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 5. 3. 01:08
■숙종(肅宗)과 갈처사(葛處士)
조선(朝鮮)의 제19代 국왕 숙종(肅宗, 1661년 9월 8일 ~ 1720년 7월 13일/제위 1674,~1720) 임금의 성은 이(李)요, 휘는 순(焞)이고, 본관은 전주(全州)로. 자(字)는 명보(明普) 이다. 그는 현종의 외아들로 모후는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의 딸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1661년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1667년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674년 8월 23일 13세의 나이로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서 즉위해, 그때까지 가장 긴 기간인 46년 동안 재위한 끝에 1720년 6월 8일 경덕궁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했다. 명릉(明陵.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소재)에 모셔져 있다.
숙종의 초비(初妃)는 영돈녕부사 김만기(金萬基)의 딸인 인경왕후(仁敬王后)이고, 계비(繼妃)는 영돈녕부사 민유중(閔維重)의 딸 인현왕후(仁顯王后)이며, 제2계비는 경은부원군 김주신(金柱臣)의 딸인 인원왕후(仁元王后)이다.
그러나 이분들의 세 왕후로부터는 왕자를 얻지 못했고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에게서 각각 경종과 영조가 되는 왕자를 낳았다. 숙종대의 특징인 궁중의 복잡한 갈등은 이런 객관적 조건과 밀접히 관련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아뭍은 숙종은 13살의 어린 나이로 조선의 19代 임금으로 즉위하였으나 총명하고 속깊은 그는 수렴청정을 받지 않고 직접 나라를 통치하였다. 어려서 부터 영특한 지모와 카리스마적인 성격으로 남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을 잠재웠으며, 항상 왕으로서의 권위를 잃지않고 남다른 애정으로 그 유명한 장옥정(張玉貞)과 희대(稀代)의 사랑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살피고자 내관 한사람만을 데리고 민정시찰(民政視察)을 자주 하였는데, 어느날 숙종이 멀리 수원성(水原城) 가까이 말을타고 민정시찰을 나갔는데 흐르는 냇가(지금의 水原川 附近)를 지날 무렵 허름한 시골 총각(總角)이 관(棺) 하나를 옆에두고 슬피 울면서 냇가에서 땅을 파고 있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상(喪)을 당(當)하여 묘(墓)를 쓰는것은 흔한 일이지만 묘라는 것은 산에 쓰는것이지 파는 족족 물이 솟아나는 냇가에 묘(墓)자리를 파고 있는 더벅머리 총각(總角)이 괴히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가난하고 땅이 없어도 유분수(有分數)지 어찌 송장을 물속에 넣으려고 하는지 희안도 하다"
그래도 무슨 사연이나 곡절이 있겠지 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여보게~ 총각(總角)!!
여기 있는 이 관(棺)은 누구 것인고?"
"제 어머님 시신(屍身)이 들어있는 관(棺)입니다"
"그런데 왜 물이나는 냇가를 파고 있는고?"
"이곳에다 묘(墓)를 쓰려고 하는데요? ..."
짐작(斟酌)은 했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숙종(肅宗)이었지요
"여보게~ 젊은이!!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어머니 묘(墓)를 이곳에 쓰려고 하는가?"
"저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
오늘 아침에 어머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처사(葛處士)라는 노인(老人)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이리로 데리고 와서는 냇가 이자리에 꼭 어머니 묘(墓)를 쓰라고 일러 주었지요. 그 분은 워낙 유명(有名)한 지관(地官)인지라 아무소리 못하고 알았다고 했어요"
총각(總角)은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自身)의 곤혹(困惑)스런 처지(處地)를 처음 보는 큰 갓을 쓴 양반(兩班)나리에게 하소연하듯 아뢰었어요. 이야기를 듣고난 숙종(肅宗)이 가만히 생각하니 갈처사(葛處士)라는 지관(地官)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요.
"그 갈처사 라는 지관이 사는곳을 아느냐?? " 하고 물으니 "저기 저 언덕위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어요" 라고 하는것이 아닌가 ~
숙종임금은 궁리(窮理)끝에 지니고 있던 지필묵(紙筆墨)을 꺼내어 몇자(字) 적었어요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書札)을 수원부(水原府)로 가져가게 수문장(守門將)이 성문(城門)을 가로 막거든 이 서찰(書札)을 보여주게"
총각(總角)은 또 한번 당황(唐慌)하였지요
아침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
유명한 지관(地官)이 냇가에 묘(墓)를 쓰라고 했지 ~
이번에는 왠 선비가 갑자기 나타나 수원부(水原府)에 서찰(書札)을 전(傳)하라 하지 ~ 도무지 어느 장단(長短)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地境)이었어요 총각은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결국(結局)은 급(急)한 걸음으로 수원부(水原府)로 가게 되었지요
임금이 써준 서찰(書札)에 적힌 내용(內容)은 다음과 같았어요.
"어명(御命)!!
수원부사(水原府使)는 이 사람에게 당장(當場) 쌀 삼백(三百)가마를 하사(下賜)하고 좋은 터를 정(定)해서 모친 묘(墓)를 쓸수 있도록 급(急)히 조치(措置)하라 " 였어요
수원부(水原府)는 갑자기 발칵 뒤집혔지요
추상(秋霜)같은 어명이 떨어 졌으니 .....
허름한 시골 총각(總角)을 위해 유명(有名)한 지관(地官)이 동행(同行)되지 않나 !! 창고(倉庫)의 쌀이 끌어내져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上監)마마 그 분이 상감마마 였다니!"
총각(總角)은 하늘이 노래졌어요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지요. 냇가에서 자기(自己) 어머니 시신(屍身)을 지키고 있을 임금을 생각하니 황송(惶悚)하옵기가 그지 없었지요.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어요.
한편
숙종(肅宗)은 총각(總角)이 수원부(水原府)로 떠난뒤 갈처사를 단단히 혼내 주려고 총각(總角)이 가르쳐 준 갈처사(葛處士)가 산다는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어요 숙종(肅宗)이 산마루에 올라가니 그곳에는 다 찌그러져가는 단칸 초막(草幕)이 있었지요
"이리 오너라!!"
"..............."
"이리 오너라!!"
".............."
한참 뒤에 초막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게 뉘시오?"
방문(房門)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主人)은 영낙(零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老人) 행색(行色)이었지요.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房)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는지라 숙종(肅宗)은 그대로 문(門)밖에 서서 물었다.
"나는 한양(漢陽)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처사(葛處士) 인가?"
"그렇소만 ~ 무슨 연유(緣由)로 예까지 나를 찾는게요?"
"오늘아침 저 아래 모친상(喪)을 당(當)한 총각(總角)한테 냇가에 묘(墓)를 쓰라했는가?"
"그렇소!! 그런데 그게 뭐 잘못 되었소??"
"듣자하니 당신이 묘자리를 좀 본다는 지관(地官)이라 하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墓)를 쓰라 했다니 그게 어디 당(當)치나 한 일인가? 아직 장가도 못간 어진 총각한테 골탕을 먹여도 유분수(有分數)이지 모친상을 당하여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겪고 있는 총각한테 그럴수가 있단 말인가? 이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죄과(罪科)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숙종(肅宗)의 참았던 감정(感情)이 어느새 격(激)해저 목소리가 커졌지요 그랬더니 갈씨 또한 촌노(村老)이지만 낮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便)치 않았어요.
"아 ..이..보시오??
선비란 양반(兩班)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參見)이야 ~ 참견을??? 당신이 그 묘자리가 얼마나 좋은 명당(名堂)인지 알기나 하고 떠드는거요?"
그러면서 숙종(肅宗)보다 더 크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하는 바람에 숙종(肅宗)은 더욱 화가나고 기(氣)가 막혔지요 (속으로는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眼前)이라고 ~ 어디 잠시(暫時)더 두고보자 하면서 감정(感情)을 억 눌렀어요)
"그래요?? 물이 쏫아져 나오는 냇가가 어떻게 명당(名堂)이란 말이요?"
그러자 갈처사는 의기양양하여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할것이지 ~
그곳은 시체(屍體)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삼백(三百)가마를 받고 명당(名堂)으로 옮겨가는 묘자리야 !! 시체(屍體)가 들어가기도 전(前)에 발복(發福)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코도 모르면 잠자코 있을것이지!! 허허 ~ 이거 참 ~~ "
숙종(肅宗)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어요
갈처사(葛處士)의 말대로 시체(屍體)가 들어가기도 전(前)에 총각(總角)은 쌀 삼백(三百)가마를 받았으며 명당(名堂)자리를 잡아 장사(葬事)를 지낼 상황(狀況)이 아닌가!
숙종(肅宗)은 갈처사(葛處士)의 대갈일성(大喝一聲)에 당황하며 자신(自身)도 모르게 "이거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하는생각이 들어 목소리를 낮추었어요. 그렇지만 모른체 당혹감을 감추면서
"그렇다면 모든일을 훤히 내다보는 갈처사는 어찌하여 저 아래 고래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幕)에서 산단 말이오?"
"허허 ~ 이 양반(兩班)아 ~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귀찮게 따지고 들어??"
"뭐요? 따지고 들다니?? "
아무리 기세좋은 숙종(肅宗)이라도 갈처사의 당당한 모습에 서서히 주눅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보시오 ~ 선비양반 !!
저 아래 부자로 사는 것들은 남 속이고 도둑질이나 하는 것들인데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가진들 무슨 소용(所用)이 있겠소?? 그래도 이집은 지금은 초라하고 볼품없는 움막이지만 나라 상감이 찾아올 자리라오!! 이 초라한 움막이 나랏님이 찾아올 천하에 명당(名堂)자리란 말이요!!"
숙종(肅宗)은 그만 아연실색하여 정신(精神)을 잃을뻔 했어요 이런 신통(神通)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지요. 꿈속을 해메고 있는것 같았어요
"허허 ~ 그렇다면 한가지 더 묻겠는데 나랏님(王)이 언제 찾아올 터요?"
"거 ~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 !!
그럼 잠시(暫時) 기다려 보시오 ~ !!
내가 재작년(再昨年)에 이 집을 지을때 날을 받아놓은 것이 있으니 ~ 가만.... 어디에 있더라~ !!"
하면서
방 한쪽 찌그러진 괘짝속에서 보자기를 꺼내 종이 한장(張)을 꺼내어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大驚失色)을 하는게 아닌가 !!!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와 큰 절을 올리는 것이 었어요 종이에 적힌 시간(時間)이 바로 지금 이 시간(時間)이었지요 갈처사는 바로 문앞에 있는 임금을 알아본 것이지요.
"상감마마 ~ 소인이 상감마마를 몰라보고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
소인을 죽여 주시옵소서 ~~ !! "
"여보시게.... 갈처사(葛處士) ~~ !! 괜찮소이다
대신(代身) 이 상황을 그 누구에게도 결코 발설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뭍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상감마마의 덕(德)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臣下)된 자로서 영면(永眠)하실 자리를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無限)한 영광(榮光)이옵니다 하늘과 같은 상감마마의 하명(下命)이신데 어찌 거역(拒逆)하겠사옵니까?"
그리하여 갈처사(葛處士)는 숙종(肅宗)이 죽은뒤 묻힐 왕능(王陵)자리를 잡았는데 지금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능(西五陵)중에 "명능(明陵)"이 바로 그자리라 하네요 명능(明陵)은 서오능(西五陵) 중에서도 가장 명당 자리로 정평이 나 있다 하는군요
서오릉(西五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조선 왕실의 왕릉군이지요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의 다섯 능을 말하며 그밖에 순창원과 수경원 그리고 장희빈의 "대빈묘"도 함께 있어요
참고로 서오능에 있는 명능(明陵)에는 숙종대왕과 인현왕후의 쌍능이 있으며 인원왕후는 별도로 혼자 쌍능 왼쪽에 예장돼 있고 사랑에 살고 사랑에죽은 장옥정묘는 "대빈묘"라 하여 숙종대왕능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다 하네요
그리고 장옥정은 한때는 중전자리에 올랐지만 폐서인되어 사사 되었기에 능(陵)이라 하지않고 묘(墓)라 한다 하는군요, 언제 한번 고양시에 가시면 사오능 "대빈묘"에 들려 장옥정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해 보시기 바래요.
아무튼
숙종대왕(肅宗大王)은 고마움의 뜻으로 갈처사(葛處士)에게 삼천량(三千兩)을 하사(下賜)하였으나 노자(路資)로 삼십량(三十兩)만 받아들고 홀연(忽然)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요
끝으로
갈처사(葛處士)가 홀연히 떠난뒤 언제부터인가 이런 시가 전해오고 있다 하네요
신묘 하도다 갈 처사여 ~
냇가에 묘를 쓰고 산마루 언덕에 초막을 지으니
음택 명당이 냇가에 있고
양택 명당은 산마루에도 있구나.
임금을 호통 치면서도 죄가 되지 않으니
풍수의 조화는 국법도 넘어가네.
볼품없는 초라한 몸이라도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고
나랏님께 충성하노니
그 이름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리라.
▲숙종 도감의괘
▲명능(숙종대왕과 인현왕후 쌍릉)
▲희빈 장씨 묘(禧嬪張氏 墓) /張 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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