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村 李在薰 102

대구서씨세계도(大丘徐氏世界圖)

작성일 : 2015. 12. 13(일) 대구서씨세계도(大丘徐氏世界圖) 1世 한(閈) ㅣ 2世 ○ ㅣ 3世 ○ ㅣ 4世 ○ ㅣ 5世 ○ ㅣ 6世 ○ ㅣ 7世 익진(益進) ☀판전객시사(判典客侍事) /本朝 贈戶曹參判 중시조(中始祖) ㅣ 8世 의(義) 호조전서(戶曺典書)/本朝贈兵曹判書 ㅣ 9世 미성(徐彌性)--女○○ 달천부원군 진호(秦浩) 妻 (達川府院君) ㅣ 10世 거광(居廣)--거정(居正)--女○○ 현감공 달성군 최항(崔恒) 妻 (縣監公) (達城君) ㅣ ㅣ 11世 ㅣ (庶)복경(福慶) ㅣ 군수공(郡守公) ㅣ 12世 팽소(彭昭)-팽려(彭呂) 장령공 풍저부봉 (掌令 公) (豊儲副奉) ㅣ 13世 후(厚)---구(久)---고(固) 대사간 ㅣ 참의공 (大司諫) ㅣ (參議公) ┌─────┘ ㅣ ㅣ ┌───────┘ ㅣ..

[동영상]아침이슬-경음악

[1절] 긴 밤지 세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2절]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이승희(李承熙,1846~1916)-독립운동가

■ 보재 이상설과 함께한 독립운동가. 나는 나라가 광복이 되어야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나의 시신을 모셔갈 수는 있겠지만 나의 혼은 돌아가지 않겠다. “을사5적을 참하시고 을사늑약을 폐기하소서” 유교정신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유학자 이승희 대대로 퇴계 이황의 이학(理學)을 계승한 유학자 집안에서 성장 이승희 선생 존영. 이승희(李承熙, 1847. 2. 19~1916. 2. 27)선생은 1847년(헌종 13) 2월 19일(음) 경상도 성주 대포리(지금의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 1동)에서 아버지 이진상(李震相)과 어머니 흥양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자(字)는 계도(啓道)이고 호(號)는 강재(剛齋), 대계(大溪)이다. 1909년 겨울부터 호를 다시 한계(韓溪)로 고쳤고 이름은 대하(大夏..

병인양요(丙寅洋擾), 아직 안 끝났다.

■ 병인양요, 아직 안 끝났다. 양헌수와 조선軍의 외침 들리는가… “강화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내놔라” 이덕일의 산성기행 | 강화 정족산성 강화도만 제대로 답사해도 한국사 대부분을 꿰찰 수 있다. 강화도는 ‘역사문화답사 1번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전 시대 유물·유적이 널려 있다. 강화는 예로부터 갑비고차(甲比古次)·혈구(穴口)·해구(海口) 등으로 불렸다. 지리지는 “강화는 고구려의 혈구군으로 바다 가운데에 있고 신라 경덕왕 때 해구군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갑비고차란 현대어로 ‘갑곶’ 또는 ‘갑곶이’라는 말로, ‘고차’는 바다로 돌출된 곶(串)을 뜻한다. 강화 동쪽 바닷가에는 갑곶리라는 명칭이 남아 있다. 갑은 둘(2)이라는 뜻인데, 한강 하류의 조..

조선시대 품계와 관직표

품 계 관계명 외명부 위계 구분 대감 영감 관 직 정 1품 상계 대광보국 숭록대부 정경 부인 당상관 대감 부원군, 삼정승(영의정, 좌.우의정), 영사, 도제조 하계 보국숭록대부 종 1품 상계 숭록대부 군, 좌.우찬성, 판사, 제조 하계 숭정대부 정 2품 상계 정헌대부 정부인 6조 판서, 좌.우참찬, 5위 도총관, 한성판윤, 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총리영사, 제조 하계 자헌대부 종 2품 상계 가청대부 영감 대사헌, 동지사, 5위 부총관, 한성좌.우윤, 개성유수, 겸사복장, 내금위장, 상선, 제학, 관찰사, 수어청사, 부윤, 포도대장, 병사, 중군, 대장, 제조 하계 가선대부 정 3품 상계 통정대부 숙부인 도승지, 좌승지, 참의, 대사간, 첨지사, 도정, 참찬과, 부제조, 부제학, 성균관 대..

조선시대의 품계와 관직

■조선시대의 품계(品階)와 관직(官職) 『18품(品) 30계(階)로 구성』 ◈동반관직 - 문관의 품계-정1품(종1품)부터 정9품(종9품)까지 18품계. ◈서반관직 - 무관의 품계-정1품(종1품)부터 정9품( 종9품)까지 18품계. ◈관직의 정식 명칭 - 계(품계의 명칭)·사(소속된 관청)·직(맡은 직분)순으로 썼다.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 대광보국숭록대부 - 계(품계의 명칭) ◇대광보국숭록대부 - 계(품계의 명칭) - 의정부 - 사(소속된 관청) ◇대광보국숭록대부 - 계(품계의 명칭) - 영의정 - 직(맡은 직분) [품계(品階)] ●정1품관 ◇대군(군 : 정 1품에서 종 2품까지). 공신. 부원군(왕비의 친정 아버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도제조(영의정이 겸임하는 관직임) ◇사부(세자..

권근 삼대 묘(權近三代墓)

●권근(權近) 1352(공민왕 1)∼1409(태종 9) 때인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요· 대학자로,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소오자(小烏子)이다. 그는 보(溥)의 증손이고, 조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고(皐)이고, 아버지 검교정승 희(僖)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고려 말 충주로 유배되어와 양촌에 살았으므로 이를 호로 삼았다. 그는 이색(李穡)의 문인으로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해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했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 : 원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와 화친함)을 주장했으며,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성균관대..

허준선생 묘(許浚先生墓)/동의보감 저자

↑민통선 안쪽에 위치한 허준선생 묘(좌측, 우측은 배위 안동김씨(安東金氏)이고 위쪽의 묘는 허준선생의 생모 일직손씨(一直孫氏) 묘이다.(孫熙祖의 딸) ↑소재지 :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산129번지 손좌쌍분(巽坐雙墳) ↑허준선생묘의 후경 ↑중건비 전자(前字)에 증 영의정(贈領議政)이라고 되어있는데, 조선왕조실록 등 어느자료를 찾아 보아도 허준선생이 영의정에 추증했다는 기록은 없다. 본 기록은 오류(誤謬)로 여겨진다. ●안내판 기록은 오류투성이.......고쳤으면 좋겠다. 01. 허준선생의 아버지 이름이 허론(許論)으로 기록되어있으나 양천허씨족보에는 허론(許碖)이다. 02. 나이29세가 되던 1574년(선조 7) 의과(醫科)에 급제하여 내의원(內醫院)에 들어갔다고 하나 의과방목(醫科 榜目)에 허준의 이름은 ..

소수서원(紹修書院)

영주소수서원(榮州紹修書院) ◈종 목 : 사적 제55호 ◈명 칭 : 소수서원(紹修書院) ◈분 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면적 : 7,504㎡ ◈지 정 일 : 1963.01.21 ◈소 재 지 :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소수서원 ◈관 리 자 : 영주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사액서원 (賜額書院)이란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 흔히 서적, 토지, 노비 등도 동시에 하사하였으며, 조선 명종 때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 ‘소수 서원’이라 사액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경주이씨 연원(慶州李氏 淵源)

■ 慶州李氏 淵源 1.머리말 경주이씨의 시조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新羅史에 의하면, 慶州李氏 始祖 李謁平은 기원전 117년인 漢武帝 元狩 6년 甲子年에 하늘로 부터 辰韓땅 金剛山의 瓢巖峰(지금의 경주시 동천동 산16번지)에 下降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그리고『삼국사기(三國史記) 1권』 ‘신라본기(新羅本紀)’에 儒理王 9년(西紀 32) 六部村長에 各各 賜姓하였는데, 이때 첫째 閼川 楊山村長 謁平에 李氏를 賜姓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536년에는 신라 제23대 法興王으로부터 文宣公이라는 諡號를 받았고, 656년에는 신라 제29대 武烈王으로부터 恩烈王으로 追封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