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지방관아(地方官衙)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은 전국을 8도(道)로 나누고 그 아래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두었습니다. 전주(全州)는 전주부(全州府)의 소속으로 부윤(府尹)이 고을을 다스렸지만, 전라감사[全羅監司=관찰사(觀察使)/오늘날 도지사]가 전주부윤을 겸했습니다.
그러나 관찰사는 전라도 전체를 순행하며 행정을 감독했기 때문에 실제 전주부의 행정업무는 중앙에서 파견된 판관(判官-종5품)이 담당하였고. 판관이 관찰사의 지휘를 받아 감영에서 관찰사를 대리하여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전주부(全州府)’라고 하면, 지금의 전주시청을 말하는 것이고, 동헌(東軒)은 고을의 수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주의 동헌인 풍락헌(豊樂軒)은 오늘날 전주시장의 집무실에 해당 하는 곳입니다.
당시 전주부(全州府)의 공간 면적은 오늘날 전주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소재하는 구역과 구 전북은행 본점이 있는 구역을 포함한 약 7천여 평이었습니다. 전주부 실록에 의하면 전주부의 관아인 풍락헌(豊樂軒)은 전주부 설치 때부터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나 그 후 1758년(영조 34) 전주판관 서노수(徐魯修)가 다시 세웠고, 1890년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 판관 민치준(閔致駿)이 중창하고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주 부를 폐하고 전주 군이 설치되어 전주군청 청사로 사용하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 전주군청을 새로 신축하기 위하여 동년 4월 철거 매각하여 1935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구 태실리) 전주류씨 재실로 이축 사용되다가 다시 전주류씨의 기증으로 2011년 4월 14일 전주향교 옆에 이전 복원되었습니다.
풍락헌(豊樂軒)이란 '풍년을 즐거워하는 집'이라는 뜻이고. 음순당(飮醇堂)이란 '임금의 덕이 순수한 술을 마신 것처럼 모르는 사이에 취해오는 관아'라는 뜻이 됩니다.
↑조선시대 전주는 전라도를 관할하는 감영이 있었던 곳으로 전라도를 상징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광여도(廣輿圖)에서 본 전주읍성은 4각형의 평지성이며 4대문이 있고 모두 옹성이
있는데 ㄱ자로된 옹성으로 성문의 경우 모두 홍예로 되어져 있습니다. 전주읍성 안에 담장
이 쳐진 부분이 경기 전 모습입니다.
↑1872년의 지방지에 나타난 광여도(廣輿圖) 모습으로 사각형이지만 둥근 형태의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치성까지 잘 표현하였으며 객사를 비롯하여 경기 전은 물론 각종 관아
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풍남문의 경우 2층 누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물 제1586호인 18세기에 그려진 전주지역 지도입니다.
위의 1872년에 그려진 지방지보다 더 자세하게 그려 놓았으며 봄에 핀 복사꽃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전주읍성은 긴 사각형 모습의 읍성이며 모서리가 있는 부분에는 둥글게 축성되어져 있고, 서남체성은 둥글지 않고 사선으로 된 체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전주지도의 경우 나무까지 심은 형태를 알 수 있게 그려져 있으며 북문을 제외하고는 옹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광여도, 여지도,지승지도,해동지도에 그려져 있는 각 성문의 옹성과 달리 북문만 그려 놓은 것으로 보아 그릴 당시 옹성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 전주지도의 디테일로 훗날 전주읍성을 복원할 때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호남을 대표하는 감영소재지 답께 성문으로 연결되는 도로 도 모두 직선으로 연결되어있어 조선시대의 도시계획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료가치가 높은 지도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전주 시내모습.
↑1950년대 전주시장 전경
↑전라감영의 옛 선화당(宣化堂) 모습/선화당은 관찰사가 사무를 보던곳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전주읍성의 풍남문으로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고 쓰여있다.
↑전라감영(全羅監營)의 외삼문(外三門)인 포정루(布政樓)의 모습이 보이고 저 멀리 풍남문
(豐南門)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포정루 앞 공간에 선정비가 많이 보입니다. 전주감영
은 일제강점기 때 허물고 전주초등학교의 전신인 전주소학교로 바뀌었습니다.
↑1920년대 전후 촬영으로 추정되는데, 음순당(飮醇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전면
7칸의 팔작지붕, 좌우 1칸은 중앙 5칸에 비해 기둥 사이가 약간 좁습니다.
사진에는 양복을 입은 사람 1명과 하얀 두루마기 차림을 한 5명과 바지저고리 차림의 2명
등 총 8명의 모습이 보인다. 음순당이란 편액은 1901년 당시 전주군수였던 취송(醉松) 이
삼응(李參應)이 제작한 것으로 당대 서예가인 조주승[趙周昇, 1854년(철종 5)~1935년]
이 썼습니다.
↑풍낙헌(豊樂軒)은 일제강점기 때의 옛 사진과 같이 2011년 4월 14일 복원 준공식을 가졌다.
↑전라감영 복원 조감도/사진>전주시
[자료출처]
◇고지도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일제강점기 사진 : 일제강점기 자료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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