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기타 金石文 47

현와 이도선생 유허비명(弦窩 李蒤先生遺墟碑銘)

■ 현와 이도선생 유허바명(弦窩 李蒤先生遺墟碑銘) (四友齋 경내에 있는 유허비) 곽면우 찬(郭俛宇 撰/구한말 영남 유학자요. 독립운동가) 필부(匹夫)의 지절(志節-지조와 절개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세상의 일을 일시(一時)에 바로 잡아 회복(回復)시킬 수는 없지만, 족히 만고(萬古) 불변(不變)의 진리(眞理)인 강상(綱常)을 지탱시킬 수 있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옥누屋陋)에서 도(道)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을 남들은 미처 볼 수 없으나, 천지신명(天地神明)에 근간(根幹)을 두고 해와 별(星)을 짝 할 수 있는 사람 여기 있으니, 세속(世俗)에서는 이를 미미(微微)한 사람으로 아나, 군자(君子)는 이것을 가장 큰 것으로 생각하니, 비록 인(仁)을 얻어 후회(後悔)함이 없이 스스로 자취를 감추어 은거..

명랑대첩비

ⓒ인터넷 ■ 일제하 행방불명되었던 명량대첩비 찾음 (略)忠武公 이순신장군의 기념비가 일본인관리의 손으로 全南 右水營바다 기슭에서 자취가 없어졌던 것이 이번에 다행히도 전 총독부 박물관구내에 내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민족적으로 자랑할 李舜臣大捷碑는 지금으로부터 330여년 전 3천리 강산을 짓밟아논 소위 임진왜란 때 왜국의 수병을 꼼짝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던 우리 민족의 자랑인 충무공의 공훈을 기리 현장하고자 당시 右水營海戰이 벌어졌던 전남 海南郡 門內面 右水營에 儒林에서 세워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소화 17년 5월 어느 날 당시 경남 경찰부장 阿部의 손에 높이 열자 폭이 넉자 투레가 두자나 되며 무게가 소 세 마리가 간신이 끄는 이 큰 비를 뜯어내어 어디로 인가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그..

삼한산두비(三韓山斗碑)

심양=조선일보 지해범 중국전문기자 hbjee@chosun.com 중국 요녕성(遼寧省) 심양시(沈陽市) 중심가에서 20여㎞ 떨어진 화평구(和平區) 경새로(競賽路)에는 3년제 직업대학인 ‘요녕발해전수학원(遼寧渤海專修學院)’이 있다. 지난 1992년 설립된 이 대학 교정에는 다른 대학에서 보기 힘든 ‘삼학사 유적비’가 서 있다. 삼학사(三學士)란 병자호란 때 청과의 화의에 반대하고 항전을 주장하다 청(淸)에 끌려가 목숨을 잃은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세 분을 말한다. 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조선은 단군이 처음 나라의 기틀을 세웠고 기자가 강역을 열었다. 충효를 숭상하고 선비들은 인의에 도타우니 예로부터 예의의 나라로 일컬어져 왔다. 인조 14년 병자년 겨울 청태종이 조선을 침략했..

이차돈 순교비의 소유권 분쟁

↑이차돈순교비(앞면)/건립시기>817년(헌덕왕 9) ↑이차돈순교비(뒷면) 이차돈(異次頓)은 신라 제22대 지증왕(智證王) 7년(506년)에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길승(吉升), 할아버지는 공한(功漢), 증조할아버지는 흘해왕(訖解王)이다. 제23대 법흥왕(法興王)의 근신(近信)으로서 일찍부터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벼슬은 왕의 뒷바라지를 하는 내사사인(內史舍人)이었다. 이차돈은 527년 8월 5일, 22살의 젊은 나이로 육신을 버려 순교함으로써 신라 땅에 찬란한 불교의 꽃을 피우게 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1285년에 불승 일연(一然)이 지은 5권 3책의 역사책]에는 '이차돈의 목을 베자 목이 날아가서 경주 동천동(東川洞)의 소금강산 정상에 떨어지고 목에서는 흰 젖이 솟아났으며 꽃비가 내렸다'고 표현하고 있..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 기념물 지정고시-서울시

서울특별시고시 제2014 - 58호 를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조례」 제8조 규정에 따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고, 같은 조례 제11조 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사실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나다. 2014년 02월 20일 서울 특별시장 서울특별시 기념물 지정고시 1. 문화재 및 보호구역 지정 개요 ○지정종별 및 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5호 ○지정명칭 :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慶川君 李海龍 賜牌地 松禁碑) ○문화재 및 보호구역 지정대상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 대상 지번 지적(㎡) 지정 수량 및 면적( ㎡) 소유자명 지정 대상 지번 지적(㎡) 지정 수량 및 면적(㎡) 소유자명 송금비 1기 국 (산림청) 송금비가점하는 토지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산 25번지 1,175,719 0.2 국 (산림청) 토..

고창오씨 죽유공파 세거비문(高敞吳氏竹牖公派世居碑文)

고창오씨 죽유공파 세거비문 (高敞吳氏 竹牖公派 世居碑文) 高敞吳氏는 高敞縣의 土姓으로 高麗 靖宗朝에 出仕하여 翰林學士를 지낸 諱 學麟을 始祖로 한다. 이후 後孫들이 或 上京從仕하기도 하고 或 京鄕各地로 散居하기도 하다가 朝鮮 成宗代에 僉知中樞府事를 지낸 九世孫 智甫 諱 滎이 奉化縣의 在地士族 琴淮의 婿君이 되면서 高敞吳氏가 嶺南과 因緣을 맺게 되었다. 嶠南 伽倻山下 高靈公館에서 三十里許에 藏風抱水하여 君子可居의 福地가 있으니 바로 梅林이다. 尋訪하는 君子가 下馬하고 來往하는 過客이 斂襟하나니, 이는 竹牖先生의 廟宇가 있고 裔孫이 世居하고 있기 때문이다. 竹牖先生 諱 澐은 始祖公의 十三世孫으로 咸安에서 出生하여 宜寧 榮州 等地로 移住하면서 道慕退陶하고 學宗山海하였다. 先生은 明宗朝에 生員과 文科에 及第하여..

비석(碑石)의 종류

■ 비석(碑石) 1. 비석(碑石)이란? 고인의 사적(事蹟)을 칭송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문장을 새겨 넣은 돌로 비(碑), 빗돌, 석비 등 여러 말이 있 다. 그리고 비석에 새겨 넣은 글은 금석문이라 하여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비석의 시초는 옛날 중국에서 사당 문 안에 세워 제례(祭禮) 때 희생으로 바칠 동물을 매어 두던 돌말뚝에서 비롯되었 다하며, 또 장례식 때 귀인(貴人)의 관을 매달아 구덩이 안에 공손히 내려 놓기 위하여 묘광(墓壙)(무덤구덩이) 사방에 세우던 돌을 말하기도 한다. 그 돌을 다듬고 비면에 공덕을 기입하여 묘소에 세우게 된 것은 훨씬 후세의 일이며, 당시는 비석이 아닌 각석(刻石)이 라 하다가 이것을 비석이라 부르게 된 것은 전한 말기나 후한 초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비석..

회암사 지공선사 부도비(檜巖寺 指空禪師 浮屠碑)

[연대] 1828년(순조 28년) [문화재지정] 경기문화재자료 제135호 [비의크기] 높이 237cm, 너비 96cm, 두께 28cm [소재지]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 [서체] 해서(楷書) [찬인] 이색(李穡) [서자] 이희현(李羲玄) [각자] 미상 ------------------------------------------------------------------------------------------------------------------------------------------- [개관] 이 비는 1828년(순조 28년) 경기도 양주에 건립된 회암사지공선사부도비(檜巖寺指空禪師浮屠碑)로 이색(李穡)이 비문을 지었고, 이희현(李羲玄)이 글씨를 썼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 양주(陽州)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회암사(檜岩寺) 묘엄존자(妙嚴尊者) 무학대사(無學大師) 비조선국 왕사 대조계사 선교도총섭 전불심인 변지무애 부종수교 홍리보제 도대선사 묘엄존자 탑명 병서(並序) 가선대부(嘉善大夫) 예문관제학 동지경연 춘추관사 겸 판내선시사(藝文舘提學同知經筵春秋舘事兼判內膳寺事) 신 변계량(卞季良)이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짓고, 가정대부(嘉靖大夫) 검교 한성판윤 보문각제학(檢校漢城判尹寶文閣提學臣) 신 공부(孔俯)가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쓰다. 태조 원년(태조 1, 1392년) 겨울 10월에 대사께서 상감의 부름을 받아 송경(현 개성)에 이르셨다. 태조께서 그달 11일 탄신을 기하여, 법복과 그릇을 갖추어 왕사(王師) 대조계종사(曹溪宗師) 선교(禪敎) 도총섭 전불심인 변지무애 부종수교 홍리보제 도대선..

금관총 칼에서 '이사지왕(爾斯智王)' 각자 발견

■ 금관총 칼에서 '이사지왕(爾斯智王)' 확인 ↑이사지왕이라고 각자가 세겨저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신라 무덤에서 신라왕 이름은 처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21년 조선총독부가 발굴한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인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한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 고리 갖춤 쇠칼)에서 '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고 국립중앙박물관이 3일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 일환으로 산하 보존과학부에서 금관총 출토 환두대도를 보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명문(銘文)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판독한 결과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확인했다고 이날 덧붙였다. 글자는 칼집 끝 부분과 자루와 만나는 첫 부분을 장식한 금속(금동)에서 각각 확인됐다. 그중에서도 칼집 하단 앞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