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질의답변 69

단비(壇碑)는 신위(神位)보다 지단(之壇)이 좋아 外

예절 상식 문답 41(경주김씨 종보 발췌) [문 105] 월간 [실천예절]에 동춘당 송춘길(同春堂 宋俊吉)선생에 대한 내용을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균관에 제주(祭酒)라는 자리를 만들었다]면서 [성균관에(제주)가 생긴 유래이니..]라고 했는데 [제주(祭酒)]가 관명(官名)으로 쓰일 때는 [제주]가 아니라 [좨주]여야 하지 않습니까? [답] [제주(祭酒)]관명일 때는 [좨주]로 읽어 제수(祭羞)로서의 술이나 바닥에 세 번 술을 지우는 일을 말하는 제주(祭酒)는 [제주]라 읽지만 관명(官名)일 때는 [좨주]라고 읽습니다. [좨주]라는 벼슬은 고려의 국자감(國子監)에 종 3품의벼슬로 있다가 25대 충렬왕(忠烈王)때에 전주(典酒)로 고쳤고 공민왕(恭愍王)때에 사성(司成)으로 고쳤었는데 조선조에 들어와서 다시 ..

재종형 상에 가 조문시 조카에게 절을 하나?

●재종형 상에 가 조문 시 조카에게 절을 하나? 재종형제는 촌수로 6촌 형제지간으로 피차 소공 5월 복인이 되며, 상주와는 재당숙질간으로 피차 시마3월 복인이 됩니다. 문상의 예법에 따라 상가로 가서, 소공복인으로 고인(故人)이 형이니 문에 이르면 곡하며 구전으로 들어가 곡 재배하고 성복하고 위전으로 나아가 복인끼리 서로 상조의 예법에 따라 인사를 나누면 됩니다. 단 상주인 조카에게는 문상인의 수하이니 절은 하질 않습니다. 즉 형에게는 절을 하고 부부는 상배이며 자질은 불배이니 조카벌에게는 연령과 관계 없이 절을 하여서는 아니 되겠지요. ●家禮奔喪若奔喪則至家成服條云云齊衰望鄕而哭大功望門而哭小功以下至門而哭入門詣柩前哭再拜成服就位哭弔如 ●丘儀相弔儀條云云各以服爲序擧哀相弔諸子孫就祖父及諸父前跪哭盡哀又就祖母及諸母前亦如..

기제와 명절이 겹쳐 들때의 예법?

■ 기제와 명절이 겹쳐 들때의 예법? 아래와 같이 살펴보건대 기제가 참례와 겹쳐 들 때 명문화 된 기록이 없어 선유들께서 논의의 대상이 된 예입니다. 그 논의를 대강 집약하여 보면 사대봉사 할 때는 먼저 참례를 행하고 기제를 지내며 그 이하 봉사 할 때는 먼저 기제를 행하고 참례를 지내며 일위 봉사할 때는 동암 선생 말씀에 의하면 하루 두 번 제사하지 않는다 하니 기제를행하고 참례는 폐한다 하여도 예에 크게 어그러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모든 예는 사당 건사를 전제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참례를 불출주(不出主)인 사당례이며 기제는 출주 정침례입니다. ●明齋曰忌祭與參禮自是兩項事而行事之早晩亦異先祭後參恐或無妨然雖先行忌祭如節日時食則不當先薦於祭俟祭 後設參而薦方無未安如何 ●國朝五禮儀朔望若値別祭只行別祭 ●沙溪答姜..

장례식장에서 지방은 옳은가?

●장례식장에서 지방은 옳은가? 오늘날 장례식장에서 지방을 지방함에 써 붙여 세우는 것은 유가(儒家)의 예로서는 대단히 어그러진 예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떠난 혼을 불러 시신과 합치시켰다. 습(襲=염). 반함(飯含=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과 씻은 쌀을 물림) 후 혼백을 접어 영좌에 모셔 놓고 소 대렴 입관하였다. 치장의 예에서 평토 후 비로소 혼백의 신을 신주로 모시는 제주를 하는 법이라 그 이전에 지방을 써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방 대신 영정으로 제사할 수 있나?

■지방 대신 영정으로 제사할 수 있나? 아래와 같이 살펴보건대 문묘에서는 화상을 모시고 춘추로 후학이 모여 석채(釋菜)의 제를 지내나 사서인은 그러한 제도나 예법이 없습니다. 온공설을 따른다 하여도 속례로 화상(지금의 사진)은 혼백 뒤에 둔다 하였으니 혼신은 혼백에 의지할뿐이고 사진은 단지 망자가 생시 누구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따름이라 생각됩니다. 현재 속례로 장례행렬 선두에 망자의 사진을 앞세우는데 맨 앞에는 영거(혼백) 다음에 사진이 따라야 옳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제나 기제사 등의 신좌에 사진을 세워 놓고 제사함은 유가적 견해로는 예법에 어그러집니다. 다만 옛적에도 속례로 행한바 있으니 혹 사진은 신주(지방) 뒤에 같이 모시고 제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작금에 혹 사진을 신주(지방) 대용으로 ..

기제를 당일 저녁에 지내도 되나?

●기제사를 당일 저녁에 지내도 되나? 우암 선유 말씀에 제사는 너무 일러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되며 질명(먼동 무렵)이 제사 지내는 바른 때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당일 첫 시인 자시(子時) 행사 역시 극조시(極早時)이니 예법상 바르지 않으나 다만 인정상 변례로 이르게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 당일 저녁 역시 태만(太晩)에 해당 되니 예법에 어그러집니다. 그렇기는 하나 그 시간대가 아니고는 제사를 지낼 수가 없다면 궐사(闕祀)에 비할 바가 못 되겠지요. ●語類先生遇四仲時祭膈日滌倚卓嚴辦次日侵晨已行事畢 ●張子曰五更而祭非禮也 ●陳氏曰少牢大夫之祭宗人請期曰早明行事子路祭於季氏質明而始行事晏朝而退孔子取之此周禮也然禮與其失於晏 也寧早則雖未明之時祭之可也 ●尤庵曰行祭早晩太早不可太晩亦不可惟當以質明爲正 ●南溪曰質明卽大昕指日未..

제사와 묘제를 형제들이 돌려가며 지내도 되는지?

■ 제사와 묘제를 형제들이 돌려가며 지내도 되는지? 아래와 같이 살펴보건대 부모의 제사도 지자(支子)는 지내지 않는다 하였으며, 율곡 선유께서는 묘제나 기제를 돌려가며 지내는 것도 예가 아니다라 하셨으니, 참조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曲禮支子不祭祭必告于宗子註曰支子庶子也 ●栗谷曰墓祭忌祭世俗輪行非禮也 ●南溪曰雖支子家具饌祝辭必以宗子名

납골당의 묘제 축문은?

■ 납골당의 묘제 축문은? 유가의 葬法에는 火葬禮法이 없으니 納骨堂에 관한 예법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까닭에 火葬은 대체로 佛家의 예법 같아 다비문(茶毘文), 불공제식, 釋門儀範, 釋門儀式, 등등 많은 불가 예법이 있으나 그에서도 납골당 예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존 유가의 묘제축문식(墓祭祝文式)을 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존 墓祭祝文式에서 고쳐야 할 곳은 아마도 云云之墓와 瞻掃封塋의 封塋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두 곳을 納骨堂으로 표현시키는 방법으로 예를 들어 云云之納骨0室 瞻掃納室과 같이 각각의 실정에 맞게 고쳐 고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입니다. 합제일때 독축 예법은 조고 이상과 고비의 축문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합제일 때 代各異板이라 하였으니 세대마다 돌아가며 초헌과 아울러 독축함이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