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 이재훈 435

결성장씨(結城張氏)

■ 결성 장씨(結城 張氏) 결성 장씨(結城 張氏)는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장갑(張甲)은 결성현(結城縣)의 호장(戶長)이었으며, 고려 말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역임한 장하(張夏)는 장갑의 증손이다. ●인구 1985년 4,758가구 19,432명 2000년 8,708가구 21,068명 ●인물 ◇장하(張夏) : 장용문(張用文)의 아들이다.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363년(공민왕 12) 전의주부 (典儀注簿)로서 2등공신에 올랐다. 1372년 신돈(辛旽)이 제거된 뒤 이보림(李寶林) 등과 함께 간관으로 있으면서 신돈 의 일당인 김문현(金文鉉)을 탄핵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378년(우왕 4) 밀직부사에 올랐으며, 1381년 가뭄이 무척 심하..

조선시대 전라감영

■ 조선의 지방관아(地方官衙)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은 전국을 8도(道)로 나누고 그 아래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두었습니다. 전주(全州)는 전주부(全州府)의 소속으로 부윤(府尹)이 고을을 다스렸지만, 전라감사[全羅監司=관찰사(觀察使)/오늘날 도지사]가 전주부윤을 겸했습니다. 그러나 관찰사는 전라도 전체를 순행하며 행정을 감독했기 때문에 실제 전주부의 행정업무는 중앙에서 파견된 판관(判官-종5품)이 담당하였고. 판관이 관찰사의 지휘를 받아 감영에서 관찰사를 대리하여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전주부(全州府)’라고 하면, 지금의 전주시청을 말하는 것이고, 동헌(東軒)은 고을의 수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주의 동헌인 풍락헌(豊樂軒)은 오늘날 전주시장의 집무실에 해당 하는 곳입..

석곡 이규준(李圭晙,1855~ 1923)

↑36世 석곡 이규준 선생 영정 경주이씨 익재공 후 판윤공파 ↑이규준선생 간찰/크기 : 40 × 24cm ■ 석곡 이규준(石谷 李圭晙), [생졸년] : 1855년(철종 6)~1923년 /향년 68세 자는 숙현(叔玄), 호는 석곡(石谷). 본관은 경주(慶州)로 고려 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선생의 후손으로 고조(高祖)는 이름이 규손(圭遜)이고 수직(壽職) 으로 가선(嘉善)의 품계를 받았고, 증조(曾祖)의 휘(諱)는 복원(福元)이니 또한 가선(嘉善)의 품계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이름이 진욱(進旭)이시고, 아버지는 억영(億榮),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공(公)은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동해면 임곡리(林谷里)에서 출생하여 이웃의 석리(石里)에 옮겨 살았다. 묘소는 포항시 장기면 죽정리 화주산에 있..

이보림(李寶林),

■ 제용재(濟用財) 고려 이보림(李寶林,1337년(추정) ~1385년(우왕 11)이 남원부사(南原府使)로 있을 때의 일이다. 새로 제용재(濟用財)를 설치해서 여러 가지 비용을 지급하여 함부로 백성들로부터 비용을징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니, 이색(李穡))이 후세에 오래 전하고자 그에 대한 기문을 썼다. “매양 사자(使者)가 부세(賦稅)를 독촉하는 것이 급해 고을에서 미처 마련하지 못하면 빌려다가 충당을 하니, 백성들은 더러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이보림은 이를 우려하였는데, 마침 포탈한 세를 징수해서 포(布) 약간을 얻고, 또 노비의 송사를 판결해서 포 약간을 얻어 도합 650필이 되었다. 또 전에 둔전(屯田)이 있어 아전들의 농간에 맡겨져 있었는데 그가 몸소 그 둔전을 관리하니, 백성들이 감히 속이지 못하..

유건(儒巾)과 도포(道袍)

■ 유건(儒巾)과 도포(道袍) ↑유건(儒巾) 1.검은 베로 만든 유생의 예관(禮冠). 2.민자건(民字巾) 또는 민자관(民字冠), 치포건이라고도 한다. 유건(儒巾)은 학문을하는 유생들의 전용물로, 외출 할 때에는 도포, 창의, 중치막, 혹은 두루마기에 유건(儒巾)을 병용하였다. 3.유건(儒巾)의 유래 관학유생(館學儒生)의 관(冠)이 근본 정제(定制)가 없어 추계 윤효손(楸溪 尹孝孫) 선생이 전사(前士) 후민 (後 民)의 의(義)포 유건(儒巾)의 제도를 만들어 관유(館儒)로부터 각 지방 향교까지 500여년간 사용하여왔다. ◇참고문헌 : 추계선생실기[楸溪先生實記(奎11078, 奎12644)], 尹洛鉉(朝鮮)編. ◇윤효손(尹孝孫, 1431~1503) 조선 전기의 단종(端宗)-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세월이 가면-박인희

세월이 가면 – 박인희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 황진이(黃眞伊)

詩題 :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달빛어린 뜰에는 오동잎 지고)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달빛어린 뜰에는 오동잎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서리속에 들국화 시들어 가네.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누대는 높아서 하늘에 닿고 相盞醉無限(상잔취무한)/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구나.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차가운 물소리는 거문고 소리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피리에 감겨드는 그윽한 매화 향기 今日相別後(금일상별후)/오늘 우리가 헤어진 후면 憶君碧波長(억군벽파장)/그리움은 강물처럼 한이 없으리. 황진이(黃眞伊) ↑월하정인(月下情人) - 신윤복의 1805년 작

오촌공. 벽오공. 정경부인 고령신씨 시제봉행

↑증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성균진사 이대건선생(左)과 정경부인 안동김씨 묘(右) ↑형조판서 벽오 이시발선생(좌)과 정경부인 여흥민씨 묘(우)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6-11 ↑충익공 벽오 이시발선생 묘표. ↑벽오 이시발선생 계배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표.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 문인석 ↑정경부인 고령신씨 망주석 ↑쌍오비각(雙梧碑閣) : 충청북북 지방 유형문화재 제142호(1984년 12월 31일 지정) 좌측비가 오촌 이대건 신도비이고 우측은 아들 벽오 이시발 신도비이다.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2-11번지 ↑형조판서 증 영의증 충익공 벽오 이시발(1569~1626)선생 시제기념촬영(2016. 11. 04(금요일) [경주이씨 종보 제301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