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村 李在薰 102

전주류씨 연원(全州柳氏 淵源)

●전주류씨 연원(全州柳氏 淵源) 1652년(효종 3)에 최초로 간행한 전주류씨 임진보(壬辰譜)의 기록에 의하면, 시조(始祖) 는 문화류씨로 부터의 분관설이 기록되어 있으나 1876년(고종 13)에 4번째로 간행한 "병자보(丙子譜)"에는 "문화류씨분관설(文化柳氏分貫說)"의 잘못을 논증한 "전주류씨보계변증(全州 柳氏譜系辨證)"을 수록하고 있다. 이 문헌에 의하면 시조 류습(柳濕) 이전에도 전주류씨가 있기 때문에 전주류씨는 문화류씨로 부터 분관(分貫)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려 광종23 년(972년) 문과에 합격한 류방헌(柳邦憲. 944년(혜종 1)∼1009년(현종 즉위). 후에 국자감시에 합격한 류광식(柳光植, 미상∼1221년(고려 고종 8)은 전주류씨이며, 또한 문화류씨 시조와 같은 시대의 ..

북한산 둘레길 역사탐방

북한산 둘레길 역사탐방 3월 3일 주말엔 참 오랜만에 친구 셋이서 북한산 둘레길 15km 역사탐방 조깅을 했습니다. 하산후 파전과 생두부 놓고 막걸리 한잔했는데, 얼마나 달콤하고 감미롭던지 혀에 달라 붙었습니다. 다음 주말엔 어제 하산지점에서 다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무리를했는지 오늘은 종일 잠만 잤습니다. ㅎㅎㅎ 휴일저녁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경천군 이해룡 송금물침비' 비의 전면에는 경천군 사패정계내 송금물침비(慶川君 賜牌定界內 松禁勿侵碑)란 각자가 세겨져 있다. 후면에는 萬曆四十二年 甲寅十月(만력 42년 갑인 10월)라는 기록으로 보아 1614년에 새워진 비 임을 알 수 있다. 이비는 6백년 전 조선시대의 자연보호 정책을 엿볼 수 있는 비석으로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되 있으며, 서울시..

■ 기타/산 행 2012.03.04

둔촌 이집선생 묘(遁村李集先生墓)

■ 둔촌 이집선생 묘(遁村李集先生墓) (성남시 향토유적 제7호) ↑둔촌 이집선생 묘(遁村李集先生墓) ↑둔촌 이집선생 묘 후경(後景) ↑상단 묘역이 둔촌(遁村)선생 묘역이고, 아래는 선생의 장손으로, 지직(之直)의 장자(長子) 장손(李長孫) 묘이다. ↑광주이씨(廣州李氏)의 고당(古唐)과 재실(齋室=追慕齋) 성남시 향토유적 제7호인 성남시 하대원동 산3-1, 산7-1, 산8-1, 산18, 산3-33 일대의 광주이씨(廣州李氏) 묘역은 둔촌(遁村) 이집『李集, 1327(충숙왕 14) ~ 1387(우왕 13)』선생 이하 그의 자손들의 묘역으로, 각 인물들의 사적(史蹟)과 함께 조선 전기 묘역으로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성남시 지정 향토 유적 제7호이다. 묘역중 하대원동 산3-1번지에는 둔촌(遁村)선생의 아들로 포..

李之直先生 墓/廣州人

■ 형조참의 탄천 이지직 선생 묘 (刑曹參議 炭川 李之直先生 墓) 생몰년 : 1354(공민왕 3)~1419(세종 1)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정치적 격변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백평(伯平), 호는 탄천(炭川)이다. 아버지는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이집(李集)이다. 1380년(우왕 6) 전구서승(典廐署丞)으로 과거에 2등으로 급제하고, 한림, 교리를 거쳐 관동과 호서지방의 관찰사(觀察使-從二品)를 지냈다. 1398년(태조 7)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從三品) 재임시 소도(昭悼-태조의 8남 방석의 호로, 제1차 왕자의 난을 말함)의 변란이 있자, 이를 극렬히 간하다 화를 입었다. 이때 태종 이방원(李芳遠)과 변춘정(卞春亭)이 그를 강력히 변호하여 금고(禁錮)의 처벌만 받게 되었다. 이후..

이해룡(李海龍)

■ 27世 경천군 이해룡(慶川君 李海龍) 1546(명종 1)-1618(광해군 10)., 조선중기의 서예가. 본관은 경주(慶州). 제정 이달충(霽亭 李達衷)의 9대손으로 자는 해수(海叟), 호는 북악(北嶽), 1588년(선조 21)에 통신정사(通信正使)를 맡은 황윤길(黃允吉)과 부사(副使) 김성일(金誠一)을 따라 통신사의 사자관(寫字官)을 수행하였고, 임진왜란 중에는 중국에 대한 원군(援軍) 요청 및 일본과의 강화회담과정에서 역관(譯官)으로 활약하였다. 이처럼 외교일선에서 활약한 공적을 인정 받아 1595년(선조 28)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從二品)에 이르렀고 경천군(慶川君)에 봉해졌다. 특히 해서(楷書)에 뛰어났으며, 당시의 대가들로부터 한석봉(韓石峰)에 필적하는 명필로 격찬을 받았고. 금석문으로 사..

김상철(金尙喆)

■ 김상철(金尙喆) [문과] 영조(英祖) 12년(1736) 병진(丙辰) 정시(庭試) 을과(乙科) 2위/합격연령 25歲. [진사시] 영조(英祖) 9년(1733) 계축(癸丑) 식년시(式年試) 식년진사 3등(三等) 65위/합격연령 22歲. ---------------------------------------------------------------------------------------------------------------------------------------------------------------- 1712(숙종 38)∼1791(정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사보(士保), 호는 화서(華西). 득원(得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주(弘柱)이고, 아버지는 판..

영의정 상진 묘(領議政 尙震 墓)

■ 상진(尙震) 1493(성종 24)~1564 조선중기의 문신. 자 기부(起夫), 호 송현(松峴)·범허재(泛虛齋)·향일당(嚮日堂), 시호 성안(成安). 본관은 목천(木川)이다.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사관(史官)이 되었으며, 1526년 예조좌랑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8년 필선(弼善)이 된 뒤 집의(執義)·응교(應敎) 등을 거쳐 1533년 대사간에 올랐다. 1535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어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병조판서 등을 지내고 우찬성(右贊成)·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가 되었으며, 1544년 중종이 죽자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그후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내고 우의정·좌의정을 ..

영의정 김전선생 묘-연안김씨

■ 조선 중종때 영의정을 지낸 충정공(忠貞公) 나헌(懶軒) 김전(金銓)의 묘. ○경기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12호이다.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122-9 나헌 김전선생 묘(懶軒 金銓先生 墓)는 고양시 원흥동 송현마을의 원흥교회 뒤편 절골 골짜기에 남향으로 위치해 있다. 상석에는 광무 10년(1906) 새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 1쌍식 배치되어있으며, 단 상석, 향로석, 문인석은 후손들이 최근에 세운것이고. 묘소의 우측 망주석 뒤편에 신도비가 있습니다. 신도비는 장방형의 화강암 비좌와, 비신, 이수로 갖추고 있는데, 전자엔「김충정공신도비(金忠貞共神道碑)」라고 새겨져있고, 비문은 영의정 신흠(申欽)이 짓고, 전서..

김천의 경주이씨

■ 김천의 경주이씨 신라 개국 초 부터 경주를 중심으로 고위 문무반을 배출해온 경주이씨 가문은 31世에 이르러 이우배와 이영배 형제가 조선 숙종때, 안동에서 김천 갑문면 구야리로 입향하였다. 이우배의 증손인 34世 이경동(李鏡東)이 갑문면 구야리에서 어모면 덕마리로 이거하고 이영배의 후손 이선기(李善奇)가 갑문면 구야리에서 도명리로 이거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김천시사』에 따르면 김천 입향조 이우배의 후손들이 김천시 갑문면 구야리, 개령면 남전리, 어모면 옥률리와 덕마리 등에 집거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영배의 후손들은 갑문면 도명리에 주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갑문면 구야리에 40가구, 도명리에 21가구가 거주아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조선 영조때 입향한 월성군파 후손들도 아포읍 의..

박수량 백비(朴守良 白碑) 이야기

■ 박수량 백비(朴守良 白碑) 이야기 전라남도 장성(長城)은 산이 깊고 물이 맑아 옛날에는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고장으로, 조선의 전기 문신인 조종생(趙從生)은 장성(長城)을 일컬어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굽이쳐 스스로 하늘을 이루었다(山回水曲 自天成)"라고 했고, 암행어사 박문수는 장성은 산수가 좋기로는 조선제일의 고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성의 백양사(白羊寺)에는 대한 8경 중 일경이 있으며 물이 좋기로는 오동촌(梧桐村)의 방울샘(鈴泉), 옥정약수(玉井藥水), 청류암(淸流庵)의 남천감로(南泉甘露)와 같은 약수터가 있고, 누각과 정자도 많은 학자의 고장 장성을 선비들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자랑하며 살아 왔다. 이와 같이 산수 좋은 장성은 풍수지리적으로도 천혜의 길지로써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