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란선생묘소(韓蘭先生墓所) 및 신도비(충북 기념물 72호)
▲한란선생 묘역 전경
고려의 개국공신인 태위(太尉) 한란(韓蘭, 853~916) 공을 안장한 묘소와 그의 위업을 기리는 신도 비이다.
원래의 묘소는 조선 효종(孝宗) 10년(1659)에 노봉(盧峯)에 의해 파손되었으며, 후손들이 숙종(肅宗)
16년(1690)에 봉분을 복원하였다고 전해진다.
▲한란이 태조 왕건에게 식수를 제공했다는 방정(方井) ▲방정 앞에서 바라 본 묘역(봉우리 안쪽 끝) 입구 전경
▲한란선생 영정이 모셔진 사당 입구 삼문 모습 ▲사당 외부좌측에 위치한 최근에 조성된 비석들
묘소는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지만 고려시대의 묘비와 상석 등이 현존하고, 효종때의 문인석과 용마석이 보존
되어 있다. 묘소 앞의 신도비는 후손인 한익모(韓翼慕)가 찬하고 한광회(韓光會)가 비문을 썼으며 한덕필(韓德
弼)이 전액을 써서 1768년(영조 44)에 세워졌다.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실린 그 비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한란선생 묘역 우측 산자락에 위치한 후손들 묘역 ▲묘역으로 오르는 계단중간 좌측에 위치한 신도비모습
우리 동방의 대성에는 반드시 한 씨를 칭하게 되는데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와서 후손으로 성을 얻은 자가
셋인데 한씨가 그 하나이다. 그 후 수백 년을 지나 우리 태위부군에 이르러 비로소 호서의 청주에 일가를 이
루어 모든 한씨의 조상이 되니 대개 보고 들은 바로 자연히 알 수 있다.
한란선생 묘역 전경. 봉분의 둘레석, 상석, 동자석, 장명등은 근래에 조성된 듯...
부원군 한란은 고려 태조를 도와 공훈으로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렀다.
청주 동남쪽 10리에 있는 방정리(方井里)는 당시에 복거하신 구지이다.
방정리에서 가산 아래 남록 남쪽 67리에 있는 묘지는 부감(負坎)의 언덕으로 실로 부원군의 옷과 신발이
묻힌 곳이다. 중간에 실전이 되어서 타인들이 모점(冒点)하여 봉분의 형태가 없어지고 묘역을 찾을 길이
없었다.
▲한란선생 묘
▲한란선생 봉분의 둘레석에는 12지신상 대신에 화투(花鬪)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어...
1605년 후손 한백겸(韓百謙)이 청주목사로 와서 방정리 유허지에 단을 축조하고 해마다 한번씩 제사를 지냈다.
1689년에 참판 성우(聖佑), 장령 영(濚), 군수 숙(塾)이 같이 나서서 관청에 제송하니 조정에서 경조를 파견하여
사중을 파본 즉 부장품 등 확실한 증거물이 나오므로 범인이 사실을 자백하였다.
▲측면에서 바라 본 묘역 전경 ▲묘역내의 석물들...
▲문인석과 망주석이 조금 특이합니다.
이제야 투장한 것을 파서 옮기고 여러 자손들이 나가서 봉분을 쌓고 묘역을 깨끗이 정리하였다. 이것이 부군
묘소를 잃었다 찾은 내력이다. 이에 모든 종중이 서로 재물을 거두고 돌을 다듬어서 묘 옆에 세우고 이런 사실
을 기록하니 부군의 후손되는 사람들은 이것을 거울삼아 근본에 보답하는 도와 선조의 적덕의 보은을 알지어
다.
▲묘역 뒷편에서 바라 본 모습
▲묘역 위에서 내려다 본 사당(좌)과 방정(우) 모습
<출처>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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