눈먼 임금 정치보복을 許하다.

■ 애욕에 눈먼 임금 정치보복을 許하다.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129호 | 20090830 입력] 노나라 대부 계강자(季康子)가 ‘무도한 사람을 죽여 도(道)가 있는 데로 나가게 하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정치를 하면서 어찌 죽임(殺)을 수단으로 쓰겠는가?”라고 반대했다. 모두 공자의 제자를 자처했으나 상대방을 포용하기보다 배척하기를 좋아했던 군주와 당파들이 서로 만나 살(殺)이 난무했던 증오의 시대로부터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충청남도 강경의 죽림서원 옛날에는 황산서원이었다. 효종 때 송시열과 윤선거가 윤휴 문제를 두고 크게 다퉜던 서원인데, 훗날 송준길·송시열 등이 향사되면서 노론의 주요 서원이 되었다. 三宗의 혈맥 숙종 ⑦기사환국 숙종 15년(1689) 후..

「차기 후계」암투가 임금의 가정을 파탄 내다.

■「차기 후계」암투가 임금의 가정을 파탄 내다. 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제128호 | 20090823 입력] 정당정치는 여야의 공존이 전제조건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피력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공존의 요체다. 그러나 대립이 격화되는 정치 현실은 상대를 제거하고 싶은 독존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공존의 정치가 파괴되면 패자만 화를 입는 것이 아니다. 권불십년이란 말처럼 정권이 바뀌면 과거 상대를 찔렀던 창은 나를 겨누게 된다. 三宗의 혈맥 숙종 ⑥미인계 정국 ▲장희빈 초상역관 집안의 서녀인 장희빈은 아들 균(훗날 경종)을 낳았으나 인현왕후를 저주한 혐의로 죽임을 당했 다. 우승우(한국화가) 숙종 14년(1688) 11월 21일. 8명의 노비가 메는 옥교(屋轎 :지붕 있는 가마)가 궐..

오직 왕권을 위해 남인,북벌론 버렸다.

■ 오직 왕권을 위해 남인,북벌론 버렸다. 이덕일 | 제126호 | 20090809 입력 숙종은 두 당파를 경쟁시켜 왕권을 극대화하는 길을 택했다. 한 당파를 이용해 다른 당파를 제거할수록 왕권은 강해졌다. 그러나 그는 왕권 강화 그 자체에 목적을 두었을 뿐 강화된 왕권으로 추구할 목표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왕권은 강화되었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사대부들의 착취에 시달렸다. 왕권 강화와 백성들이 따로 노는 괴리현상이 심해졌던 것이다. 三宗의 혈맥 숙종 ④ 경신환국 ▲허적의 초상. 허적은 원만하고 신중한 인품을 갖춰 온건개혁파인 탁남을 이끌면서 강경개혁파인 청남과 야당인 서인 사이를 중재했으나 경신환국 이후 정치보복을 당해 사형당했다. 사진가 권태균. 윤휴가 숙종 1년(1675) 9월 체부(體府: 도체찰사..

부국강병의 길 특권이 막았다.

■ 부국강병의 길 특권이 막았다.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125호| 20090801 입력 지배층만 부유한 나라보다 다수 백성들이 부유한 나라가 강국임은 말할 것도 없다. 다수 백성들을 잘살게 하자는 민생론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정치가의 단골 메뉴였지만 많은 경우 현안 회피용에 불과했다. 어떤 정치세력이 진정으로 민생을 원하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민생을 위한 법제화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윤휴 초상. 진정한 북벌론자인 윤휴는 사대부의 각종 특권을 폐지해 민생을 강화한 뒤 광활한 요동 지역을 수복하자고 주장했으나 호응하는 사대부는 거의 없었다. 사진가 권태균 三宗의 혈맥 숙종 ③ 민생 개혁의 좌초 갓 즉위한 숙종이 안으로는 각 당파의 복잡한..

윤휴 북벌론 꺾은 사대부들의 이중성

■ 윤휴 북벌론 꺾은 사대부들의 이중성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 [제124호 | 20090725 입력] 북벌론은 효종 사망과 동시에 사라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현종 14년(1673) 청나라가 삼번(三藩) 철폐 문제로 내전에 휩싸이자 조선에서 다시 북벌론이 등장했다. 이때의 북벌론은 예송논쟁 때 송시열과 대립했던 백호 윤휴가 주창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지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역사의 붓대를 잡은 자가 미래인의 뇌리를 지배하는 사례다. 三宗의 혈맥 숙종 ② 淸 내란의 호기 현종 말~숙종 초 청나라는 ‘삼번의 난’이라고 불리는 내전에 휩싸였다. 삼번은 청나라 남부에 있는 일종의 자치왕국들로서 오삼계(吳三桂)가 중심이었다. ▲강희제의 초상화. 9세에 왕위에 올라 69세까지 60..

민생 무너지는데, 임금·사대부 눈엔 송시열만 보였다

■ 민생 무너지는데, 임금과· 사대부 눈엔 송시열만 보였다.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123호 | 20090718 입력] 사회를 선도할 명분과 동력을 상실한 정치세력은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다. 이런 지배집단은 본질적 현안에는 눈을 감은 채 비(非)본질적 현상을 두고 사변적 논쟁에 몰입하게 된다. 이때 역사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호명한다. 비극은 이런 책무를 수행할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조선 후기가 이런 상황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른지 반문할 때다. ↑창경궁 명정전의 어좌.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때 다시 지은 전각으로 용상 뒤에는 일월오악병이 있다. 三宗의 혈맥 숙종 ①14세 소년 국왕 서인 정권을 갈아치우던 현종이 재위 15년(1674) 8월 18일 급서했을 때..

오만한 西人에 분노한 임금, 정권 바꾸려다 의문의 죽음(효종)

■오만한 西人에 분노한 임금「정권 바꾸려다 의문의 죽음」 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제122호 | 20090712 입력] 국가 통치이념이 현실에서 벗어나 사변(思辨)으로 흐르면 이미 사회 통합과 선도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예송논쟁은 일본인 학자들의 주장처럼 무의미한 논쟁은 아니었으나 경신 대기근을 겪은 나라가 걸어야 할 길은 아니었다.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식량이었으나 집권 서인은 겉과 속이 다른 예론에 집착했다. 예론은 자신들의 당파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외피에 불과했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에 있는 효종 부부의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죽음은 1, 2차 예송논쟁을 각각 촉발했다. 1차 예송논쟁에서 승리한 서인은 2차 예송논쟁으로 몰락했다. 三宗의 혈맥 현종 ⑥ 34세의..

지도층의 희생과 대동법, 天災에서 나라를 건져내다.

■ 지도층의 희생과 대동법, 天災에서 나라를 건져내다.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121호 | 20090705 입력] 유례를 찾기 힘든 경신 대기근을 맞아 조선은 기민(饑民) 살리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소빙기(小氷期)의 재앙에 맞서 수도(修道)하는 자세로 재난 극복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망국 지경까지 갔던 나라가 되살아났다. 위기를 맞이하고도 당리당략 외엔 관심이 없어 보이는 대한민국 정치권이 되돌아볼 만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18세기께 작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해동지도’의 경기도 편. 조정은 대동법 등으로 확보한 곡식을 조운을 통해 기 근이 든 고장에 옮긴 다음 기민 구제용으로 풀어 많은 백성을 살렸다. 三宗의 혈맥 현종 ⑤ 대기근 극복 현종 11..

가뭄·홍수·냉해·태풍·병충해, 5災가 한꺼번에 덮치다

■ 가뭄·홍수·냉해· 태풍· 병충해, 5災가 한꺼번에 덮치다.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120호 | 20090627 입력] 16~19세기는 전 세계적인 소빙기(小氷期)였다. 조선에서는 17세기 중·후반 현종 때 기상이변과 재난이 집중되었다. 예송논쟁이 치열했던 한편으로 대동법 논쟁이 거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배 엘리트들은 백성들의 조세를 경감해주고 풍년 든 지역의 곡식 일부를 흉년 든 지역으로 직접 보내는 탄력적 운용으로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려고 했다. 三宗의 혈맥 현종 ④경신 대기근 ▲대기근-인생(58.5Χ95cm), 우승우(한국화가) 조선 왕조 후기에 굶주리던 백성의 형상. 현종은 재위 기간 내내 흉 년에 따른 대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렸다. 거리에는 유리걸식하거나 굶어 죽은 시신이 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