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한국의 여성인물.

익재 이제현(李齊賢) 부인 권씨(權氏)

야촌(1) 2010. 1. 2. 20:07

■ 남편을 훌륭한 학자이자 정치가로 내조한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부인 권씨(權氏)

 

부인은 지원(至元)4) 무자년(충렬 14, 1288)에 태어났으니, 올해 임신년(충숙 복위, 1332)에 45세가 된다. 증조 위(韙)는 고(故) 한림학사(翰林學士)이고, 조부 단(日+旦 )은 고(故) 첨의정승(僉議政丞)으로 시호는 문청공(文淸公)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부(溥)인데 지금 삼중대광 영가부원군(三重大匡 永嘉府院君)으로, 시령 유씨(始寧 柳氏)를 부인으로 맞으니 변한국부인(卞韓國夫人)에 봉해졌다. 고(故) 지첨의(知僉議) 승(陞)의 딸인데, 이 분이 부인을 낳았다. 권씨는 실로 영가군(永嘉郡)의 망족(望族)으로 친인척의 여러 사람이 귀하게 되었다.


부인이 시집가기 전에는 온순하고 총명하여 부모로부터 가장 귀여움을 받았으며, 15세에 배필을 골라 이씨(李氏) 집안에 시집가게 되었다. 이공은 연우(延祐) 초에 선왕인 대위왕(大尉王, 忠宣王을 가리킴)을 수행하여 원(元)의 서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고려와 원을) 오가느라 집에 머무르지 않은 것이 10여 년이나 되었다.

 

부인은 남편의 집안을 섬기면서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여 시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분들의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해드렸다. 어른을 받들고 아래 사람들을 거느리면서 살림을 마련하고, 손님을 접대하면서 반드시 삼가며 반드시 조심하며, 항상 법도를 갖추었으니 평생 아무 탈이 없이 편안하였다.

 

바깥채[堂]에 나가지 않고 안채[閤]에 있으면서도 하루도 길쌈하지 않는 날이 없었고, 일가 친척을 모시기를 즐겨하면서 비록 화목함은 돈독하게 하였어도 또한 더불어 서로 시기하지 않았으니, 대개 그 부인[閨門]이 내외의 구분을 엄하게 하여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억지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이공은 나이 어려서부터 벼슬하여 상부(相府)에 오르기까지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여 나라의 이름난 신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내조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다.

 

출전 : 김용선역주, 고려묘집명집성, 233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