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한국의전통문화

유건(儒巾)과 도포(道袍)

야촌(1) 2017. 9. 30. 23:30

유건(儒巾)과 도포(道袍)

 

↑유건(儒巾)

 

 

1.검은 베로 만든 유생의 예관(禮冠).

2.민자건(民字巾) 또는 민자관(民字冠), 치포건이라고도 한다. 유건(儒巾)은 학문을하는 유생들의 전용물로, 외출

   할 때에는 도포, 창의, 중치막, 혹은 두루마기에 유건(儒巾)을 병용하였다.
 
3.유건(儒巾)의 유래
   관학유생(館學儒生)의 관(冠)이 근본 정제(定制)가 없어 추계 윤효손(楸溪 尹孝
孫) 선생이 전사(前士) 후민 (後

  民)의 의(義)포 유건(儒巾)의 제도를 만들어 관유(館儒)로부터 각 지방 향교까지 500여년간 사용하여왔다.
 
◇참고문헌 : 추계선생실기[楸溪先生實記(奎11078, 奎12644)], 尹洛鉉(朝鮮)編.


◇윤효손(尹孝孫, 1431~1503)

    조선 전기의 단종(端宗)-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원(南原). 경상도관찰사 한성부우윤 ·대사헌

    을 지냈다. 세조(世祖)와 성종(成宗) 때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고, 《경국대전》 《오례의주》를 수찬

    하였으며, 후에《성종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근래 성균관에서 유건(儒巾)의 전 후를 도착(倒錯 : 거꾸러) 사용하고 있음
   사인(士人)· 성균관학생· 생원 등의 유생들이 도포나 창의와 함께 쓰던 건으로, 민자건(民字巾) 또는 민자관(民

   字冠) 이라고도 한다. 평상시나 향교· 서원에서, 또는 제사에 참석할 때 쓰던 건이다.


  검은 베나 모시· 무명 등으로 만들며, 위쪽 좌우에 귀가 나 있고 갓끈처럼 끈을 달아 턱에 매도록 되어 있다.

  뒷면은 반듯하게 서서 굽혀지지 않게 하고, 위를 조금 숙여서 앞면이 되도록 하면 남은 폭이 양쪽으로 벌어져 귀가

  된다. 이 양쪽 귀를 반쯤 접어 판판하게 하면 '민(民)'자 모양이 된다.


2.유생들이 쓰던 두건. 민자건(民字巾)은. 조선시대부터 명(明)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생원·학생·사인(士人) 등이

   착용하였다.《연려실기술별집(燃藜室記述別集)》에 의하면 중국의 유건은 죽결(竹結)하여 치포(緇布)로 싸거

   나 종이로 배접하였고 칠을  하기도 하였으며, 과거인(科擧人)과 무학생(武學生)은 유건에 흑단령(黑團領)을 착

   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건은 죽결이 아니라 대개 검은 베를 접어서 만들었으며, 후대로 오면서 유생들은 관(館)에서

   만 유건을 쓰고,  길에서는 갓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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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포(道袍)

 

한국 남성의 통상 예복으로 입던 겉옷을 이르는 말이다. 깃은 두루마기의 깃과 같고 동정이 있다.

소매는 넓은 두리 소매이고, 섶과 무가 있으며, 뒷길의 중심선이 진동선부터 틔어 있다.

 

옷감은 명주· 비단· 공단· 모시· 생모시 ·삼베· 광목 등이 사용되고, 색상은 백색· 초록색· 청색· 다홍색· 미색· 등으로 다양하고. 임진왜란 이후 입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도포(道袍)는 조선시대에 상류계층에서 주로 입었으나, 말기에 가서는 하류계층에서도 일반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