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털어놓고 하는 이야기 - 李鍾贊 前 국가정보원장 (中)

■털어놓고 하는 이야기 - 李鍾贊 前 국가정보원장(中) - 92년 大選 후 만난 DJ, “무조건 해외로 나가라” - 盧泰愚, 정무장관 임명장 주면서 “자네에 대해 軍部에서 말이 많아” - 金復東, “가족 모임에서 YS 지지 결정, 이제 포기하라” - 93년 6월 영국에서 DJ 만나 야권 통합 논의 - 95년 지방선거 앞두고 DJ 지시로 서울시장 후보로 李會昌 영입 추진 1987년 12월의 제13대 대선(大選)에서는 노태우(盧泰愚) 후보가 양 김(兩金)씨의 분열에 힘입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노 대통령이 정국(政局)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이듬해 제13대 총선(總選)에서 원내 과반수(過半數)를 확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많은 사람이 1988년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식을 전후해 총..

털어놓고 하는 이야기 - 李鍾贊 前 국가정보원장 (上)

■털어놓고 하는 이야기 - 李鍾贊 前 국가정보원장(上) - “盧泰愚 후계는 1980년에 이미 결정” (兪學聖) - 1962년 최고회의에서 全斗煥과 처음 만나, 12·12 후 재회 - 2·12 총선 앞두고 “서대문 출마 막아 달라”던 盧泰愚, 대통령 된 후 “이종찬이 내 출마 막았다” - 盧泰愚 당선 후 만난 權翊鉉, “黨이 순탄치 않을 거요” ■李鍾贊 〇76세. 육사 졸업(16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〇중앙정보부 총무국장·기획조정실장, 11~14대 국회의원, 민정당 원내총무·사무총장, 정무제1장관, 새한국당 대표, 제14대 대통령후보,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제15대대통령직 인수위원장, 국가정보원장 역임. 現 우당장학회 이사장. 1962년 5월 23일 경기도 연천 제28사단 연대 교육장교로 있던 ..

경상도(慶尙道)의 옛 지명

경상도(慶尙道)의 옛 지명 (1) 문경(聞慶) : 관문(冠文) 관산(冠山) 문희(聞喜) 호계(虎溪) 가은(加恩) 벌천(伐川) 병곡(柄谷) 견천(絹川) 고 곡(高谷) 마량(馬梁) 잉을항(仍乙項) (2) 풍기(豊基) : 기주(基州) 기목(基沐) 영정(永定) 안정(安定) 은풍(殷豊) (3) 함창(咸昌) : 고녕(古寧) 위녕(威寧) 고릉(古陵) 덕봉(德峯) 이안(利安) (4) 용궁(龍宮) : 축산(竺山) 원산(園山) 용주(龍州) 무송(茂松) 양정(陽井) 풍양(豊壤) 하남(河南) 평구(平坵) 곡 계(曲溪) (5) 순흥(順興) : 급대산(及代山) 급산(岌山) 흥주(興州) 순정(順政) 흥녕(興寧) (6) 영천(榮川) : 내녕(奈寧) 강주(剛州) 순안(順安) 영주(榮州) 구성(龜城) (7) 상주(尙州) : 상주(上州)..

태호복희(太昊 伏羲氏) -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제왕(帝王) 또는 신(神)이다.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 - 중화민족 문화의 시조.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제왕(帝王) 또는 신(神)이다. 3황 5제 중 중국 최고의 제왕으로 친다. 그의 이름은 복희(伏戯. 伏犧)· 복희(宓羲)· 포희(庖犧. 炮犧)· 복희(虙犧)· 등으로 쓰기도 하는데, 진(陳)에 도읍을 정하고 150년 동안 제왕의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몸은 뱀과 같고 머리는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어서 해·달과 같은 큰 성덕을 베풀었다 하여 대호(大昊: 끝이 없이 넓고 큰 하늘과 같다는 뜻), 또는 태공(太空)이라고도 한다. 복희 황제는 3황 5제(三皇五帝) 중 수위에 있어 중국 최고의 제왕으로 친다. '복희'라는 이름은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 속에 나오는, 복희가 팔괘(八卦)를 처음 만들고, 그물을 발명하여 어획·수렵..

혜강(嵆康) - 중국 삼국시대 위(魏)의 시인 겸 철학자

■ 혜강(嵆康, 223~262) - 중국 삼국시대 위(魏)의 시인 겸 철학자 자(字)는 숙야(叔夜). 초국질(譙國銍-安徽省 북부) 출생이다. 위의 왕족과 결혼하여 중산대부(中散大夫: 侍從職)로 승진하였으나 부정을 용서하지 않는 성격과 반유교적사상(反儒敎的思想)으로, 당시 권력층의 미움을 받았으며, 친구가 일으킨 사건에 말려들어 처형되었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중심인물로 《양생론(養生論)》·《산거원(山巨源)》에 주는 절교서(絶交書) 등 수많은 철학적· 정치적 논문과 서간문을 썼다. 그 속에서 그는 전통적 유교사상과 인생관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인간 본래의 진실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논쟁을 벌이는 한편, 자손에게 주는 문장(가훈)에서는 상식적이고 건전한 훈계를 남겼다. 거..

완적(阮籍)-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문학가 겸·사상가.

■완적(阮籍, 210~263) -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문학가 겸·사상가. ↑완적 상(阮籍像) 자(字)는 사종(嗣宗)으로 진류(陳留=河南省 開封 근처) 출생이다. 아버지는 후한(後漢) 말의 명사이자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완우(阮瑀)이다. 보병교위(步兵校尉)를 지냈으므로 완보병이라고도 칭하며, 혜강(嵆康)과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중심인물이다. 위나라 말기의 정치적 위기 속에서 강한 개성과 자아(自我) 및 반예교적(反禮敎的) 사상을 관철하기 위하여 술과 기행(奇行)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살았다. 많은 기행 중 ‘청안백안(靑眼白眼)’의 고사는 유명하다. 정권을 빼앗으려는 사마씨(司馬氏)의 막료를 지냈으나, 권력과의 밀착을 싫어했고, 곤란한 처세와 고독한 사상을 시문에 의탁하였다. 대표작인..

왕필(王弼, 226~249)-중국 위(魏)나라의 학자.

■왕필(王弼, 226~249) - 중국 위(魏)나라의 학자. ↑왕필(王弼) 像 자 보사(輔嗣). 산둥성[山東省] 진샹현[金鄕縣] 사람이다. 풍부한 재능을 타고난 데에다 유복한 학문적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찍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관료인 하안(何晏) 등에 그 학식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상서랑(尙書郞)에 등용되었고, 하안과 함께 위·진(魏晉)의 현학(玄學: 老莊學)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한(漢)나라의 상수(象數: 卦에 나타나는 형상과 변화)나 참위설(讖緯說: 예언학의 일종)을 물리치고 의(義)와 이(理)의 분석적·사변적(思辨的) 학풍을 창설하여 중국 중세의 관념론체계에 영향을 끼쳤다. 체용일원(體用一源)의, 무(無)를 본체로 하고 무위(無爲)를 그 작용으로 하는 본체론(本體論)을 전개하여 인지(人..

주유(周瑜) - 중국의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명장.

■ 주유(周瑜, 175~210) - 중국의 삼국시대 오(吳) 나라의 명장. 자(字)는 공근(公瑾). 여강(廬江) 서현(舒縣:지금의 안후이 성[安徽省] 수청[舒城] 사람으로 사족(士族) 출신이다. 어렸을 때 손책(孫策)과 벗하며 지냈다. 나중에 손책의 수하에 들어가 건위중랑장(建威中郞將)이라는 직책을 맡고, 손책을 도와 강동(江東)에 손오(孫吳) 정권을 세웠다. 손책이 죽자 장소(張昭)와 함께 손권(孫權)을 보좌했으며, 전부대도독(前部大都督)이라는 벼슬을 맡았다. 208년(建安 13)에 조조(曹操)가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자, 그는 노숙(魯肅)과 함께 전쟁을 벌일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한편, 친히 군사를 이끌고 [赤壁]에서 조조의 군대를 대파했다. 나중에 병으로 죽었다. 주유는 당시에 "曲에 잘못이 있으면..

화타(华陀) - 중국의 고전 삼국지에 나오는 명의.

■ 화타(华陀. 110년? ~ 208년. 중국고전 삼국지에 나오는 명의. 자(字) 원화(元化). 패국(沛国) 초현[谯县, 지금의 안후이(安徽, 안휘) 보저우시(亳州市)] 출신의 동한(东汉) 말기의 의학자이다.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침구과 등에 정통했으며, 특히 외과에 뛰어났고, 술과 마비산(麻沸散)이라는 마취제를 이용한 전신마취법을 창안하여 복강(腹腔) 종양절제수술과 위장절제봉합수술 등의 시술에 성공했다고 전한다. 또한 호랑이·사슴·곰·원숭이·새 등의 동작을 모방하여 오금희(五禽戱)라는 의료보건체조를 만들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지연의에는 손권의 애원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생명이 위독한 주태를 하루 종일 수술해서 완치시켰고 관우의 어깨뼈에 묻은 독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으며 승상 조조의..

초선(貂蟬) - 중국 4대 미녀 중의 한사람

■초선[貂蟬, 177년~199년(소설상의 나이)] - 중국 4대 미녀 중의 한사람 초선(貂蟬)은 삼국지의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한나라 대신(大臣) 왕윤(王允)의 양녀인데, 용모(容貌)가 명월 같았을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어느 날 저녁에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에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리웠다. 왕윤이 말하기를 : "달도 내 딸에 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 고 하였다. 이 때 부터 초선은 폐월(閉月)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초선은 왕윤의 뜻을 따라 간신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 시키며 동탁을 죽게 만든 후 의로운 목숨을 거둔다. ↑초선(貂蟬)의 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