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임진왜란의 안시성 전투 - 이정암

작성일 : 2021. 8.. 17. 02:04 훗날 광해군은 연안성 전투를 임진왜란사의 ‘안시성전투’라고 표현하였는데, 연안성 전투에서의 승리한 사람은 의병장 이정암(1541~1600)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문무관료들이 공신을 책정하였는데, 선조와 함께 도망다녔던 신하들을 높여서 왕을 호위한 ‘호성공신’으로 86명을 책정하였고, 전쟁을 수행했던 영웅들을 ‘선무공신’으로 18명을 선정하였다. (이러한 선무공신에 ‘박진’, ‘황진’, ‘정기룡’ 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선무 1등공신은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원균(?)이었다. 2등공신에 진주대첩의 ‘김시민’, 그리고 전라우수영으로 이순신과 함께 많은 공을 세운 ‘이억기’, 그리고 연안성 전투의 ‘이정암’이 선정되었다. 이정암은 의병..

3번의 경목(驚目)

작성일 : 2022. 6. 28. 19:44 3번의 경목(驚目) 조선(朝鮮)의 백세지사(百世之師)요 동방(東邦)에 부자(夫子)이신 퇴계(退溪)선생께서 종명(終命) 하셔서니 조선 팔도(八道) 선비들이 상문(喪門)차 운집(雲集)하였다. 대 선생(大 先生)이 돌아 가셔서니 상례(喪禮) 절차에 따라 개 제주(改 題主)를 논의(論議)한다. 이것이 전통 유교(儒敎)의 법통(法統)인 것이다. 이 자리에는 나의 14대조 할아버지 탁계(濯溪)선생도 동참 하셔서니 전씨(全氏) 문중의 대표이시다. 퇴계선생의 제주(題主)를 선생으로 결정 하고 신주(神主)에 글을 쓰야하는데 많은 선비들이 갑론을박(甲論乙駁) 논의결과 어느 한 선비가 발탁(拔擢)되었다. 발탁된 이선비는 붓을잡고 온정성을 다하여 글자를 쓰는순간 주위의 많은 선비들..

정조의 어진은 정조가 아니다.

작성일 : 2015. 03. 16 선원보략(璿源譜略)에 수록된 정조의 어진 1927년 간행된 열성어진(列聖御眞)에 수록된 정조의 어진. 네모난 입과 각진 턱이 묘사된 기록과 어느정도 일치한 모습이다. 문무를 겸비해야 진정한 사대부라고 신하들을 갈궜던 정조는 신궁으로 50발을 쏘면 49발을 맞췄다고 하는데 마지막 1발은맞추지 않는게 관례인걸 감안하면 명실상부한 신궁이다. ■ 정조의 어진은 정조가 아니다. 우당 이길범(1928년 9월 20일생/경기 화성 양감면 출신) 화백이 1989년에 제작한 정조의 표준 어진 상상도(想像圖) 우당 이길범 화백이 1989년에 그린 구군복(具軍服)을 입은 정조의 모습 당신이 알고 있는 조선 제22대왕 정조(正祖)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아마도 위의 좌측 모습이거나... 또는 ..

아베 노부유키 - 일본의 제9대 조선 총독

작성일 : 2021. 2. 7. 00:52 ■아베노부유키(Abe Nobuyuki , 阿部信行 , あべのぶゆき) ◇출생지 : 일본 이시카와 현[石川縣] ◇생졸년 : 1879년~1953년 ◇경력 : 일본의 제9대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 毎日新聞社/wikipedia | Public Domain 일본의 군인 및 정치인으로 1897년 육군사관학교를 마치고 육군참모본부 총무부장·군무국장을 거쳐 1929년 육군차관에 임명되었다. 그후 대만군사령관·군사참의관 등을 거쳐 잠시 육군상 임시대리를 지냈다. 1936년 군부내 파시스트들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쿠데타인 2·26사건과 관련하여 예비역으로 전역했다. 1936년 8월 히라누마 기이치로[平沼騏一郞] 내각이 사퇴한 후 조각을 위임받아 소수각료제 내각을 ..

아베 신조(아베 전 총리) 가계도

작성일 : 2021. 2. 6. 22:27 ■ 아베 신조(安倍晋三) 약칭으로 아베 총리로 부른다. 아베 신조(1954년 9월 21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그는 야마구치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 고조부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의 정치인이였다, 총리를 지낸 외할아버지와 외종조부(외할아버지의 형제)도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야마구치현(구 쵸슈번)은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가장 중요한 두 번(쵸슈번, 사츠마번(현 가고시마현))중 하나로,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이후 일본의 근대사를 좌지우지한 현이다. ​ 쵸슈번 출신으로 메이지 시대 정치를 좌지우지한 인물중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로, 아베 신조의 친가쪽 고조부 오오시마 요시마사와 외가쪽 사토 노부히로는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중국사·일본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④

기자·위만·한무제, 한민족 지배 주장은 허구다 교과서 ‘한무제 한반도 정복 후 사군설치’ 자체가 틀려, 중국과 일본의 조작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6-07-10 12:00:4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및 NGO 환경교 육연합 고문 우리나라는 고대 중국과 일본을 지배한 민족이다. 중국·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선조에 대한 치욕이다. 역적과 다름없다. 필자도 초등학교 재학 당시 교과과정 중 ‘우리나라의 발달’ 부분에서 ‘한무제(漢武帝)가 우리민족을 정복하고 사군(四郡)을 설치했는 내용을 배운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왜곡된 역사다. 중국과 일본이 조작한 허구의 거짓역사다. 한무제(漢武帝)가 우리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한 일이 없다는 것은 중국사에도..

중국사·일본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③

중·일과 사대주의자가 만든 ‘기자조선’은 허구다 40여대 계승된 군주 이름과 천년 역사 기록 전무…중국의 조선 속국 주장 엉터리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6-07-03 09:30:21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및 NGO 환경교 육연합 고문 중국의 모택동(毛澤東)은 젊은 청소년을 앞세워 소위 ‘문화혁명’을 호도했다. 광란의 참극을 연출해 우리한민족의 지도자와 역사서 등을 없애고 사서는 분서(焚書)했다. 그리고 ‘동북공정’을 한다며 우리역사를 자기들 구미에 맞게 꾸미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들의 역사교과서는 우리역사를 변조·조작·왜곡한다. 반성이 없는 교육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주장들은 고대부터 우리를 지배한 것 같이 왜곡하고 있다. ..

중국사·일본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②

작성일 : 2022. 2. 23. 20:39 2.중국사·일본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중·일은 역사 위작 위해 사서부터 없애고 왜곡했다. 허구의 역사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한국사 자신들 역사로 둔갑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6-06-19 20:01:51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및 NGO 환경교 육연합 고문 한국역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뒤엎어졌고, 도둑맞아 말이 아니게 왜곡됐다. 우리고대사는 백제의 멸망 때 소정방(蘇定方)이 말살하고, 고구려가 멸망할 때 중국이 자기네들한테 불리한 사서는 다 불살랐다. 1905년 청일 간의 ‘간도조약’ 후 중국과 일본이 우리 역사의 말살(抹殺)을 기도했다. 또한 일제(日帝) 조선총독부는 조선역사의 말살 정책을 펴, ..

중국사·일본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①

작성일 : 2022. 2. 23. 20:30 1. 중국사·일본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중국과 일본이 역사 조작한 근본배경 알아야 일본이 변조한 호태왕릉비는 추악, 중국 동북공정의 진원은 공자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6-06-12 20:00:28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및 NGO 환경 교육연합 고문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이다. 이전에는 어류(魚類)가 단백질의 주류이기 때문에 일본인은 왜소했다. 광개토태왕의 비(碑)에는 4세기말에 일본군이 백제, 신라를 격파하고 고구려 군과 격렬히 싸웠다고 되어 있다. 그 증거로서 광개토태왕릉 비문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조작, 변조한 것이다. 4세기에는 일본이라는 명칭도 없었거니와 원시적 삶을..

죽림칠현(竹林七賢)

작성일 : 2020. 6. 22. 00:28 ■ 죽림칠현(竹林七賢)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 위(魏) , 진(晉) 왕조 시절의 완적(阮籍), 혜강(嵆康), 산도(山濤), 상수(向秀), 유령(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을 가리킨다.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을 주고받고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들이다.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이 그들의 근본 사상이었다. “언제나 죽림 아래 모여 거칠 것 없이 술을 마셔, 죽림 7현이라고 불렀다”라고, 6조(오, 동진, 제. 양, 진, 송) 송의 유의경(劉義慶)이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7인을 한 그룹으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일찍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 사상적 중심은 ..