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고전칼럼]훈민정음을 세종이 짓지 않았다는 사람들

야촌(1) 2016. 6. 29. 11:37

훈민정음을

세종이 짓지 않았다는 사람들

 

한국고전번역원 16. 06. 29 09 : 29

 

훈민정음을 세종이짓지 않았다는 사람들 『영산김씨 대동보』는 신미(信眉, 1403~1480)대사가 한글을 창제했다고 주장한다. 집현전에 불교를 배척하는 학자들이 많았기에 세종은 한글을 오랫동안 지키고 스님을 보호하기 위해 신미(속명 김수성)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신미는 ‘충북 역사·문화인물’로도 선정됐다.

“조선 세조~세종 조의 승려로 범어에 능통해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을 담당”

했다는 이유에서다.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도 있다. 당대 최고의 산스크리트어 전문가로 세종의 총애를 받은 신미가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이라는 내용이다. 근거는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다. 신미가 쓴 『훈민정음』언해본인 『원각선종석보』는 1435년에 나왔다고 한다.

 

신미(信眉)뿐 아니다. 난계(蘭溪) 박연(朴堧, 1378~1458)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단언한 연구서도 있다.

밀양박씨 난계파 후손 작『박연과 훈민정음』이다. 세종 5년(1423) 3월 23일 문헌 연구를 시작해 9년 6월 23일 훈민정음을 창제하자는 상소를 올리고 21년 4월 24일 훈민정음 창제를 완료했으며 25년(1443) 12월 30일 훈민정음 창제를 공표했다는 일지까지 내놓는다.

 

『세종실록』의 기록과 『난계유고』의 상소문도 제시한다.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최만리의 상소에 대한 세종의 반박논리를 세종 26년 2월 20일 자 실록에서 찾아냈다. 첫째 운서를 아는 사람, 둘째 사성칠음(四聲七音)에 자모가 몇인지 아는 사람, 셋째 백성에게 훈민정음으로 된 삼강행실을 반포하자고 주장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반박논리에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의 세 가지 조건이 정확하게 표현돼 있다고 짚는다.

『율려신서』와 『홍무정운』 등 운서에 정통하고, 사성칠음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으며, 난계유고의 1번 소에서

“널리 가례와 소학, 삼강행실을 가르치고 오음정성(五音正聲)으로 풍속을 바로잡자”

면서

훈민오음정성이정민풍(訓民五音政聲以正民風)”

을 주장한 박연이 훈민정음의 진정한 창제자라고 못 박는다.

 

신미 또는 박연, 사실일까.

 

『원각선종석보』는 자체가 위작이다. 『원각선종석보』 사본의 세로줄에 판심(版心)이 없다. 옛 책에서 책장의 가운데를 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접히는 가운데 부분이다. 제목과 페이지[엽] 숫자 등이 표시된다. 이 복사본에는 아무 표시도 없는 까만 세로선 만 그어져 있다.

 

 

↑『원각선종석보』사본. 현대인에 의한 위작일 수밖에 없다.

 

『원각선종석보』가 세종대왕 당대의 책이라면 당연히 ‘권제1(卷第一)’ 또는 ‘권1(卷一)’이라고 쓰여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식 어법인 ‘제1권(第一卷)’으로 표기돼 있다. 『용비어천가』에는 ‘卷第一’, 신미 등이 교정한『능엄경언해』에도 ‘卷第一’(97장 뒷면)로 돼 있다.

 

서체의 시대도 맞지 않다. ‘정통(正統) 3년’은 1438년으로 훈민정음 창제연도인 1443년(정통 8)보다 8년이 아닌 5년이 앞선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에 나타나는 훈민정음 최초의 서체는 모음에 둥근 점인 속칭 ‘아래 아(ㆍ)’를 썼다.

 

그러다가 필기의 편의 차원에서 1447년 간행된 용비어천가에서는 ‘ㆍ’를 제외하고 둥근 점이 모두 짧은 선으로 변했다. 1459년(세조 5)의 『월인석보』에서는 둥근 점조차 변형된 고딕체가 됐다. 따라서 1459년의 나중 서체가 1438년(정통 3)에 쓰여 있는 『원각선종석보』, 그것도 복사본이 진품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목숨’은 ‘목슴’이라고 오기됐다. 세종대왕 때부터 현재까지 우리말에서 ‘목숨’의 바른 표기는 줄곧 ‘목숨’이다. 『용비어천가』,『월인석보』,『법화경』,『아미타경언해』 모두 ‘목숨’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소셔[give]’의 ‘주’자 표기도 잘못돼 있다. 모음 부분에서 짧은 세로선으로 그어져야 할 부분이 『원각선종석보』 내 다른 글자들과는 달리 ‘ㆍ’자로 잘못 표기됐다. 위작자가 정신이 없었음을 드러낸다.

 

또 ‘夭’의 독음이 어처구니없게도 한 줄 건너 다음 칸에 쓰여 있다. 첫 번째 ‘夭’의 다음 글자에는 그 독음과 전혀 상관없는 ‘애’가 적혀 있고, 바로 이어서 두 번째 ‘夭’자가 나타난다. 읽는 이들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끔 편집이 난잡하다.

 

‘요알(夭閼)’이란 말은 ‘꺾다’ 또는 ‘일찍 죽다’라는 뜻인데, 이 사본에는 ‘방울로 떨어지다’라는 뜻의 옛말 ‘처딜씨라(처디다)’가 기록돼 있다. 파탄이 여럿이다. ‘化’자 밑에 독음인 ‘화’자가 없다. 또한 ‘良’자 밑에도 꼭지 있는 동그라미(ㆁ)의 독음인 ‘량’자가 보이지 않는다.

 

『원각선종석보』 복사본의 설명문 속 모든 한자는 1448년 편찬된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따르고 있는데, 다른 한자들과 달리 ‘化’와 ‘良’자 밑에 독음이 없다. 위작 과정의 탈자들로 보인다.

 

‘習’자 밑에 세종대왕 당시의 표기음인 ‘씹’(이때의 ㅆ은 된소리가 아니라 긴소리)이 적혀있지만, 입성임을 나타내는 글자 왼쪽의 ‘점 하나’가 없다. 이 역시 위작 과정에서 저질러진 실수다. 다른 입성 글자들[閼, 毒, 惡, 覺]에는 모두 ‘한 점’의 입성 표시가 돼 있다.

 

신미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언해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분일뿐이다.

 

박연의 ‘훈민오음정성이정민풍’을 줄이면 ‘훈민정음’이 된다는 것은 견강부회다. 훈민정음의 ‘정음’이 ‘아, 설, 순, 치, 후, 반설, 반치’의 7음에 기반한 음운·언어학 용어임에 반해 ‘오음정성’은 동양 음악용어인 5음(궁상각치우)을 표현한 말이다.

 

주나라 태공망이 지은『육도(六韜)』의「용도편(龍韜篇)」이 출처다. 전쟁에서 율음(律音) 소리가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인가라는 무왕의 질문에 강태공이 답한다. “심오하도다. 왕의 질문이여! 무릇 율관은 12개가 있는데 그 요체는 5음이 있는바, 궁상각치우로 이것이 그 정성(正聲)이며 만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오음정성이 음악에 한정된 용어라는 사실은 1432년 8월 28일자 『세종실록』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황희·맹사성·권진·허조·정초 등이 아뢰기를…문헌통고(文獻通考)를 살펴보건대, 대성부(大晟府)는 일찍이 1현(絃)·3현·7현을 폐지하고 다만 5현만 보존하였다고 하니, 그것이 오음의 정성을 얻어 여러 금(琴)보다 가장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훈민오음정성이정민풍이 기재된 1번 소 자체도 그것은 음악용어임을 자백한다.

“더욱이 나라의 전례(典禮)도 바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회례(會禮)의 음악에서도 바른 거동을 보지 못하겠고, 창우(倡優)와 여악(女樂)의 진퇴나 연희에서도 삼강의 행실을 볼 수가 없습니다.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고 음악 또한 바르지 못하여 미풍양속이 그릇되게 뒤섞여 있습니다.”

 

4성 7음 28자 체계의 훈민정음 창제자는 누가 뭐래도 세종대왕이다. 해례본 정인지 서문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으로 만드셨다”,

조선왕조실록 1443년(계해, 세종25) 12월 30일자 기사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셨다”, 그리고 1444년 2월 20일 반대파인 최만리 등의 상소문 중 “

신 등이 엎드려 보옵건대, 언문을 제작하신 일이 지극히 신묘하시옵니다”로도 증명된다.

 

 

◈글쓴이 : 신동립

◈뉴시스 문화대기자

◈주요 저서

*『애국가 작사자의 비밀』, 지상사, 2015

*『귀가 따가운 남자』, 맑음, 2002

*『귀신은 있다 1·2』, 명지사, 1997

*『이래도 기자할래』, 반도기획, 1996(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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