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조선시대 청백리 녹선수(錄選數)

■조선시대 청백리의 녹선(錄選) 조선조에 청백리로 녹선 된 수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몇몇 사료들에 의하면 210여명의 전후로 선발된 것으로 보인다. 청백리에 녹선 된 사료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대동장고(大東掌攷)』 13책. 필사본. 순조연간에 홍경모(洪敬謨:1774~1851)가 〈동국통감〉·〈사기〉·〈문헌비고〉·〈동국여지승람〉 등을 참조하여 편찬했다. 기재양식은 자호(字號), 본관, 시호, 특기사항, 선조 중 유명인, 출신과 과거경력, 생몰, 주요관직 등이다. 1책은 역대고(歷代攷)로 단군조선에서 정조까지의 왕·왕비·인물·사건·치적을 정리했다. 2책은 초액고(椒掖攷:后妃) 이하 종영(宗英:왕자)·국구(國舅)·의빈(儀賓:부마)·보상(輔相)·검교정승(檢校政丞)·총재고 (冢宰攷)로 되어 있..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

안중근 의사의 사형소식을 듣고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딴맘 먹지 말고 죽어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안중근(安重根)

■ 안중근(安重根) 1879년(고종 16)∼1910년. 조선 말기의 교육가·의병장·의사(義士). 본관은 순흥(順興). 황해도 해주 출신. 할아버지는 진해현감 인수이다. 아버지 진사 태훈(泰勳, 泰勛)과 어머니 조씨(趙氏) 사이의 3남 1녀 중 맏아들이며, 아내는 김아려(金亞麗)이다. 어려서는 응칠(應七)로 불렸고 해외생활 중에도 응칠이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해 자(字)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6, 7세 때에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하였다. 이곳의 아버지가 만든 서당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사서(四書)와 사기(史記) 등을 읽었다. 또 틈만 나면 화승총을 메고 사냥해 명사수로 이름이 났다.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監司)의 요청으로 산포군(山砲軍 : 수렵자)을 조직해 동학..

우의정 정순붕(右議政 鄭順朋)

우의정 정순붕(右議政 鄭順朋) 鄭順朋(1484年, 成宗 15~1548, 明宗 3)은 朝鮮 中期의 文臣으로 本貫은 溫陽. 字는 耳齡. 號는 省齋이다. 祖父는 司憲府 持平을 지낸 鄭忠基이며, 父親은 獻納을 지낸 鄭鐸이며, 어머니는 先室은 星州都氏이고, 繼室은 瓮津李氏로 모두 貞夫人에 追封되었다. 膝下에 先室에서 長男 鄭壽朋, 次男 鄭百朋, 三男 鄭順朋이고 繼室에서 鄭龜朋 等 4男 1女를 두었다. 夫人은 完山李氏로서 都正 李終南의 딸이다. 刑曹判書 鄭百朋의 아우이다. 1504年(燕山君 10) 文科에 及第하여 趙光祖, 朴祥, 金淨 等 新進士類와 交遊하였다. 1516年(中宗 11) 吏曹判書 宋千喜의 薦擧로 掌令에 任命되었다. 1518年에는 金正國, 申光漢 等과 함께 經筵 講讀官으로 選拔되었고, 이듬해 左部承旨, ..

정렴(鄭磏)

장혜공 북창 정렴(章惠公 北窓 鄭磏) 鄭磏(1505年 燕山君11~1549年 明宗 4)은 朝鮮 前期의 儒醫로 本貫은 溫陽, 字는 士潔, 號는 北窓이다. 曾祖父는 司憲府 持平을 지낸 鄭忠基이며, 祖父는 司諫院 獻納을 지낸 鄭鐸이며, 父親은 內醫院提調와 右議政을 지낸 鄭順朋이며 어머니는 完山李氏로서 鳳陽都正 李終南의 딸이다. 夫人은 晉州柳氏로서 右贊成으로 贈職된 柳文通의 孫女이며 學生 柳仁傑의 딸이다. 1537年(中宗32年) 司馬試에 合格하였다. 어려서부터 音律에 밝고 玄琴에 正統하여 掌樂院 主簿로 歌曲의 장단을 指導하는 한편, 天文과 醫術에도 造詣가 깊어 觀象監과 惠民署의 敎授를 歷任하였다. 天文, 地理, 醫書, 卜筮, 漢語, 文章, 山水畵 等에 두루 能通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藥의 理致에 밝았는데, 1..

이승금(李承金)

■ 이승금(李承金) 임진왜란의 의장(義長) 이승금(李承金)은 성(姓)이 청안이씨(淸安李氏)로, 오위부장(五衛部將) 퇴사재(退思齋) 이응춘(李應春, 1522-1592)의 둘째 아들로 조선 명종 11년(1556)에 현재의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外東邑) 입실리(入室里)에서 태어났다. 이승금은 13세 때 손가락을 끊어 병세가 위독한 아버지를 구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극진하였다. 선조 12년(1579)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1592) 때는 아버지 이응춘(李應春) 의장(義長)을 따라 두 숙부(이우춘, 이봉춘)와 함께 지금의 울산광역시 강동동에 소재하는 공암(孔岩) 지역과 당시 경주성(慶州城)의 남쪽을 돌아 흐르는 문천(蚊川 : 汶川)전투에 참가하여 누차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운 의병장이다..

권동하(權東河)

■ 권동하(權東河) 권동하(1905 - 1987)는 예천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으로, 본관은 예천(禮泉)이다. 경북도립사범학교를 졸업(1회) 하고, 예천공립보통학교의 훈도(現 敎師)로 부임한 이래, 대구 덕산국민학교 등에서 13년 간 교단 생활을 하다가 1940년에 그만두고, 예천주조회사 취체역(取締役)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권동하의 동생 권상하(權尙河: 1916. 12. 29 - 2000. 04. 13) 역시 대구사범학교(제4회) 심상과(尋常科) 5년제를 마치고 진보국민학교를 거쳐 함창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일제 말기에 언론계로 전환하여 해방 전후 7년 간 예리한 필봉을 휘두르다가 1947년 경에 경북 경찰계에 투신하여 치안국 근무를 거쳐 경남 함안, 거제, 삼천포 경찰서장, 경남경찰국 공보실장 등을..

반석평(潘碩枰)

반석평(潘碩枰) [생졸년] : 1472(성종 3) ∼1540(중종 35). [문과] 중종(中宗) 2년(150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22위(32/33)/ [생원시] 연산군(燕山君) 10년(1504) 갑자(甲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8위(38/100) ---------------------------------------------------------------------------------------------------------------------------------------------------------------- 1472(성종 3) ∼1540(중종 3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厓). 증조는 사..

삼학사(三學士)

삼학사(三學士) 삼학사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찬양은 피할 일이다. 그들 역시 宋時烈처럼 名分論에 사로잡힌 인물들 일 뿐이다. 그들은 조선 역대로 오랑케로 멸시하였던 女眞族의 후예인 청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에의 절의를 주장한 것이다. 오히려 최명길(崔鳴吉)과 김상헌(金尙憲)의 상반된 입장을 통하여 병자호란을 읽는 것이 옳은 일일듯.... 병자호란 당시 조정에는 오달제, 윤집, 홍익한 등의 삼학사(三學士) 말고도 많은 척화신(斥和臣)들이 있었다. 윤황(尹惶), 이일상(李一相), 유계(兪棨), 정온(鄭溫), 조경(趙絅) 등이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이 세 사람이 淸나라에 넘겨지는 "희생양"으로 낙점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 것은 청태종의 칭제건원(稱帝建元 ...왕을 황제라 칭하고, 독자적인 年號를 사용 )사실이 ..

오달제(吳疸濟)

오달제(吳疸濟) - 향년 28세 ↑추담 오달제 선생 영정 [문 과]인조(仁祖) 12년(1634) 갑술(甲戌) 별시(別試) 갑과(甲科) [壯元]1위(1/12)/ 합격연령 26歲 [진사시] 인조(仁祖) 5년(162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二等) 14위(19/100)/합격연령 19歲1609(광해군1)∼1 637(인조 15).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