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영의정 상진 묘(領議政 尙震 墓)

야촌(1) 2011. 12. 1. 09:49

■ 상진(尙震)

 

1493(성종 24)~1564 조선중기의 문신. 자 기부(起夫), 호 송현(松峴)·범허재(泛虛齋)·향일당(嚮日堂), 시호 성안(成安). 본관은 목천(木川)이다.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사관(史官)이 되었으며, 1526년 예조좌랑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8년 필선(弼善)이 된 뒤 집의(執義)·응교(應敎) 등을 거쳐 1533년 대사간에 올랐다. 1535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어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병조판서 등을 지내고 우찬성(右贊成)·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가 되었으며, 1544년 중종이 죽자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그후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내고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558년 영의정이 되었다. 1563년(명종 18) 치사(致仕)를 청했으나 불허되고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로 전임된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15년 동안 재상으로 왕을 보좌, 명상으로서 조야의 신망이 두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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