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김조순(金祖淳)

■ 김조순(金祖淳) [생졸년] 1765년(영조 41)∼1832년(순조 32).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조선 제23대왕 순조(純祖)의 장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 영의정 창집(昌集)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달행(達行)이고, 아버지는 부사 이중(履中), 어머니는 신사적(申思迪)의 딸이다. 1785년(정조 9) 약관에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어 강원도·황해도· 함경도 지방의 수령· 찰방 중에 겸사(兼史) 1명을 두어 그 지방의 민요와 풍속을 채록해 시정기(時政記)에 수록하자는 의견을 건의, 실시하였다. 1788년 규장각의 대교(待敎)때 당시 시·벽파(時僻派) 싸움에 중립을 지키며 당쟁을 단호히 ..

조선왕기(∥)

↑조선 제15대왕 광해군(光海君) 1575년(선조 8)∼1641년(인조 19). ■ 제15대 광해군(光海君) 조선 제15대왕 광해군(光海君 : 재위 1608~1623)의 휘(諱)는 혼(琿), 선조의 둘째 아들로 .김희철의 딸 후궁 공빈(恭嬪) 김 씨 소생이다, 어려서 생모 공빈 김씨를 여의고 부왕의 냉대 속에 자랐다. 외조부인 김희철마저도 임진왜란 중에 전사하면서 그가 기댈 곳은 없었다. 동복형제이며 서출 장자인 임해군(臨海君)이 광포하고 인망이 없기 때문에 서출 차남이었던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비(妃)는 판윤 자신(自新)의 딸 유(柳)씨이다, 1608년에 즉위하여 당쟁(黨爭)의 폐를 알고 억제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당쟁(黨爭)에 휩쓸려 대북파(大北派)의 흉계에 빠져 폐륜행위가 많았으며 정치..

조선왕기(ㅣ)

↑조선 건국왕 태조(太祖) 1335년(충숙왕 복위 4)~1408년(태종 8) ■ 태조(太祖) 조선의 제1대왕 태조(太祖 : 재위 1392~1398)는 성이 이(李)씨로, 본관은 전주(全州) 휘는 단(旦), 초명은 성계(成桂), 초자(初字)는 중결(仲潔), 자(字)는 군진(君晋), 호(號)는 송헌(松軒)이며 몽골식 이름은 아기바토르(阿其拔都)이다. 그는 함경도 영흥(永興) 출신으로. 자춘(子春)의 제2남으로 태어나 1356년(공민왕 5)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내부(來附)한 뒤 1361년 홍건적의 침입 때 전공을 세우고 원나라의 나하추가 침입하자 격파 하였다. 1388년 명(明)의 철령위 설치 문제로 요동정벌이 결정되자 출정을 반대 하였으나 거절당한 뒤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가 되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

고려왕기(∥)

↑고려 제20대왕 신종(紳宗, 1144~1204) ■ 신종(紳宗) 고려 제20대왕 신종(紳宗 : 재위 1197~1204)의 휘(諱)는 탁(晫), 초명(初名)은 민(旼), 자는 지화(至華), 시호는 정효(靖孝), 인종과 공예태후 임씨(恭睿太后 任氏)의 다섯째 아들이자 의종과 명종의 막내 동생이다. 1154년(의종 8) 평량후(平凉侯)에 책봉되었다가 최충헌(崔忠獻)형제가 명종을 폐하고 왕으로 추대하여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으며, 1198년,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두었고 관서(關西) 민가의 안대(安碓)를 금지하였다. 같은 해 만적의 난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이듬해에는 명주(강릉)와 동경(경주), 뒤이어 진주와 전주, 합주(합천) 등지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다. 1199년에 최충헌이 문무관의 인사..

고려왕기(ㅣ)

↑고려 태조 왕건(高麗 太祖王建 877년~943년) ■ 태조 왕건(太祖王建) 고려 제1대 태조왕(재위 918~943)의 성은 왕(王), 휘(諱)는 건(建), 자는 약천(若天), 시호는 신성(紳聖), 본관은 개성(開城)으로, 금성태수(金城太守) 융(隆)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위숙왕후(威肅王后) 한씨(韓氏), 895년(진성여왕 9) 아버지를 따라 궁예(弓裔)의 휘하에 들어가 898년(효공왕 2) 정기대감(精騎大監)이 되고 900년 광주(廣州). 충주(忠州)등을 공취하여 그 공으로 아찬(阿粲)의 벼슬을 받았다. 903년에는 궁예의 영토를 확장하여 알찬(閼粲)에 승진되고 계속하여 전라도. 경상도 지방에서 견훤(甄萱)의 군사를 진압 하였다. 913년 시중(侍中)이 되었고 918년 세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난폭한 행..

신라 왕기(III)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788 ~ 809 ■ 애장왕(哀莊王)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 재위 800-809)의 휘(諱)는 청명(淸明)으로 소성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계화부인(桂花夫人) 김씨 이고, 13세에 즉위 하였으나 숙부 김언승(金彦昇)이 섭정 하였다. 태종대왕(太宗大王)과 문무대왕(文武大王)의 2묘(二廟)를 세우고 시조대왕(始祖大王)과 왕(王)의 아들 고조(高祖)를 명덕대왕(明德大王) 왕의 증조(曾祖)를 원성대왕(元聖大王) 황조(皇祖)를 혜충대왕(惠忠大王) 황고(皇考)를 소성대왕(昭聖大王)으로 봉하고 5묘로 삼았다. 일본과 우호를 증진하고 807년에는 공식(公式) 20여 조를 반포 하였다. 809년 섭정에서 실권을 장악 하였으나 숙부(叔父) 김언승(金彦昇)이 그 아우 이찬(伊餐) ..

신라 왕기(∥)

↑신라 제20대 자비왕(慈悲王) ?~479 ■ 자비왕(慈悲王) 신라 제20대 자비왕(慈悲王 : 재위 458-478)의 원래 칭호는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이다. 눌지왕(訥祗王)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아로부인(阿老夫人)으로 실성왕(實聖王)의 딸 金씨이고, 비(妃)는 미사흔(未斯欣)의 딸이다. 459년(자비왕 2) 왜인(倭人)이 병선 1백여 척으로 월성(月城)을 포위하고 맹렬히 공격하였으나 이를 격퇴 하였다. 463년(자비왕 6) 2월 왜인이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梁山)땅의 삽량성(揷良城)에 침입하자 벌지(伐智). 덕지(德智)등에게 명하여 퇴각하는 왜적을 추격 대파(大破)시켰다. 한편 왜인의 잦은 침범에 대비하여 연해(沿海) 지방에 성을 쌓았고 같은 해 7월 대규모 열병식(閱兵式)을 거행하였다. 467년(자비왕..

신라 왕기(1)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B.C 57~A.D4 ■ 박혁거세(朴赫居世)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 재위 B.C57~A.D4)의 성은 박씨(朴氏) 휘(諱)는 혁거세(赫居世). 왕호(王號)는 거서간(居西干) 비(妃)는 알영부인(閼英夫人) 삼국사기에 보면 일찍이 고조선(古朝鮮)의 유민(遺民)이 지금의 경상도 지방에 와서 산곡간(山谷間)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마을을 형성하였다. 양산촌장(楊山村長) 알평(謁平)이 양산(楊山) 아래 나정(羅井)에서 말이 알려준 큰 알을 얻었는데 깨어보니 그 속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알이 매우 크 서 박과 같다 하여 성을 박(朴)이라 하였는데 박혁거세는 박 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그가 자라서 13세가 되었을 때, 매우 영특하다 하여 여섯 마을의 왕으로 삼았고 국호를 서나..

경주이씨의 신라왕비

1.신라시대 ■ 운제부인(雲帝夫人) 혹은 아루부인(阿婁夫人) 신라 2代 왕 남해차차웅의 정비(正妃)이다. 신라의 6촌 중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 : 급량부)장인 이알평의 증손녀로 신라 3대 유리왕의 생모이다. 단 《운제부인(雲帝夫人)의 관향에 대한 고정은 아직없다》 운제부인(雲帝夫人) 신비한 능력이 있고 선도산(仙桃山)에 산다 해서 선도성모(仙桃聖母)로 불렸다. 지금도 경주시의 선도산엔 운제부인에게 제를 올렸던 제단터가 남아 있다. 이 제단터에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신라에서는 운제부인을 박혁거세의 아내인 알영부인, 박제상의 아내인 치술공주와 함께 국신(國神)으로 섬겼다. 고려시대 영일현(지금의 포항시)의 서쪽에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가 있는데 가뭄 때에 여기에 빌면 감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