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이 세상에서 최고의 소리는 미인 치마끈 푸는 소리?

야촌(1) 2017. 6. 28. 21:38

■ 이 세상에서 최고의 소리는.....미인 치마끈 푸는 소리?

 

이항복은 선조대의 명신 중 한 명이지만 오성과 한음 설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늘 위트가 넘쳤다.

이항복은 어느날 송강 정철(1536~1593), 서애 유성룡(1542~1607), 월사 이정구(1564~1635), 일송 심희송(1548∼1622)과 서울 교외로 나가 술판을 벌였다.

 

술이 제법 거나해지자 누군가

"세상의 소리 중 무엇을 최고로 여기냐"

고 물었다.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답게

"밝은 달 아래 누각 꼭대기를 지나가는 바람"

이라고 했고,

이정구는

"산속 초가에서 선비의 시 읊는 소리"

라고 했으며,

심희송은

"붉은 단풍에 스치는 원숭이 울음"

이라고 했다.

 

모두들 고상한 말을 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나선 이항복이

"첫날밤 미인의 치마끈 푸는 소리만큼 듣기 좋은 소리가 세상에 어디 있겠소"

라고 한마디 하자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신윤복 작 연당야유(부분) 간송미술관 소장

 

음담패설집'으로 알려진 고금소총(古今笑叢,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우스운 이야기 모음)의 한 대목이다.

고금소총은 19세기 편찬된 작자 미상의 설화집이다.

 

서거정(1420~1488) 편찬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송세림(1479~?)의 어면순(御眠楯), 성여학의 속어면순(續禦眠楯), 강희맹(1424~1483)의 촌담해이, 홍만종(1643~1725)의 명엽지해(蓂葉志諧), 부묵자의 파수록(破睡錄), 장한종(1768~?)의 어수신화(禦睡新話), 편찬자 미상의 진담록(陳談錄), 성수패설(醒睡稗說), 기문(奇聞), 교수잡사 등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유행했던 소화집(笑話集)을 한데 묶은 것으로, 총 825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위로는 왕후장상으로부터 학자, 관료, 양반 등 사대부, 중인, 승려, 그리고 무당, 기생, 노비 등 천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모두가 풍자와 해학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과감하면서 노골적인 외설담이 중심이지만 그 속에서 윤리적, 교훈적 측면도 놓치지 않는다.

 

 

↑1000명의 여성과 잠자리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조선중기 문신 송언신. 경기도박물관 소장.

 

고금소총에는 이항복뿐만 아니라 다양한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선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송언신(1542∼1612)은 여색을 밝혀 평생에 1000명을 채우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면서 병든 노파나 행상하는 여자, 나물 캐는 여자 가리지 않고 겁탈했다.(실제 실록도 송언신을 두고 음패(淫悖)스러운 행실이 많아 교양 있는 사람은 더불어 교제하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고 평했다.)

그가 관찰사 때 관동지방을 순찰하다가 원주 한 고을의 호장(향리의 우두머리) 집에 머물게 됐다.

송언신은 호장의 딸이 쏙 마음에 들었다. 딸은 자꾸 추파를 던지는 관찰사의 행동이 미심쩍어 제 어미와 잠자리를 바꿨다.

 

야심한 밤에 송언신이 어미를 딸로 잘못 알고 덮쳤다. 어미가

"도둑이야"

라고 소리치려고 하자 송언신은

"나는 관찰사지 도둑이 아닐세“

라고 말했다. 어미는 관찰사의 위세에 눌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일이 있은 뒤 호장이 이웃사람에게 행패를 부렸는데 이웃은

"너의 하는 일이 이와 같으니 마누라가 관찰사에게 당해도 마땅하다"

고 꾸짖었다.



묵재 홍언필(1476~1549)과 인재 홍섬(1504∼1585)은 '2대 영의정'으로 명성을 떨쳤다.

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묵재 홍언필은 특히 청빈하기로 유명했으며 자식들조차 옷을 갖추지 않고서는 만나지 않을 만큼 법도를 엄격히 지켰다.

 

아들 홍섬 역시 선조 때 영의정을 3번이나 중임하고 경서에 밝았으며 가풍을 이어받아 검소하기까지 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고금소총에는 그들의 다른 이면이 소개돼 있다.

 

홍섬은 여종들과 무분별하게 어울렸다. 한 여름날 밤 여종들이 방에 흩어져 자고 있었다. 홍섬은 알몸으로 자신의 방에서 몰래 나와 평소 눈여겨 두었던 여종을 찾기 위해 여종들의 방을 살금살금 기어다녔다.

 

아버지 홍언필이 인기척에 잠에서 깨어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아들이 장성한 줄 알았더니 이제 막 기어가는 것을 배운 모양이구나"

라고 소리쳤다. 깜짝 놀란 홍섬은 놀라 달아났다.

 

 

↑신윤복 작 이부탐춘.개가 교미하는 장면을 보면서 두 여인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간송미술관 소장.

 

‘19금'에 가까운 높은 수위의 내용도 허다하다. 어느 마을에 몹시 음탕한 여자가 살았다. 이 여자는 대물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코 큰 사람이 그것도 크다는 말을 믿고 코 큰 남자를 찾아다녔다.

 

마침 행색이 남루한 취객을 만났는데 그의 코를 보니 크기가 보통 사람의 배나 됐다. 여자는 기뻐하며 그 사내를 집으로 데려다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유혹했다. 하지만 사내의 그것은 다른 남자보다 작은 데다 정사 때에는 쾌감을 전혀 느낄 수도 없었다.

 

몸이 달아오른 여자는 자신의 중요 부위를 남자의 코에다 들이밀어 진퇴를 반복했다. 가까스로 절정에 도달한 그녀는

"코가 오히려 양물보다 낫구나"

라고 했다.

 

 

↑신윤복 작 사시장춘. 남녀 둘만 있는 방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녀가 웃음을 자아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이 트기 무섭게 여자는 남자를 집 밖으로 쫓아냈다. 남자는 허둥지둥 문을 나서는데 길가에서 사람들이 서로 그 남자의 얼굴을 보며

"미음이 어찌 온 얼굴에 가득하오. 그대는 미음을 입으로 먹지 않고 코로 마셨소"라고 했다.

두메산골에 음양의 이치를 모르는 노처녀가 살았다. 길 가던 나그네 청년이 노처녀를 보고 춘심이 동했다.

청년은 자신을 의원이라고 속이고

"낭자의 안색이 좋지 않으니 몸에 큰 병이 있을 것"

이라며 처녀의 손목을 잡아 진맥을 했다.

 

그러면서

"낭자의 몸 속에는 고름이 가득 차 있어 이를 빼주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고 했다.

"속히 치료해 달라"

는 처녀에 말에 기다렸다는 듯 그녀와 몸을 합쳤다.



관계 후 청년은 그녀에게 자신의 정액을 접시에 담아 보여주면서

"이렇게 고름이 낭자의 뱃속에 차 있었으니 조금만 늦었더라면 크게 위험했을 것"

이라고 건네고는 그 집을 속히 벗어났다.

 

처녀는 부모에게 접시에 담긴 정액을 보여주며 지나간 이야기를 하자 부모는 그녀를 크게 책망하면서 접시를 뜰 밖으로 던져버렸다. 부부가 버선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아내가 버선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었는데 너무 작아 신을 수 없었다.

 

남편은 버선을 내던지며

"당신의 재주는 기괴하구려. 마땅히 좁아야 할 건 너무 넓어서 쓸모가 없고 커야 할 건 좁아서 발에 맞지 않으니 말이오"

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가 화를 내며 대꾸했다.

"당신은 다른 줄 아시오. 길고 굵어야 할 건 작아서 쓸모가 없고 마땅히 작아야 할 발은 크기만 하지요."

육담(肉談)이 권선징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기도 한다. 시골 부자가 많은 돈을 갖고 서울의 여관에 투숙했다. 여관 주인은 그 돈을 뺏기 위해 나그네가 잠든 틈에 처에게 곁에 눕도록 했다.

 

여자는

"나그네가 강제로 방으로 끌고 가 겁간했다"

며 울고불고했다. 주인은 나그네에게

"돈을 넘기면 덮겠다"

고 했다. 나그네가 이를 거부하자 관가에서 소환했다.

 

나그네는 머리를 짜내 사또에게

"관계를 하면 양경(陽莖, 남자 성기)에 때가 끼어 있을 리 없소"

라며 자신의 양경을 꺼내 보였다. 과연 나그네의 양경은 때가 잔뜩 끼어 있고 심지어 썩은 냄새까지 났다.

사또는 여관 주인 부부를 심문해 나그네의 돈을 탐내 무고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매경 프리미엄 배한철 영남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