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동맹록(同盟錄,독립운동가 113명 명적)' - 최익현

작성일 : 2021. 7. 16. 10:14 제석당 마애석각 명문에 나오는 박노익(朴魯翊) 1921년 함양 군수 민인호(閔麟鎬 1884~1950)는 산청 출신이다. 동경제국대학을 나와 일제 강점기에 탁지부 주부를 거처 함양군수(1919.10~1923.3)를 지냈으며, 1921년 함양명승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지리산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그 일환으로 1922년 4월 16일~20일(음)까지 고적조사원 권도용(1877~1959), 토목 기수보 大谷定浩(오오타니 사다히로), 고용인 2명, 벽송사 승려 김선응, 이종인, 마천면장 김병호 및 삯꾼 2인을 포함 모두 10명이 벽송사를 출발하여 천왕봉을 유람하였다. 유람의 목적은 함양 군수가 주도하는 함양명승고적보존회에서 마암에 마암당(이진우와 벽송사승 일동), 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그리고 대원군의 정치 체계

작성일 : 2021. 6. 1. 20:46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그리고 대원군의 정치체계 병인, 신미양요는 사실 대원군 집권기에 일어난 일이고 그로인해 오히려 대원군은 집권기반을 더 튼튼히 하였다. 그렇기에 삼군부는 대원군의 개혁 때 다루어야 했지만, 후술하겠지만 병인양요 이후 완전 설치되었고 또 신미양요를 겪었기 때문에 따로 독립적으로 다루기로 하겠다. 하지만 병인, 신미양요를 논하자면 그 이전 대원군의 삼군부 복설부터 다루어야 한다. 병인, 신미양요는 삼군부의 복설 계기이자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원군의 삼군부 복설부터 병인, 신미양요의 뒤처리까지 다루기로 하겠다. 사실 삼군부 자체는 고려 말 삼군통제부가 태조 2년(1393)에 義興三軍府로 개편된 것이었으나 임란 이후 오위체제로 바뀌었다. ..

병자호란 다시읽기(7)

작성일 : 2021. 7. 14. 18:51 병자호란이 일어나다 Ⅱ 1636년 12월10일 압록강을 건넜다. 이렇다 할 저항이 없었다. 그들은 곽산(郭山)과 정주(定州)에 사실상 무혈 입성했다. 홍타이지는 투항해 온 곽산과 정주의 군민들을 해치지 말라고 유시하는 한편, 그들의 머리를 깎아 치발(髮)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버일러 두도(杜度)에게 정예병을 뽑아 철산(鐵山)과 가도, 운종도(雲從島) 일대를 공략하라고 지시했다.15년 동안 목에 걸린 가시처럼 청을 배후에서 위협했던 가도의 동강진(東江鎭)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동요하는 조선 조정 청군이 이미 안주를 지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김자점의 장계가 조정에 들어온 것은 12월13일이었다. 인조는 대신들을 불러모았다. 영의정 김류는 경기 ..

병자호란 다시읽기(6)

작성일 : 2021. 7. 14. 13:37 (69) 후금 관계 파탄의 시초(Ⅱ) 용골대와 마부대 일행은 다목적 사절이었다. 새해가 밝았음을 축하하는 사절이자, 인열왕후의 죽음에 문상하기 위한 조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조선에 온 가장 큰 목적은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조선의 동참을 촉구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홍타이지 명의의 국서말고도 후금의 여덟 버일러(貝勒, 만주 팔기의 우두머리)들과 몽골 출신 마흔 아홉 버일러들이 작성한 서신을 각각 1통씩 소지하고 있었다. 서신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창경궁 명정전의 모습. ●용골대 일행 명버리고 후금 선택 강요 후금의 버일러들이 보낸 서신은 먼저 몽골 각부의 버일러들이 심양에 모두 모여 홍타..

중국 사신을 깨우친 ‘이진택’

작성일 : 2019. 2. 24 ■ 중국 사신을 깨우친 이진택 ↑덕봉정사[德峯精舍/경주시 정자3길 11-6(마동 538)]는 이진택이 만년에 유식하던 장소로 원래는 경주 관광호 텔 뒤 송림가에 있었으나 1905년 그의 묘소 옆 연못가로 옮겼다. 경주시 마동소재 경북문화재자료 제313호 이진택[李鎭宅, 1738(영조 14)∼1805(순조 5)]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하며 막힘이 없었는데, 8세 때 닭싸움을 보고 “상앙의 법률로 논죄할 것 같으면, 이 닭은 당장 삶아 먹을 것을(若論商法 此.當烹食)…”이라는 글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780년(정조 4)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성균전적·예조정랑·사헌부감찰·병조좌랑·사헌부지평·장령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노비혁파를 주장한 상소를..

부여 의열사 묘정비(扶餘義烈祠廟庭碑)

작성일 : 2022. 5. 1. 18:58 이존오『李存吾, 1341년(충혜왕 2) ~ 1371년(공민왕 20) 고려사열전 이존오[李存吾] 이존오(李存吾)1)의 자는 순경(順卿)이고 경주(慶州 :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사람이다. 생김새가 단정하였으며 행동이 진중하고 과묵했다. 일찍 부친을 여의었으나 열심히 공부했으며 기개와 절조가 있었다. 나이 십여 세에 십이도(十二徒)2)에 들어갔는데 넘치는 강물을 두고 이런 시구를 읊었다. 큰 들은 모두 물에 잠겼지만 높은 산[高山 3]만은 홀로 우뚝 솟아 있네. 이를 본 식자들이 기특하게 여겼다.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해 수원서기(水原書記)로 있다가 사한(史翰)으로 선발되었다. 정몽주(鄭夢周)·박상충·이숭인(李崇仁)·정도전(鄭道傳)·김구용(金九容)·..

고려사 인물열전.

작성일 : 2021. 8. 7. 09:38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편 서산의 인물 연구 - 고려시대 서산의 인물 중심으로 1. 머리말 2. 고려사(高麗史)는 어떤 사서(史書)인가? 3.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편 서산의 인물기록 4. 고려사 서산의 인물 3인의 요약정리 5. 맺음말. 1. 머리말 우리나라 역사서 중에 가장 훌륭한 정사체(正史體) 역사서로 평가받는 고려사(高麗史)를 통하여 우리민족 유일한 자주통일국가이며 황제(皇帝)국가인 고려의 역사 속에 빛나는 서산의 인물들의 기록을 살펴보고 올바른 시각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우선 고려사의 이해가 필요하기에 고려사에 대한 소개를 하고 그 다음으로 고려사 열전편에 나오는 서산을 대표하는 3인의 인물 정인경(鄭仁卿), 류숙(柳淑), 류실(柳實)에 대한..

고려사의 편찬.

작성일 : 2021. 8. 6. 20:33 '고려사 열전'의 구성과 내용-한충희(계명대학교 인문학부) 1. 『고려사』의 편찬 『고려사(高麗史)』는 기전체(紀傳體)로 쓰여진 137권의 고려 475년간의 정사이다.1~46권에서는 태조 이하 32왕(우왕, 창왕 제외)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였고, 47~87권에서는 천문지 등 12분야와 연표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였고, 88~137권에서는 후비·종실·공주, 문·무제신, 반역자 등 고려 일대의 인물 949명의 전기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였다. 고려왕조의 역사정리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전왕조의 역사를 정리하고, 고려를 멸망시키고 개창한 조선왕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편찬된 고려역사는 정도전(鄭道傳)·정총(鄭摠) 등이 왕명을 받고 편찬을 ..

고려사 열전.

작성일 : 2021. 8. 4. 18:48 ■ 고려사 열전 1.머리말 우리나라 역사서 중에 가장 훌륭한 정사체(正史體) 역사서로 평가받는 고려사(高麗史)를 통하여 우리민족 유일한 자주통일국가이며 황제(皇帝)국가인 고려의 역사 속에 빛나는 서산의 인물들의 기록을 살펴보고 올바른 시각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우선 고려사의 이해가 필요하기에 고려사에 대한 소개를 하고 그 다음으로 고려사 열전편에 나오는 서산을 대표하는 3인의 인물 정인경(鄭仁卿), 류숙(柳淑), 류실(柳實)에 대한 원본과 해석을 소개하고 인물들에 대해 요약하고 정리하여 널리 알리고자 한다. 2. 고려사(高麗史)는 어떤 사서(史書)인가? 고려사(高麗史)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서 중에 최고의 관찬(官撰) 역사서이며 정사체(正史體)로 쓴 가장 신..

경주 월성에서 나온 흉노족의 인골

아하스페르츠의 단상[별명 기백길]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1.4.27 21:47 삼국통일을 이룬 자신감의 발로일까, 문무왕은 자신들 신라 왕족의 조상이 흉노인임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경주김씨의 조상이 흉노족이었다는 이 충격적인 스토리는 2005년 벽두 KBS가 삼국통일의 주인공인 신라 제30대왕 문무왕의 비문에 대한 판독결과를 '역사스페셜'에서 공개하며 밝혀졌는데, 족보상 내물왕과 원성왕의 후손이요. 경순왕의 직계라는 나도 몰랐고, 경주김씨 종친회마저 몰랐던(심지어 불쾌한 반응까지 보였던) 그 충격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문무왕 비문의 문제의 글자 비문은 처음에는 문무왕의 업적을 늘아놓다가 앞면 하단 5행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문무왕의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왔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