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인(李全仁)
여과아자야(汝果我子也) : 너는 과연 내 아들이니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은 젊은 시절에 정을 둔 기생(妓生)이 있었다.
그녀가 임신(姙娠)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지사(知事: 知中樞府事 등 정2품부터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종3품까지의 벼슬)로 있던 조윤손(曺潤孫)이 그녀를 보고 마음에 들어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해산달이 되어 아들을 낳자, 조윤손은 이름을 '옥결(玉缺)'이라 지었고, 장성(長成)하자 후사(後嗣)로 삼고 집과 논밭, 노비(奴婢)들을 문서(文書)로 작성하여 주었다. 이언적이 조윤손에게 장난삼아 말했다.
"첩(妾)이야 공이 마음대로 가지지만, 아들놈은 어째서 돌려보내지 않습니까?"
조윤손은 그저 한 차례 웃을 뿐이었다.
조윤손이 죽자 조옥결(曺玉缺)은 장례를 치르고 시묘(廬墓) 살이를 하는데, 이언적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머니한테 물으니, "너는 사실 회재선생의 아들이니라"고 했다.
"저는 조씨 댁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의리상 상례(喪禮)를 마치겠습니다."
옥결은 상례를 마치고 물려받은 문서를 조윤손의 자제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경주(慶州)에 가서 회재부인 박씨에게 그 사실을 아뢰었다.
부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언적의 유배지(流配地)에 가보라고 했다.
옥결이 강계(江界) 유배지로 회재를 찾았더니,
"너는 과연 내 아들이니라“
하고는 이름을 전인(全仁)으로 고쳐 주었다.
이전인[1516(중종 11)-1568(선조 1)]은 호를 잠계(潛溪)라 하였는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도학자로 천거를 받아 벼슬이 예빈시정(禮賓寺正 : 빈객에 대한 연향·宴享을 맡아보던 관아인 예빈시의 정3품 당하관·堂下官)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무잠계(無潛溪) 무회재(無晦齋) 즉 잠계가 없으면 회재가 없었다. 할 정도로 평생 아버지의 학문을 선양하는데 일생을 바쳤으며, 사후 예빈시 정(禮賓寺正)에 추증되고 장산서원(章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자료]
《기문총화(記聞叢話)》에 전한다.《기문총화(記聞叢話)》는 19세기 전반 무렵에 편찬된 편자 미상의 야담집이다.
편찬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본 책에 수록된 인물들의 생몰년과 ≪東野彙輯≫의 서문 등을 참조할 때 19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즉‚ 본 책에는 黃仁儉(1711-1765)‚ 柳鎭恒(1720-1801) 등과 같이 1800년 전후의 인물일화가 실려 있고‚ 1869년에 씌어진 李源命의 《東野彙輯》 서문에는 본 책을 참조하여 책을 엮었다고 밝혀놓았다.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도서관 등에도 이본이 소장되어 있다.
권1에 139편‚ 권2에 359편 등 총 598편의 기사가 실려 있다.
편자는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는 한편‚ 正祖 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大東稗林》 소재의 책 중에서 禹伏龍(1547-1613)의 <東溪雜錄>‚ 申欽(1566-1628)의 <晴窓軟談>‚ 鄭弘溟(1592-1650)의 <畸翁謾筆> 등의 글을 選錄하기도 하였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조선전기부터 18세기말까지 활동한 다양한 인물들의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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