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국사(國史)

청나라 역사서, 중국 요서를 백제 영토로 인정

야촌(1) 2007. 11. 14. 23:23

[역사 발굴Ⅰ]

 

청나라 역사서, 중국 요서를 백제 영토로 인정

 

중국의 동북공정 뒤엎을 史料 찾았다!

 

백제사는 두 번에 걸쳐 크게 왜곡되는 수난을 겪었다.

첫째, 고려 시기 신라 중심으로 삼국사의 정통을 세우는 과정에서 초기 백제사의 상당부분이 삭제 혹은 훼손되었다고 본다.

 

둘째, 일제에 의한 왜곡으로, 일제는 한반도에 대한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먼저 한국사 연구에 손을 댔는데, 이때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백제사를 총관(總觀·전체를 대충 살펴봄)하는 ‘백제약사’와 ‘백제사강화’를 저술했다.

 

이마니시의 백제사 서술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백제가 신사시대(信史時代)로 들어간 시기를 근초고왕대로 잡고 그 이전은 전설의 시기로 파악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제가 왜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보호와 통치하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마니시의 이와 같은 백제사 인식체계는 백제의 후진성과 타율성을 강조함으로써 일제의 식민통치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흠정만주원류고’의 가치

 

광복이후 일제에 의해 왜곡된 백제사를 주체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구인력의 제한과 문헌자료의 부족 등으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일본 사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백제사 인식체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흠정만주원류고’는 청나라 때 편찬된 책이다.

 

흠정이란 황제의 저술 또는 황제의 칙명에 의해 만들어진 저술을 뜻한다.

청나라 건륭 43년에 아계(阿桂) 등이 칙명을 받들어 편찬한 이 책은 부족, 강역, 산천(山川), 국속(國俗) 네 부문으로 나누어 총 20권으로 간행됐다.

 

당시 조선은 친명배청(親明排淸)정책을 견지하는 바람에 조선과 청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따라서 청나라가 한국 고대사를 의도적으로 미화했을 리 만무하다. 단지 자신들의 터전인 만주의 고대사 원류를 추적하다보니 우리민족사의 한 축인 백제사와 만나게 되고 그것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기술했다고 봐야 한다.

 

이 ‘만주원류고’에 보이는 백제는 후진적이고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 강토는 광대하고, 인구는 많고, 역사는 깊고, 문화는 우수하고, 국력은 강대한 대제국이었다.

 

광복된 지 어언 60년인데 우리가 아직도 식민사관의 잔재를 벗지 못한 채 고대사연구를 국내의 한정된 자료에 의존하면서 ‘흠정만주원류고’와 같은 소중한 역사기록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한 고구려사 탈취 시도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역사문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또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국책연구기관이 출범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구려나 신라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취약하고 또 삼국사 중 일제에 의한 왜곡의 정도가 가장 심각한 부여, 백제사가 여기서 제외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 沈伯綱

◇1956년 경기 파주 출생
◇국립대만사대 및 중국 옌볜대 대학원 역사학 박사
◇월간 ‘한배달’ 편집인
◇저서 : ‘사고전서 중의 동이사료’ ‘조선왕조실록 중의 단군사료’ ‘조선왕조실록 중의 기자사료’ ‘이이 왕안석 경제

                개혁상 비교연구’ 등

◇발행일: 2004 년 10 월 01 일 (통권 541 호)

◇쪽수: 446 ~ 456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