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친일 법조인 이승우

■ 친일 법조인 이승우 [생졸년] 1889년(고종 26) 8월~1955년. 8월. 27일 '이 땅의 황국신민들' - 민족운동가 감시에 앞장 선 친일 법조인 입신출세로의 매진과 매국의 길 1889년 충북 진천군 초평면 출생. 본직이 변호사. 상류 지식층에 있는 처지에서 일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파렴치하고 극성스럽게 친일 반민족행위를 자행한 친일 법조인. 중추원 참의에까지 이르렀던 자. 친일 법조인 이승우는 일제하에서 식민 통치기구의 판사나 검사, 즉 친일 재조의 법조인이 아니라 재야에서 활약한 사람이다. 당시 지도급에 있는 변호사로서 반제·항일투쟁에 직·간접으로 지원을 하며 민족운동선상에서 노력한 재야 법조인으로는 이인, 김병로, 허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독립운동가나 사회운동가를 비롯해 가난한 피해..

전두환 전 대통령 팔순 생일 행사

■ 전두환 前대통령 팔순 축하. 전두환 전 대통령이 18일 80세 생일을 맞았다. 전 전(前)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모 예식장에서 과거 재임시절 각료와 군 후배 그리고 현직 정치인 등 약 300명을 초청해 팔순축하연을 열었다. |기사입력 2010-01-18 18:42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더 베일리에서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 팔순 생일행사에서 전(前) 전대통령이 소설가 이문열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0.1.18. leesh@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더 베일리에서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 팔순 생일행사에서 전 전대통령 내외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권중화(權仲和)

■ 권중화(權仲和) ◈익재 이제현의 장손인 계림군(鷄林君) 이보림(李寶林)과 친구관계다. ◈생몰년 : 1322년(충숙왕 9)∼1408년(태종 8) ◈본 관 : 안동(安東) ◈자·호 : 용부(容夫), 동고(東皐) ◈시 호 : 문절(文節) ◈저서 : 《향약간이문(鄕藥簡易文)》, 《신편집성마우의방(新編集成馬牛醫方)》 ◈작품글씨 :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명(墓誌銘), 〈나옹화상비(懶翁和尙碑)〉 〈광통보제선사비(廣通普濟禪師碑)〉 ◈시 대 : 고려말∼조선초기 ◈성 격 : 문신, 학자 ----------------------------------------------------------------------------------------------------------------------------..

최해(崔瀣)

■ 최해(崔瀣) [생몰년] 1287년(충렬왕 13)-1340년(충혜왕 원년) [고려문과] 충렬왕(忠烈王) 29년 (1303) 계묘(癸卯) 충렬왕 29년 계묘방(忠烈王 二十九年 癸卯榜) [분야] 문학>문필가 >문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평생을 시주(詩酒)로 벗삼은 당대의 문호(文豪)로 문명을 떨쳤다. -------------------------------------------------------------------------------------------------------------------------------------- 고려의 문인.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언명보(彦明父) 또는 수옹(壽翁), 호는 졸옹(拙翁), 또는 예산농은(猊山農隱). 최치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민부..

설경수(偰慶壽)

■ 설경수(偰慶壽) [생몰년] 미상 *관직은 부사(副使) 역임 [고려문과] 우왕(禑王) 2년(1376) 병진(丙辰) 우왕 2년 병진방(禑王 二年 丙辰榜) --------------------------------------------------------------------------------------------------------------------------------------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천우(天祐)이고, 호는 용재(傭齋)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원래 회골(回鶻 : 위구르계) 사람으로 아버지인 설손(偰孫)을 따라 귀화한 성씨이다. 증조부는 설문질(偰文質), 조부는 설철독(偰哲䔍)으로 아버지 설손(偰遜)의 4남으로 태어났다. 형으로 설장수(偰長壽)가 있다. 천성이 어..

익재 이제현(李齊賢) 부인 권씨(權氏)

■ 남편을 훌륭한 학자이자 정치가로 내조한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부인 권씨(權氏) 부인은 지원(至元)4) 무자년(충렬 14, 1288)에 태어났으니, 올해 임신년(충숙 복위, 1332)에 45세가 된다. 증조 위(韙)는 고(故) 한림학사(翰林學士)이고, 조부 단(日+旦 )은 고(故) 첨의정승(僉議政丞)으로 시호는 문청공(文淸公)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부(溥)인데 지금 삼중대광 영가부원군(三重大匡 永嘉府院君)으로, 시령 유씨(始寧 柳氏)를 부인으로 맞으니 변한국부인(卞韓國夫人)에 봉해졌다. 고(故) 지첨의(知僉議) 승(陞)의 딸인데, 이 분이 부인을 낳았다. 권씨는 실로 영가군(永嘉郡)의 망족(望族)으로 친인척의 여러 사람이 귀하게 되었다. 부인이 시집가기 전에는 온순하고 총명하여 부모로부터 가장 ..

병자호란과 이경선(李慶善)

진천문화원 ■병자호란과 이경선(李慶善)선생 [생졸년] 1598년(선조 33)~1636년(인조 14) / 향년36歲 조선 인조 때의 문신 이경선(李慶善)은 경주인이며 이시발(李時發)의 아들로 1598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23세 때 문과 과거에 급제한 천재로서 호조좌랑(戶曹佐郞)을 거쳐, 남포현감(藍浦縣監-현감은 지금의 군수)으로 있었을 때다. 1636년 12월 14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적병이 서울에 침입하였다. 당시 인조 대왕(仁祖大王)께서는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파천(播遷)하셨다. 이 때 이경선(李慶善)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근왕병(勤王兵-임금이나 왕실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군인) 2,432명을 인솔하고, 밤길을 걸으면서 수원산성까지 갔다. 그 곳에서 3일..

맹사성(孟思誠)

■맹사성(孟思誠) ↑맹사성(孟思誠) 존영 [생졸년] 1360년(공민왕 9)~1438년(세종 20) 맹사성(孟思誠)의 본관은 신창(新昌)으로 자(字)는 자명(自明), 호(號)는 고불(古佛)이다. 고려 수문전 제학 희도(高麗修文殿提學 希道)의 아들이며, 최영(崔瑩)의 손녀사위이다.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온양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는 지금의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에서 가회동으로 넘어가는 맹현(孟峴)에서 살았다. 우왕 12년(1386)에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춘추관 검열이 된데 이어 전의시성(典儀寺承). 기거랑(起居郞). 사인(舍人). 우헌납(右獻納)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수원판관이 되었다가 다시 내직으로 내사사인(內史舍人)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때 예조의랑(禮曹議郞)이 된 이래, 정종 때 ..

이경선(李慶善)

■ 경주이씨 29世 익재공파(益齋公派) 성명(姓名) 이경선(李慶善) 본관(本貫) 경주(慶州) 시대(時代) 조선시대 자(字) 군선(君善) 호(號) 남포(藍浦) 이력(履歷) [인물요약] ◇생졸년 : 1600년(선조 33) 5월 2일 ~1636년(인조 14) 12월 27일 병자호란의 검천(險川) 전투에서 전사(戰死) ◇문과 : 인조(仁祖) 11년(163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7위 (10/33)/ ◇진사시 : 인조(仁祖) 2년(1624) 갑자(甲子)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36위(36/100) -------------------------------------------------------------------------------------------------- 공의 ..

혜비이씨(惠妃李氏)

■혜비 이씨(惠妃李氏) 혜비 이씨(惠妃李氏)는 경주(慶州) 사람으로 부원군 이제현(府院君 李齊賢)의 딸이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아들이 없자 대신들은 공민왕(恭愍王)에게 명문 가정의 딸로서 아들을 잘 낳을 만한 여자를 왕비로 들일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1359년 5월 이제현의 딸이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 하였고, 그녀가 바로 혜비 이씨이다. 그녀는 공민왕의 명령에 의하여 홍륜(洪倫)과 한안 등이 여러 왕비들을 강간하려 하자 이를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이 때문에 공민왕이 그녀를 죽이려 하였지만 그녀의 절개가 워낙 대단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374년 9월 공민왕이 살해되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여승이 되었다. 그후 비구니로서 정업원(淨業院)에 거주하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