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村 李在薰 102

고령군 쌍림면 합가2리(청풍공 산소)

■ 청풍공 이완희(淸風公 李完熙) [생졸년] 1906. 12. 08 ~ 1991. 12. 10 / 壽86歲 -------------------------------------------------------------------------------------------------------------------------------------- 공(公)의 초명(初名)은 노석(魯碩), 자(字)는 자근(子根), 호(號)는 청풍(淸風), 성(性)은 경주이씨(慶州李氏)다. 고려(高麗) 말 문충공(文忠公)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후손(後孫)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때,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우고, 1624년(인조 2) 이괄((李 适)의 난(亂)을 평정한 형조판서(刑曹判書) 벽오 이시발(碧梧 李時發)의 12..

붕당론(朋黨論) - 구양수(歐陽脩)

■ 붕당론(朋黨論) ◇구양수(歐陽脩 : 1007~1072) -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 겸 문인. ↑구양수 화상(歐陽脩 畵像) 신(臣)은 듣기에, 붕당(朋黨)이라는 말이 옛 부터 있다고 들었는데, 오직 임금이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분별할 따름입니다. 큰 군자는 군자와 더불어 도(道)를 함께 함으로서 붕(朋)을 만들고, 소인은 소인과 더불어 이를 함께 함으로서 붕(朋)을 만들고 하니, 이는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나 신(臣)은 생각건대 소인은 붕(朋)이 없고, 오직 군자라야 그것이 있다고 여기오니 그 까닭은? 소인은 좋아하는 것이 이익과 녹봉(祿俸)이고, 탐내는 것은 재물과 돈(화폐)입니다. 그 이로움이 같을 때를 당해서 잠시 서로 끌어들여 당(黨)을 만들어 붕(朋)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

이필완(李弼完)

■ 이필완(李弼完) [생졸년] 1697년(숙종 23) ∼ 1785년(정조 9). ------------------------------------------------------------------------------------------------------------------------------------- 조선후기의 효자로. 본관은 경주(慶州), 제주도(濟州道) 한림읍(翰林邑) 대림리(大林里)에서 태어났다.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제주(濟州) 기관(記官)을 지냈으며 백세가 되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 아버지(李世薰)의 제사를 예법에 따라 정성껏 지내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앞에 움막을 짓고 제사를 모셨다. 어머니가 생전에 소고기를 드시지 아니하여 제사에서도 꼭 꿩과 ..

일본 덴리대(天理大) 도서관 소장 익재공 존영.

■ 일본 천리대 도서관 소장분 익재공 존영. ↑일본 나라현 천리시의 天理大도서관에 소장된 익재공 진영(益齋公 眞影)이다. ↑경재부인진영(卿宰夫人眞影) 부인(婦人)은 陽村 權近(1352(공민왕 1)~1409(태종 9)의 配位로 아버지는 경주이씨 19世 석탄 이존오(石灘 李存吾)이다. 화상(畫像)의 오른쪽 상단에 경재부인 존오女(卿宰夫人 存吾 女)라고 적혀있다. ↑송암 부인진영(松菴夫人眞影) 복흥군(復興君 : 개국 2등공신) 배천인 조반(白川人 趙胖 : 1341년(충혜왕 복위 2)∼1401년(태종 1)의 배위(配位)로 아버지는 경주이씨 19世 사온서직장 이양오(司醞署 直長 李養吾)로 석탄 존오(石灘 存吾)의 형이다. 부인(婦人)은 남편을 잘 내조하고, 3남 3녀를 훌륭하게 잘 키워 현모양처의 표상이 되었다.

제정선생 문집(霽亭先生文集) 해제(解題)

■ 제정집(霽亭集) 해제(解題) 형태서지 권수제 霽亭先生文集 판심제 霽亭先生文集 간종 목판본 간행년 1836年刊 권책 4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2.5×17.2(㎝) 어미 上下二葉花紋魚尾 소장처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만송문고 소장도서번호 D1-A284B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3 저자 성명 이달충(李達衷) 생년 1309년(고려 충선왕 1) 몰년 1385년(우왕 11) 초명 達中 자 止中, 仲權 호 霽亭 본관 慶州 시호 文靖 특기사항 金九容 등과 교유 가계도 李世基(密直副使) 18世 │ └ --------李蒨(僉議參理) 17世 ∥ 朴氏(延昌郡夫人) │ └ --------李達衷(이달충) 18世 ∥ 橫城趙氏(政堂文學 趙文瑾의 女) ∥ l ∥ ㅣ--------이준[李竴(密直戶部典書)]19世 ∥ ㅣ ∥ ..

경상도 안의(安義)의 유학(幼學) 전학순(田鶴淳)의 상소문

■ 의복 제도의 개편을 부강의 수단으로 삼지 말 것을 청하는 경상도 안의(安義)의 유학(幼學) 전학순(田學淳) 상소문 경상도 안의(安義)의 유학(幼學) 전학순(田鶴淳)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듣자하니 천 사람이 ‘예예’ 하는 것이 선비 한 사람이 곧은 말 하는 것만 못하다 하였습니다. 신은 먼 지방의 천한 몸으로 비록 감히 선비로 자처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 밝으신 성상의 세상에 태어나 유현(儒賢)의 문하에서 교유할 수 있었으므로 충효의 도리와 《춘추》의 의리에 대해 대강이나마 알기에, 항상 스스로 신하로 태어나서 유독 하루도 임금에게 나아가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서 늙어 죽는다고 생각하니, 지극한 통한이 마음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삼가 듣자하니, 전하께서 사방의 일을..

이상설의 생애와 민족운동

■ 이상설의 생애와 민족운동 2009206012 이 용철 I. 머리말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 : 1870~1917)은 한말(韓末)~일제강점초기(日帝强占初期)의 대표적 민족운동가이다. 그는 일생을 민족의 자주권 확보와 독립운동에 바친 인물로 1904년 6월「황무지개척권요구계약안(荒蕪地開拓權要求契約案)」에 반대하는 상소를 시작으로 1905년의 을사조약 파기를 위한 상소, 1906년의 서전서숙(瑞甸書塾) 창설, 1907년의 헤이그 특사 이후 191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가 행한 일련의 활동은 자체로 민족운동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이 시기 한국인의 자주민족운동의 양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중요성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미 정인보(鄭..

서종태(徐宗泰)

■ 서종태(徐宗泰) 3대(代) 재상[영의정]을 배출한 가문. [생졸년] 1652년(효종 3)~1719년(숙종 45) [문과] 숙종(肅宗) 6년(1680) 경신(庚申) 별시(別試) 을과(乙科) 2[探花郞]위(3/20) [진사] 숙종(肅宗) 1년(1675)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44위(74/100) [생원] 숙종(肅宗) 1년(1675)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1등(一等) 1[壯元]위(1/100)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

삼사당(三思堂)

■ 삼사당(三思堂)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고려 말기의 학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이제현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 역옹(櫟翁), 시호는 문충(文忠)으로. 15세 때인 1301년(충렬왕 27) 성균시와 문과에 장원하고. 그뒤 예문춘추관, 성균악정, 정당문학 등을 지냈다. 1334년 중국 원(元)나라에 가서 조맹부 등과 고전을 연구하였다. 당대의 명문장가였고, 정주학(程朱學)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조맹부의 서체를 도입하여 유행시키는 등 이름을 떨쳤다. 삼사당(三思堂)은 1740년(영조 16) 후손들이 양각산(陽角山) 아래에 사당을 건립하고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영정을 모시고 ..

익재 이제현의 사회개혁 <1>

■ 성학목민(聖學牧民)으로 부국부민(富國富民)을 추구 역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빨리 깨우치지 않거나,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교훈으로 배우는 데 실패한 국가나 민족은 역사가 절대 가지 말라고 저어하는 그 어두운 질곡의 터널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는 한심한 운명에 처하고 만다. 「맹자(孟子)의 인정(仁政)은 반드시 경계(經界)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의 정신문명과 문화의식에 찬란한 창조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흐르게 한 을 스스로 박잡(駁雜)한 글로 ‘열매 없는 피' 같은 잡물이라며 ‘인간적 겸손'을 피력한 영원한 고려의 충신이자 지식창조자였던 익재 이제현은 몽고 지배에서 무너져 가던 고려를 혁신하고자 정치와 학문을 실재적으로 융합했다. 그래서 그는 정주학(程朱學)을 기초로 한 ‘제왕학'을 써서 자신의 주..

■ 기타/칼 럼 201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