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 이재훈 435

묘제(墓祭)의 연고존항(年高尊行)

■ 묘제(墓祭)의 연고존항(年高尊行) 묘제(墓祭)는 고조이하(高祖以下)의 조상(祖上)인 친미진조(親未盡祖) 묘제(墓祭)와 五代祖 이상(以上)인 친진조(親盡祖)의 墓祭가 있다. 그리고 시조(始祖)와 불천지위(不遷之位) 묘제가 있는데, 고조(高祖) 이하(以下)의 봉사는 그 先祖의 적장자손(嫡長子孫)인 종손(宗孫)의 지위(地位)를 승계(承繼)하여 봉사(奉祀)를 하게 된다, 시조(始祖)와 불천지위(不遷之位) 및 오대조(五代祖) 이상의 친진조(親盡祖)는 세일제(歲一祭)로 묘(墓)에서 제사(祭祀)하게 되는데, 고조(高祖)가 친진(親盡)이 되면 묘훼(廟毁)라 하여 종손(宗孫)이 없어져, 묘제(墓祭)에 참석(參席)한 그 후손(後孫)중 최존자(最尊者 : 行列이 기장 높고 高齡)가 초헌관(初獻官)이 되어 축(祝)의 主人으..

김장생(金長生)

■ 김장생(金長生) 1548(명종 3)∼1631(인조 9).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서울 출신. 할아버지는 지례현감 호(鎬)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계휘(繼輝)이며,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우참찬 영(瑛)의 딸이다. 아들이 집(集)이다. 1560년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등을 배웠고, 20세 무렵에 이이(李珥)의 문하에 들어갔다. 1578년(선조 1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고, 1581년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일로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와서 돈녕부참봉이 되었다. 그 뒤 순릉참봉(順陵參奉)과 평시서봉사(平市署奉事)를 거쳐 활인서(活人署)·사포서(司圃署)·사옹원(司饔院) 등의..

옥산 이우의 예술작품.

↑옥산 이우의 묵란도(墨蘭圖) ↑옥산 이우의 묵포도(墨葡萄) ↑옥산 이우의 국화도(菊花圖), 강릉오죽헌-강원도유형문화재 제12호 이 그림은 가로 26.5cm x 세로 30cm 크기의 종이에 그린 묵화로, 국화 한줄기가 화면에 솟아오른 단순한 구도이면서도 만발한 국화를 보는 듯 담백한 여운을 풍긴다. 옥산의 누님 인 매창의 월매도(梅窓 月梅圖)와 함께 후손인 이장희 가에 소장되어 오던 것을 1965년 에 2개로 나누어 오죽헌 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옥산 이우의 초충도(草蟲圖=고추와 여치)/크기 : 28.7×20.5cm/종이에 수묵담채 ↑옥산 이우의 초충도(草蟲圖=수박과 들쥐)/크기 : 28.7×20.5cm/종이에 수묵담채 ■ 이우(李瑀) [생졸년] : 1542년(중종 37)∼1609년(광해군 1). ..

박근혜 대통령의 선영

■ 박근혜 대통령의 선영 [소재지] 경북 구미시 상모동 산24-2 ↑↓위의 묘는 박근혜 대통령의 증조부모 묘이고 아래는 조부모 묘이다. 사진>癡叔堂 ↑박근혜 대통령의 증조부(일부당(一斧當) 박영규(朴永奎)공과 증조모 성산이씨(星山李氏) 묘. ↑박근혜 대통령 조부 박성빈(朴成彬)공과 조모 백남의(白南義)여사 묘. 백남의여사는 45세의 늦은 나이에 박정희 대통령을 낳았다한다.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 묘(서울 국립묘지) 인터넷>

경복궁 향원정(景福宮 香遠亭)

↑만추(晩秋)의 경복궁향원정(景福宮 香遠亭) 경복궁의 향원정(景福宮 香遠亭)은 1867년(고종 4)에 지어진 건축물로 원래는 건청궁(乾淸宮)과의 연결 통로로 취향교(醉香橋)란 다리를 놓았는데, 이 다리는 6·25전쟁 때 파괴되고 현재의 다리는 1953년 남쪽에 새로 놓은 것이다. 정자는 정육각형으로 장대석으로 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의 초석을 놓고 그 위에 1·2층을 관통하는 육각기둥을 세웠다. 1층에는 평난간을, 2층에는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가 있다. 겹처마이며,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지붕의 중앙에 절병통(節甁桶)을 얹어 치장했다. 그리고 향원정 연못은 1894년(고종 31)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참석한 가운데 외국인 선교사들의 피겨스케이팅 시연회가 열렸떤 장소로 우리나라 최초의 스케이트 장소인 셈이다.

송강 정철 묘(松江 鄭澈 墓)

■송강 정철 묘(松江 鄭澈 墓) / 충북기념물 제106호 ↑앞에 보이는 묘는 송강 정철선생의 아들 묘이고 뒤에 있는 묘가 송강(松江)선생 묘이다. ↑ 송강(松江) 정철(鄭澈)선생 묘이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묘비(墓碑)이다. ●정철(鄭澈) 정철[鄭澈 : 1536년(중종 31)~1593년(선조 26)]은 조선 중기의 문인, 정치가로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돈령부판관 정유침(鄭惟沈)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묘는 원래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신원리 송강마을의 부친의 묘 아래 소재하였는데, 우연히 우암선생이 진천을 지날때,당시 진천현감으로 있던 송강의 후손 정양(鄭瀁)으로 부터 고양의 송강산소가 물이난다는 풍수설이 있어 걱정된다는 말을 전해들은 송시열이 ..

한·중 수교 20년 - 사대주의 산맥을 넘어 ② 익재 이제현

‘팍스 몽골리카’시대, 그의 시는 고려를 지키려는 절규였다. [중앙일보]입력 2012.09.29 00:46 / 수정 2012.09.29 00:46 한·중 수교 20년 - 사대주의 산맥을 넘어 ② 익재 이제현 ▲중국 삼국시대 유비와 제갈량이 넘나들었던 험준한 관문인 쓰촨성 검문각(劍門閣). 여기서 당 수도가 있던 장안(지금은 시안)으로 이어지는 길이 ‘촉도’다.절벽에 구멍을 내 나무를 박은뒤 그 위에 길을 낸잔도(棧道)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이제현이 충선왕의 명령을 따라 오간 길이다. 지금이야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북경·北京)에 가는 데 한 시간 남짓이 걸릴 뿐이다. 그러나 육로를 따라 개성에서 베이징으로 1600여㎞의 길을 가야 했던 고려와 조선 때는 무려 50일 정도 걸렸다. 길의 험난함을 별도로 계산..

원나라 수도에 세운 만권당은 고려 자주를 위한 외교사령탑.

원나라 수도에 세운 만권당은 고려 자주를 위한 외교사령탑 [중앙일보] 입력 2012.09.15 00:14 / 수정 2012.09.15 00:34 한·중 수교 20년 - 사대주의 산맥을 넘어 ① 고려 충선왕 ↑700여 년 전 고려 26대 충선왕은 원나라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만권당을 세워 놓고 쓰러져 가는 고려를 살리기 위한 힘겨운 외교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만권당이 있 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베이징 위위 안탄(玉淵潭) 공원의 전경. 사대(事大)의 겉뜻은 ‘큰 나라 섬김’이지만 그 속내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행하는 외교적 교섭이다. 한반도는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에 있다. 따라서 사대는 역사 속의 우리에게 늘 따르는 외교적 형식일 수도 있었다. 중국과의 수교 20주년 특집으로 그 사대의 고달픔 속..

금관의 장식품은 무엇을 뜻할까?

금관의 장식품은 무엇을 뜻할까? 금관을 비롯한 황금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곳은 신라 1000년 역사 중에서도 김알지의 후예들인 김씨 마립간들이 통치하던 5~6세기의 적석목곽분이다. 형태는 크게 외관과 내관으로 구분하는데, 외관은 신비로울만치 화려하다. 한자 ‘산’(山)자(‘出’자라고도 함) 3~4개를 위에서 아래로 붙여놓고(세움장식) 그 좌우에 사슴뿔 모양의 장식가지를 세워 ‘산’자와 함께 금관의 골격을 이룬다. 거기에 곡옥(곱은옥)이나 영락(瓔珞, 달개장식), 새의 날개 같은 장식이 달려 있어 생동감이 넘친다. 이러한 형태의 관을 수지녹각형관(樹枝角形冠)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주변 지역에서는 유사품을 찾아볼 수 없다. 금관의 무게를 따져보면 1Kg이 넘는다. 평상시에 이런 금관을 쓰고 다닐 수 있었..

좋아하고 미워함에 대하여[愛惡箴],

■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어진 사람인가 좋은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하면 기뻐할 일이요, 좋지 않은 사람이 나를 좋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기뻐할 일이다. 人而人吾 則可喜也 不人而不人吾 則亦可喜也(인이인오 즉가희야 불인이불인오 즉역가희야) 고려 말의 문신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1309(충선왕 복위 1) ~ 1385(우왕 11)』의 《제정집(霽亭集)》에 실린 〈애오잠 병서(愛惡箴幷序)〉중 일부를 번역한 글이다. 저자는 유비자(有非子)와 무시옹(無是翁)의 문답을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남들의 평가를 바라보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비자가 무시옹에게 “옹은 어째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 대접을 받고,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 대접을 못 받습니까?”라고 묻자, 무시옹은 다음과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